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평단의 절찬을 받은 <드라이레벤>(2011)은 이같은 장르영화 쇄신의 정점에 자리한 작품이자 베를린파의 변모를 예감케 하는 작품이다. 상이한 세대에 속한 세 감독- 도미닉 그라프(1952년생), 크리스티안 펫졸트(1960년생),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1972년생)- 이 연출한 90분 분량의 장편 세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동일한 장소와 시기를 배경으로 한 범죄사건을 매개로 삼아 세개의 (독립적인 동시에 느슨히 연관된) 삶의 양상을 차례로 다룬 일종의 TV용 ‘미니시리즈’다. 이 작품의 기원은 2006년 여름, 세명의 감독이 이메일 교환을 통해 진행한 토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파 영화가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을 점점 경시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한편 장르영화의 부재에 아쉬움을 토로한 그라프의 이메일로 촉발된 이 토론은 결국 이론적 논의를 넘어 함께 영화를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드라이레벤>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2010), 라울 루이즈의 <리스본의 미스터리>(2010), 그리고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토드 헤인즈의 <밀드레드 피어스>(2011) 등과 더불어 21세기 영화에서 내러티브/장르/텔레비전과 결부된 작가주의의 미래와 가능성에 관한 비평적 고찰을 자극하기도 한다(이에 대해 논하는 일은 별도의 지면을 요한다).
사실 베를린파 영화들이 미니멀리즘적이고 무기력하며 (특히 잡지 <리볼버>를 중심으로) 게토화된 미학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는데, 대개는 그저 피상적인 인상에만 근거한 것이다(예컨대 롱테이크, 롱숏, 절제된 대사가 이들 영화의 특징이라는 지적은 마렌 아데의 <나만의 숲>(2003) 같은 영화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비판들에 맞서 그간의 결과물들을 재검토하고 ‘진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야말로 이들의 작업을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기획’(project)으로 간주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드라이레벤>은 그러한 노력이 얼만큼의 창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드물게 모범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