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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우리는 그의 몇 가지 모습을 봤을까
2010-04-01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밥 딜런의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에는 무려 7명의 밥 딜런이 등장한다.

유명 포크 음악가, 음악적 변신으로 비난받는 음악가, 은둔자, 시인, 목사, 배우, 그리고 내레이터. 이는 종잡을 수 없는 밥 딜런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3월31일 첫 내한공연을 가진 밥 딜런은 몇 가지 모습을 보여줬을까. 그리고 관객은 그에게서 몇 가지 모습을 발견했을까.

◇과묵한 밥 딜런 = 이날 밤 8시5분께 아직 공연장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밥 딜런이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을 시작하겠다는 말도 없었고 관객과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객석에 불이 꺼지자 묵묵히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한 밥 딜런은 앙코르를 하기 전까지 14곡을 부르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투어에 동행하는 매니저가 밥 딜런과 한마디 하는데 10년이 걸렸다는 일화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듯했다.

이날 밥 딜런이 관객에게 던진 말은 자신과 함께 연주한 세션을 소개한 것을 제외하고는 "쌩큐 팬스!(Thank You, Fans!)"가 전부였다.

무대도 말이 없었다. 체육관 공연이 열리면 당연하게 있을 것이라 여겼던 대형 화면이 없었다. 짙은 갈색 천이 무대 장식의 전부였다.

◇고집불통 밥 딜런 = 공연 기획사에서 대형 화면의 설치를 요구했으나 밥 딜런의 대답은 "노!(No!)"였다고 한다.

첫 내한공연인 만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높았으나 밥 딜런은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등 공연 이외의 프로모션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 조건으로 이번 공연이 성사됐다고 한다. 여러 기자회견에서 자주 언론과 언쟁을 벌여온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밥 딜런은 공연 사진도 공개하지 않았다. 언론의 사진 취재도 거부했다. 공연 기획사에서 공연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으나 밥 딜런 측은 메모리칩을 회수해 갔다고 한다.

그러나 밥 딜런의 이런 모습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관객이 그의 음악에 빠질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 어수선한 가운데 시작된 공연이었으나 관객은 어느새 말 한마디 없이 고집스럽게 곡을 연주하는 밥 딜런의 자그마한 체구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의 걸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탈한 밥 딜런 = 밥 딜런은 하모니카를 연주할 때를 제외하고는 공연의 절반 이상을 무대의 오른쪽 구석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고 노래했다. 주인공이 무대의 중앙에 서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여느 공연과는 달랐다. 조명도 나머지 세션 5명과 균등하게 나눠 받았다.

밥 딜런의 소탈함은 무대 밖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대기실에 화이트 와인 한 병, 재떨이, 그리고 물만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식사 메뉴도 특별한 요구가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공연 기획사 측에서 "정말 이게 전부냐?"라고 되묻기도 했다고. 대기실과 숙소를 한 가지 색으로 도배해줄 것 등을 요구하는 여타 음악가들과 달랐다.

그는 경호와 통역 관련된 직원도 최소화했으며 환영행사도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밥 딜런 = 일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밥 딜런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공연 내내 연방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공연을 즐겼다.

키보드를 맡은 밥 딜런은 리드 기타리스트와 서로 마주 보며 흥겹게 연주했다.

컨트리 풍의 '더 레비스 고나 브레이크(The Levee's Gonna Break)'와 '선더 온 더 마운틴(Thunder On The Mountain)', 록 넘버인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를 부를 때는 루이 암스트롱을 연상시키는 칼칼한 목소리와 장난기 넘치는 고음의 비음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며 신나게 불렀다.

흥에 겨운 밥 딜런은 자신의 상징이기도 한 하모니카를 때로는 토해내듯이 격정적으로, 때로는 석양에 지는 노을이 연상되게끔 서정적으로 연주했다.

이에 관객도 휘파람을 불고 곡 사이사이 추임새를 넣으면서 밥 딜런의 음악에 흠뻑 빠졌다.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밥 딜런 = 공연 막바지, 6천여 명의 관객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1층과 2층, 3층에 있던 관객들이 환호하며 우르르 무대 앞으로 달려나갔다.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었다.

관객은 첫 번째 앙코르에서 온 힘을 다해 노래하는 밥 딜런과 함께 노래하며 춤을 췄다. 그리고 그는 '조렌느(Jolene)'와 '올 얼롱 더 와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 등을 연이어 연주했다.

밥 딜런이 세션과 인사를 한 뒤 무대 뒤로 사라지자 관객들은 아쉬움에 발을 쿵쿵 구르고 손뼉을 치며 앙코르를 또 요청했다. 그러길 2∼3분여. 밥 딜런이 세션과 함께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익숙한 노랫말.

"한 사람의 인간이 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할까?(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관객들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좌우로 흔들면서 '블로인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따라 불렀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밥 딜런의 내한공연은 그렇게 진행됐다.

eng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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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