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메인은 <엘리자베스> <골든 에이지> <천일의 스캔들> 같은 영국 사극에도 출연했지만 그가 무슨 역을 맡았는지 기억하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 역의 줄리언 무어와 한 남자를 공유하고 섹스까지 하는 젊은 부르주아 미소년 안토니를 연기한 <세비지 그레이스>는 신인배우 레드메인의 강력한 한방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야심을 가질 만도 한 나이에 이 친구는 “거대한 야망 따위 없는 게 저의 장점”이라고 말한다는 거다. 그러다가 연기자로서의 생애가 내일 끝난다면? “제 나이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는 추억은 남겠죠.”
가장 일해보고 싶은 감독으로 레드메인은 파벨 파블리코프스키를 꼽는다. 대체 그게 누구야. 검색을 해봤더니 <사랑이 찾아온 여름>이라는 영화로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적 있는 폴란드계 영국 감독이다. 전도유망한 신인배우라면 마틴 스코시즈나 구스 반 산트 정도의 이름은 내놓아야 그럴듯해 보일 것을. 불안한 마음에 차기작을 살펴봤더니 <세브란스>의 크리스토퍼 스미스가 연출한 호러영화 <검은 죽음>(Black Death)이다. 재밌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