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 감독이 <쌍협>(1971), <자마>(1973) 등에 단역 출연시키며 발굴했던 꽃미남 이수현은 곧 적룡과 강대위의 뒤를 이을 장철 사단의 새로운 스타로 기대를 모았다(<자마>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오우삼과의 인연이 훗날 <첩혈쌍웅>으로 이어졌다). 물론 비중은 적었지만 <수호전>(1972) 시리즈에서도 온몸이 새하얗고 워낙 수영실력이 뛰어나 유독 물속에서는 감히 따를 자가 없었던 인물 장순으로 출연했다. ‘영원한 초류항’ 정소추와 꽤 비슷한 느낌이다. 그와 동시에 당시 초원, 하몽화 감독의 몇몇 멜로영화에도 출연했는데 다른 쇼브러더스 전속 젊은 남자배우들과 비교하자면 액션영화 출연 빈도가 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 성공은 오히려 딴 데서 이뤄졌다. 당대 홍콩 쌈마이 블록버스터의 왕자로 떠오른 것. 일본 특촬물의 모방이었던 <인프라맨>에 이어 출연한 하몽화의 <성성왕>(1977)은 할리우드 <킹콩> 시리즈의 재탕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쇼브러더스는 SF, 멜로 등 관객의 변화하는 취향에 부응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고 그 중심에 이수현이 있었다. B급 괴수영화 <성성왕>은 거대 영화사로서 쇼브러더스의 면모를 확인시켜 준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내려온 거대한 고릴라가 홍콩의 도심을 활보하고 <타잔> <고질라> <킹콩> 등에서 봐왔던 익숙한 컨벤션들이 반복된다. <인프라맨>이 일대다의 화려한 홍콩식 액션을 선보였듯 ‘킹콩’ 성성왕 역시 무술팀 원가반의 일원인 원상인이 그 동작지도를 맡았다. <인프라맨>과 <성성왕>에서 이수현의 연기를 딱히 뭐라 평가하긴 힘들지만 <성성왕>에서 <공룡 100만년>(1966)의 라쿠엘 웰치를 떠올리게 하는 관능적인 야성녀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마냥 웃기에도 벅찬 장면들이다. 사만다를 사랑하는 킹콩은 자신을 홍콩으로 데려온 장본인이자 홍콩에서 그녀를 겁탈하려 했던 사장(곡봉)을 찾아가 끝내 죽이고야 만다. 할리우드의 오리지널 <킹콩>에서 킹콩을 뉴욕으로 끌고 와서 이용해먹고도 무사했던 영화 속 칼 데넘 감독을 떠올려보자면 철저한 동양식 인과응보 정신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