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신의주 신영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던 김희수씨는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 월남했다. 그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한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에 따르면, <자유부인>(1956)으로 유명한 한형모 감독의 권유로 편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해방 이후 한국영화의 1세대 편집기사라 할 수 있는 양주남 기사로부터 본격적인 편집기술을 익혔으며 1958년경 ‘김희수편집실’로 독립한 뒤 친구 이도원 기사와 함께 편집에 관한 한 충무로의 ‘대부’로 활동했다. 고향친구인 김희수 기사의 권유로 ‘친구따라 강남가듯’ 편집 일을 시작했다는 이도원 기사가 “밤낮으로 너무 일이 고된 나머지 유치장에 가면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경찰한테 잡히려고 둘이서 일부러 통행금지 시간에 밖에 나가기도 했다”고 할 정도로 당시 편집일은 힘든 노동이었다. 정창화 감독의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 <귀로>(1967),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를 포함한 수십편의 영화는 물론 <만다라>(1981) 등 <길소뜸>(1985) 이전 거의 모든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1993년 <한줌의 시간 속에서>를 끝으로 은퇴했다.
[김희수] 님은 먼 곳으로
글
주성철
2008-07-15
<마의 계단> <화녀> <만다라> 등의 김희수 편집기사 별세
지난 7월8일(화) 서울극장, <님은 먼곳에> 무대인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이준익 감독은 “지난 45년 동안 편집기사를 하셨던 김희수 선생님께서 돌아가셔서 오늘 아침 상가에 다녀왔다”는 인사를 먼저 전했다. 고 김희수 선생은 <님은 먼곳에>는 물론 <텔미썸딩> <엽기적인 그녀> <올드보이> <혈의 누> <사생결단> <라디오 스타> <걸스카우트> 등 지난 20여년간 한국영화의 굵직한 주요 작품들을 편집해온 김상범, 김재범 형제 편집기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이에 이준익 감독은 “2대에 걸쳐 일하는 이런 분들 덕분에 우리 영화가 만들어졌고 한국영화가 발전해왔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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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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