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다 저렇게 일하냐고? 완전 그렇다. 나는 4년4개월 동안 218번의 마감을 하면서 만날 그랬다.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 해외 영화인에 대한 몇 페이지 기사를 쓸 때면 두툼한 자료 안에서 단 몇 문장을 임의로 인용했고, 국내 영화인과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어놓고 그중 10분의 1만 내 맘대로 정리한 적도 허다하며, 숱한 정보로 빼곡한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쓸 때면 내 눈에 인상적인 것들만 언급했다. ‘객관적=입장과 주장을 취하지 않음’이라고 한다면, 객관적인 기사는 당최 써본 적이 없다. ‘영화잡지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주세요’라는 주문이 잊을 만하면 독자 게시판에 등장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솔직히, 아랑곳할 수도 없었다. 기사, 아니 모든 글의 주인은 사실이 아니라 ‘야마(글의 주제를 일컫는 언론계 은어)’라는 걸 첫 번째 마감 때 배웠다.
<씨네21> 홈페이지에서 필자 검색을 해보니 내가 쓴 기사가 927개란다. 지면에만 게재된 기사까지 합치면 1천개를 훌쩍 넘기는 그 글들을 관통한 나의 야마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그게 보이기나 할까. ‘나쁜 영화를 나쁘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리뷰쓰기 신공’이 경력과 함께 자랐고, ‘좋은 영화의 좋은 이유를 잘 써야 하는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기술’은 세월 속에 쌓였으니, 그 안에서 야마 찾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거다. 온갖 닭살스러운 회한의 멘트를 사적인 자리로 미루고 나니, 마지막 마감의 단상이 미안함과 감사로 남는다. 야마없이 소심했던 기자질이 독자와 동료와 영화에게 미안하고, 그럼에도 매주 한두번씩 나의 입장을 고민하여 밝히도록 종용하고 이를 책임질 기회를 주었던 <씨네21>이 고맙다.
돌이켜보니 218번의 마감은 거짓말처럼 동일했다. 편집자에게는 늘 미안했고, 편집장은 늘 무서웠다. 배열표(한권의 잡지에 기사가 배열되는 순서를 담은 표로, 어떤 기사들이 한 묶음으로 우선 마감되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비밀의 문서)를 보고 내 기사의 ‘진짜 데드라인’을 확인하는 플레이를 마지막 주까지 구사하는 일관성이라니. <인크레더블 헐크>를 보고 돌아오는 길, “아, 헐크를 보니 나도 왠지 변신하고 싶어진다”는 편집장의 중얼거림을 들었을 땐 다음주부터 출근도 하지 않는 주제에 일단 무섭기부터 했다(“기사 어디 갔어, 이것들아! 우어어어어어!”라고 울부짖는 헐크의 모습이 아주 실감나게, 순식간에 재연됐다!). 아, 4년4개월간 나의 야마는 마감 그 자체였던가 혹은 ‘매번 늦고, 실수는 잦았으며, 주제는 희미했음’이라는 팩트였던가. ‘야마 찾아 삼만리’라도 떠나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