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물론 이런저런 불만이 있다. “이른바 배우 목소리라는 거 있잖아요. 중저음으로… 뭐 그럴듯한… 에이 근데 이건 꼭 간신나라 충신 목소리 같아서…” 혹은 “나는 항상 진지하게 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보면 꼭 웃어요”. 하지만 그가 그 목소리와 엇박자로 악인을 연기하고 병든 자의 몸이 될 때 유쾌한 정감이란 게 묻어난다. 물론 “마음껏 내 속의 외로움을 표현해내는 진지하고 색다른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다”며 어렵게 운을 뗄 때마다 “그건 다음에 기회될 때 하고 이번에는 원래대로 하자”고 눙치는 감독들이 야속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가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우리가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관한 이 이견이야말로 김기천의 매력 포인트일지 모르겠다.
김기천은 이미 허진호 감독의 영화세계에 몸담은 적이 있다. 어느 <8월의 크리스마스>, 파출소 순경에게 시비 걸며 “내가 민정당… 전화 한 통화면…” 어쩌고저쩌고 어깨에 힘주고 주정부리다 “아저씨 민정당 없어졌어요”라는 훈계를 듣는 주정꾼이 그였다. 10여년 뒤 <행복>에서 그의 이름은 ‘심부전’이다. 희망의 집. 여기서는 다 그렇게 부른다. 나는 폐암, 저는 간경변, 저쪽은 심부전증 등등. 심부전이라는 이 사람이 종종 주인공 영수와 은희 사이에 끼어들어 간질거리는 훼방도 놓고 간섭도 하는데 그게 밉지 않다. 간경변 환자를 꼬여내서 라면과 술을 권해도, 사람이 죽어나간 꽁무니에 대고 배고프니 밥 먹자고 칭얼거려도 역시 그렇다. 환우들을 몰고 와서 낮은 창문에 고개만 내밀고 합창을 하고 있을 때면 이제 귀엽기까지 할 지경이다. “그냥… 그냥 하는 거예요. 한쪽에서 누가 죽어도 산 사람은 또 살잖아요. 이거 참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람들을) 웃길 때도 내 마음의 외로움 같은 걸 갖고 하면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배우는 그런 외로움을 잊어보려고 (연기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에이 요즘 집에서 노니까 괜히 이런 생각이 드나…. (웃음)”라며 멋쩍어하지만, 가을 풍경의 내면을 가진 그가 혼신을 다해 연기할 때 우리는 기꺼이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소신을 듣는 것이야말로 즐거운 일이다.
“왜 꽹과리 있잖아요. 내가 그걸 좀 치는데, 옛날에 할아버지들이 만날 그랬다고. ‘꽹맥이는 그렇게 치는 게 아니지 이놈아, 변죽을 울려야지 복판을 치면 어쩌냐.’ 꽹과리는 변죽을 잘 쳐야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의 소리가 나거든요. 그렇게 생각해요. 나도 복판이 아니라 변죽을 울리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가을에 만난 꽹과리 같은 남자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표현이냐 싶다가, 이미 사랑받기 어려운 외모로도 잔뜩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그를 생각하니 아니 할 말도 아니다. 아름답게 변죽을 울리는 사내, 그가 김기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