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미친 짓이다. 그래도 가끔 반응을 보여주는 동료들이 있어 고맙다. “허리 다칠라”라는 걱정부터 “아직 멀었다. 올림픽을 혼자서 치를 수 있으려면 좀더 열심히 하라”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다. “아예 여러 가지 자세를 연결동작으로 한데 묶어서 국민체육진흥공단쪽에 건강체조 아이디어로 응모해보라”는 제안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주는 이도 있다. 한 후배는 허공에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론 미안했나보다. 그 따뜻한 마음 덕에 3년 넘게 인간 샌드백을 치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펀치를 날리면서 후배의 아내에게 항상 죄송한 심정이다).
지금은 안 계셔서 아쉽다. 회사 경비를 맡으셨던 분 중에도 섀도 스포츠를 알아보시는 이가 있었다. 성함은 잘 모르겠으나 말 붙이기 좋아하는 싹싹함의 소유자였다. 마감하고 있을 때면 순찰하는 그분을 볼 수 있었는데, 그냥 묵묵히 돌아가시는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감에 치인 동료들 중엔 그분의 과도한 대화 시도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나도 처음부터 호의를 가졌던 것 같진 않다. 그러다 한번은 무심결에 회사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 적이 있다. 그걸 본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표정을 보니까 볼이네요∼.”
비슷한 케이스이긴 한데 쪽팔린 적도 있다. 2001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촬영장에 잠시 놀러갔을 때다. 잠실운동장 분수대 근처에서 촬영했을 텐데, 밤 늦게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장대우산을 챙겨갔다. 류승완 감독은 한참 심각한 터라 말 붙이기가 좀 뭣했다. 취재를 간 것도 아니어서 그냥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마침 들고 온 우산이 떠올랐다. 왼팔을 펴고 힘찬 스윙을 몇 차례 날렸는데, 마침 류승범의 매니저였던 K씨가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필드에 가끔 나가시나봐요?” 잔디는 무슨, 채도 한번 못 잡아봤는데. 당시엔 야구 타격자세를 취한 것뿐이라고 답했던 것 같다.
왜 이럴까. 유년 시절에 못 놀아서일까. 흔한 오징어놀이 한번 못하고 중학교에 갔으니 말 다했다(요즘 아이들은 그런 놀이를 하지도 않겠지만). 억압된 것은 필히 몸을 찾는다던데, 섀도 스포츠의 시작도 그런 거창한 무의식적 기원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봄 같지 않은 봄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올해는 정말이지 땀 흘리며 뭐라도 시작해야겠다. ‘혼자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는 동수 찾기 놀이도 이제 그만 해야 할 듯 싶다. 동수도 좀 쉬어야지 않겠나. 어쨌든 진짜 상대 찾아 힘을 써볼 요량이다. 주어진 삶에 버팅 한번 날려볼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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