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본 영화는 <행복을 찾아서>였다. 윌 스미스가 그의 친아들인 제이든 스미스와 출연해 눈물겨운 부성애를 보여준다. 윌 스미스의 과장되지 않은 연기도 훌륭했지만, 친아버지와 함께한 꼬마 제이든의 연기는 이 상황 속의 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교회의 노숙자 피난처를 전전하는 아버지에게 “You are good papa”라고 할 때는 이젠 아버지가 없는 엄마 생각에 콧날이 시큰했다. 바쁜 엄마를 면회오라 투정하고 외할머니 잔소리에 삐쳐 단식하는 등 내 생각엔 짐스러운 외할아버지였지만, 엄마에게는 만감이 오가는 아버지였을 게다. 못났거나 잘났거나 외면하려고 하면 마음 한쪽이 덜거럭거려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그런 사람. 내게 아버지가 그렇듯 엄마에게 외할아버지도 애틋했단 걸 뒤늦게 인정한다. 외할아버지에게도 엄마는 끔찍하게 소중한 딸이었다. 첫딸이기도 했고 좋은 것 있으면 형제들 몰래 주셨다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으니까. 내 아버지도 그렇다. 머리 좀 컸다고 버르장머리 없는 말을 뱉어내도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끝없이 따뜻한 눈길을 주신 것 감사하다. 인사차 끌려나간 술자리에서 “자긴 좋은 여자야” 하며 뻐꾸기를 날리던 40대 중반의 남자도 샌프랜시스코에서 공부한다는 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라며 떠받들지 않았던가.
시신을 뵙고, 장례식장에 오는 손님을 맞으며, 꽃상여를 쫓아 선산에 올랐던 할머니 때와 달리, 외할아버지는 2주 전 병원에서의 모습이 마지막이다. 병실 유리창 너머로 잘가라고 손 흔드시던 외할아버지 모습이 말 그대로 생생한데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하니 먹먹한 마음에 아쉬움은 끝이 없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좋아하실 생각에 사다드렸던 세검정 고개 너머 분식집의 만두며, 병원 앞 편의점의 붕어싸만코는 외할아버지를 기억해낼 소품들이 되었다. 물 대신 드시던 두유를 보면 목이 메일까? 새삼 헤아려본다, 오늘이 내 부모가 사는 가장 젊은 날이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