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웬 난데없는 흡혈귀 영화? 공포 영화 시즌도 아닌 겨울에 그것도 드라큘라와는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대한민국에서 <흡혈형사 나도열>이라는 영화가 개봉 대기 중이다. 비록 정통 공포영화가 아닌 액션 코미디를 지향하는 작품이지만 서양의 대표적인 호러 캐릭터가 서울 한복판에서 활약한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100여년 전 브람 스토커가 탄생시킨 드라큘라는 지금까지도 <블레이드>나 <언더월드> 같은 영화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정통 드라큘라 영화에 향수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흡혈형사 나도열> 포스터에서는 주연배우 김수로가 입은 연미복 차림에 반가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초창기의 정통파 드라큘라에서 신세대 감각으로 무장한 변종 뱀파이어들까지, DVD로 만날 수 있는 흡혈귀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대표적인 것들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노스페라투 Nosferatu, eine Symphonie des Grauens (1992)
F.W. 무르나우 감독이 만든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드라큘라가 아닌 올록 백작으로, 조나단 하커가 후커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지만 원작은 분명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다. 하지만 제작 당시 그의 미망인이 원작 사용을 허가하지 않아서 그러한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러영화의 시초 격인 작품인 동시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서 완벽한 흡혈귀를 연기한 막스 슈렉의 연기는 지금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제작된 지 80년이 넘는 고전작품인 탓에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진 않았으나,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이자벨 아자니와 클라우스 킨스키를 기용해 리메이크한 작품(헤어조크 컬렉션에 포함)과 막스 슈렉이 실제 뱀파이어였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영화의 탄생과정을 재구성한 픽션 <쉐도우 오브 뱀파이어>가 출시되어 있다. (헤어조크 컬렉선 - 알토미디어 / 쉐도우 오브 뱀파이어 - 파라엔 출시)
후라이트 나이트 Fright Night (1985)
옆집으로 이사 온 흡혈귀 이웃이란 매력적인 설정, 젊은 층을 겨냥한 흥겨운 록 음악과 뛰어난 특수 분장의 볼거리, 선배 공포 영화들에 대한 애정 어린 오마주로 가득한 80년대 가장 주목할만한 흡혈귀 영화. 실제 <후라이트 나이트>를 가장 재미있는 흡혈귀 영화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시대적 변화로 인한 여러 설정들이 매우 흥미로운데, 특히 믿음이 없는 십자가는 무용지물이란 설정이 화제가 되었다.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포스터 속에 등장하는 흉물스러운 뱀파이어 모습 역시 추억의 한 조각.
DVD 타이틀은 생각 외로 화질이 좋아, 극장에선 빠르게 지나갔지만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입을 자랑하는 에이미의 추악한 모습을 한 프레임씩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음향은 2채널인 것이 아쉽긴 해도, 당시 히트했던 추억 속의 노래를 다시 듣는 감회가 새롭다. (콜럼비아 출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Bram Stoker's Dracula (1992)
제목처럼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 가장 충실한 영화로 <대부> 시리즈 이후 이렇다할 흥행작을 내지 못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회심작이다. 드라큘라 성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서부터 내레이션으로 표현된 일기체 서술 형식까지 원작을 최대한 존중한 각색이 돋보이는 한편, 드라큘라와 그의 희생자인 미나의 관계를 시공을 초월한 사랑으로 표현한 로맨스 영화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표현주의 방식을 적극 활용한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을 비롯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이시오카 에이코의 환상적인 의상 디자인, 게리 올드만의 잊을 수 없는 괴연 등 역대 드라큘라 영화 중 최고의 볼거리를 자랑한다. 단, 조나단 하커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의 졸연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
DVD는 초창기 콜럼비아 슈퍼비트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부록은 전무한 대신 영화의 화려한 미술이 살아있는 화질과 깨끗한 음질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무명시절 모니카 벨루치의 에로틱한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무삭제판이라는 점이다. (콜럼비아 출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Interview with the Vampire (1994)
깊은 밤, 라디오 방송 작가 다니엘은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200여년 동안 살아온 루이는 자신이 살아왔던 격정적인 순간들을 덤덤하게 들려주지만, 다니엘은 어느 순간 흡혈귀들의 삶에 깊이 매료된다. 흡혈귀는 양면성을 지녔다. 극히 위험한 대상이지만 그 만큼 매력적인 요소들 또한 많다. 앤 라이스의 원작 <뱀파이어 연대기> 첫 번째를 영화화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그 어떤 영화들보다 흡혈귀들을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극중의 다니엘처럼 흡혈귀가 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원작 소설에 비해 유머가 풍부해졌고,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안토니오 반데라스, 커스트 던스트 등 흡혈귀 영화에 다시없을 초호화 캐스팅도 큰 볼거리다. 국내 개봉 당시 많은 장면들이 삭제가 되었지만, 다행히도 DVD 타이틀에서는 복원이 되었다. (워너브라더스 출시)
블레이드 삼부작 Blade 1, 2, 3 (1998 ~ 2004)
마벨 코믹스를 원작으로 제작, 변종 뱀파이어 영화들 중 가장 성공한 시리즈. 웨슬리 스나입스가 동양 무술에 탁월한 반흡혈귀 ‘블레이드’를 맡아 인간 세상을 위협하는 흡혈귀들과 한바탕 혈전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시리즈 첫 작품은 스티븐 도프의 인상적인 악역 연기와 액션배우로서의 웨슬리 스나입스의 가능성이 돋보인 정도였으나 길레르모 델 토로가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영화에 와서는 견자단의 무술안무와 CG 기술을 접목시킨 현란한 액션, 그리고 흡혈귀 엘리트 부대 블러드팩과 천적 집단 리퍼라는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통해 블록버스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다만 시리즈의 각본을 맡은 데이비드 S. 고어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3편은 전편들에 비해 밀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새로이 등장한 여전사 애비게일의 활약이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DVD의 경우 2편의 영상과 음향 퀄리티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발매 초창기에 레퍼런스라는 평가를 얻었던 1편이나 박력 있는 사운드가 살아있는 3편도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부록 역시 양과 질 면에서 세 편 다 손에 꼽을만한 타이틀들이다. (1편 씨넥서스 / 2편 엔터원 / 3편 KD미디어 출시)
언더월드 Underworld (2003)
온통 흑색 위주의 복장과 퇴폐적인 분위기의 영화 속 흡혈귀들은 영락없는 고스족이다. 흡혈귀 전설이 고스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면 여기서는 아예 고스 흡혈귀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이라도 한 듯이 폼이라는 폼은 다 잡고 등장한다. 하지만 MTV 스타일의 현란하기만 한 영화였다면 컬트 팬들의 지지 속에서 속편까지 제작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흡혈귀와 늑대인간들의 수백 년에 걸친 처절한 투쟁, 수수께끼에 쌓인 뱀파이어의 전승 등 독특한 소재들과 흡혈귀 여전사 역을 맡은 케이트 베킨세일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지면서 한 편의 매력적인 오락영화로 완성된 작품이다.
DVD는 두 번째 발매된 무삭제 확장판을 추천. 오리지널 개봉판에 비해 새로이 12분이 추가되었으며 감독의 원래 의도에 맞게 교체된 장면도 11분에 이른다. 부록은 메이킹 필름과 함께 감독, 배우들이 참여한 음성해설, 만화로 보는 ‘언더월드’ 등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트윈 출시)
반헬싱 Van Helsing (2004)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서 드라큘라 백작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반 헬싱 박사. 과거 해머 영화사의 드라큘라 시리즈에서는 명배우 피터 쿠싱이 맡아 드라큘라를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펼치기도 했던 캐릭터다. <미이라> 시리즈를 성공시킨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반헬싱>에서는 ‘울버린’ 휴 잭맨이 007 스타일의 반 헬싱을 연기하고 있는데, 이전 영화들과 달리 그가 맞서야할 상대는 드라큘라만이 아니다.
리차드 록스버그가 과장된 연기를 펼친 드라큘라를 비롯해 그의 하수인으로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인간과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 등은 모두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고전 공포영화들에서 가져온 캐릭터들. 특히 공포영화의 거장 제임스 웨일의 영화들을 오마주한 흑백의 오프닝은 고전 공포영화팬들을 노골적으로 의식한 장면이다. 때문에 <반헬싱>은 눈이 아플 정도로 CG가 남발된 난장판 액션영화임에도 은근히 후속편이 기다려지는 그런 작품이다.
‘얼티밋 에디션’ 버전으로 출시된 <반헬싱> DVD는 수준급의 화질과 박력 넘치는 음향을 자랑하며, 고전 유니버설 공포영화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세트 제작과정 등 흥미로운 볼거리들을 담았다. (엔터원 출시)
흡혈귀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뱀파이어 헌터 D Vampire Hunter D (2000)
흡혈귀는 유럽이나 할리우드 영화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수십여 편이 넘는 흡혈귀 소재 실사 공포 영화들이 제작되었으며, <흡혈귀 미유>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헬싱> 같은 애니메이션도 제작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 가운데 일본 최고의 호러 SF 작가로 불리는 키쿠치 히데유키의 원작의 ‘흡혈귀 헌터 D’는 두 차례나 애니메이션화 된 인기 작품. 1985년에는 <에어리어 88>로 유명한 성우 시오자와 카네토의 목소리 연기가 돋보인 동명의 극장판이 제작되었으며, 2001년에는 폭력미학의 거장 가와지리 요시아키에 의해 세계시장을 노린 대작 <뱀파이어 헌터 D>가 만들어졌다.
키쿠치 히데유키의 원작 시리즈 중 세 번째인 ‘D - 요살행’을 영상화한 가와지리판 <뱀파이어 헌터 D>는 핵전쟁 이후 인간 문명이 몰락한 가운데 ‘귀족’이라 불리는 뱀파이어들이 밤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주의 딸을 납치한 귀족 마이어링크와 그를 추격하는 흡혈귀 사냥꾼 D. 여기에 잔혹함으로 악명 높은 마커스 형제들이 가세하면서 치열한 격전이 펼쳐진다. 고딕풍의 화려한 비주얼과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북미지역에서 큰 호평을 받은 재패니메이션으로 일본어보다 영어 더빙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이색적인 평가도 얻은 작품이다. 일본문화 개방 초기에 모 수입사에 의해 수입이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정식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내 미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