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기본적으로 가공의 이야기다. 영화 속의 모든 요소들은 만들어지고 연출된 것이지, 그 자체가 현실이자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일단 스크린에 비치기만 하면, 관객들은 마치 거짓말처럼 그것을 살아 숨쉬는 진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가공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도 그러할진대, 만일 실제 인물과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쩌면 그러한 영화들이야말로 진짜 현실과 가공의 현실이 가장 행복하게 만나는, 강한 흡인력을 지닌 영화들이 아닐까. 사람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그것이 진솔하든 과장으로 가득한 것이든 관계없이, 결국 사람들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전기 영화나 역사 영화는 항상 관객들의 주목을 받고,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DVD 토픽에서는 일제강점기라는 험악한 시대에 자신의 꿈을 향해 높이 비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비행사 박경원의 삶을 다룬 <청연>의 개봉과 대공황시기 미국에서 권투를 통해 대중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짐 브래독의 전기 영화 <신데렐라 맨>의 DVD 출시를 맞아, 실존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DVD 추천작품을 소개한다.
역도산
1960년대 일본을 호령했던 재일 한국인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일대기를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 역도산의 영웅적인 면모에 집중하는 ‘성공신화’ 위주의 접근이 아닌, 관조적 시점으로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연출 방식은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흥행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한 양날의 검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일련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어 대사, 체중 조절, 프로레슬링 실연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설경구의 연기 투혼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극장 공개판에 약 10분 정도를 추가한 감독판으로 발매된 DVD는 출시 당시 팬들 사이에서 화질의 퀄리티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 바 있으며, 제작진이 영화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던 음성해설 역시 화제를 모았다. (CJ 엔터테인먼트 출시)
쉐도우 오브 더 뱀파이어
본격적인 흡혈귀 영화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노스페라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을 다룬 이 영화는,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에 픽션을 가미한 이채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즉, <노스페라투>에 흡혈귀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막스 슈렉이 진짜 흡혈귀였으며, 배우와 스탭들은 최고의 영상을 만들기 위한 무르나우의 욕망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추구해야 했던 극단의 예술혼이 초자연적 존재와 결합하여 벌어지는 흥미로움과 긴장감은 이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 여기에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무르나우 역의 존 말코비치와 슈렉 역의 윌렘 데포는 가히 ‘압권’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가 어우러져 실제 사건을 능가하는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만들어 낸다. 공포 영화 팬들이라면 영화 속 영화로 꼼꼼한 고증을 거쳐 재현된 <노스페라투>의 촬영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파라엔 출시)
에드 우드
‘사상 최악의 영화를 만든 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악명 높은(?) 에드워드 D. 우드 주니어의 전기 영화. 이렇게 말하면 왠지 괴상망측한 영화인 것 같아 피하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훌륭한 유머와 따뜻한 감동이 있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다. 팀 버튼 감독과의 꾸준한 공동 작업으로 잘 알려진 조니 뎁의 적역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공포 영화 배우 벨라 루고시로 분한 마틴 랜다우는 일생일대의 명연을 선보여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0년대의 할리우드 분위기를 잘 살린 영상, 우드의 졸작(?)들을 충실히 재연한 다양한 볼거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편에 배어 있는 우드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는 우드의 삶을 매개체로 한, 팀 버튼 감독의 B급 영화에 대한 연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DVD는 음성해설을 반드시 들어볼 것. (브에나 비스타 출시)
살인의 추억
얼마 전 영화의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로 다시금 주목을 받은 영화. 비록 실제 화성 사건의 진행과정과 인물들을 직접적으로 옮겨온 것이 아니지만(심지어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화성이라는 지역명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화성연쇄살인사건 = 살인의 추억’이라는 인식을 줄 정도로 당시의 시대상과 사건이 주는 의미를 정확히 집어낸 작품이다.
DVD 부록 가운데에는 실제 사건의 개요와 영화의 원작이 된 연극 ‘날 보러와요’에 관한 영상 자료가 담겨 있다. 박노식과 류태호 등 당시 화제를 모았던 캐스팅에 얽힌 비화가 볼만하고 영화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주는 삭제장면 모음은 놓쳐서는 안 될 내용물이다. 뭐니 뭐니 해도 당시 한국 영화 DVD 사상 최고 수준으로 꼽혔던 본편의 화질은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우수하다. (CJ 엔터테인먼트 출시)
네버랜드를 찾아서
할리 베리의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 수상작 <몬스터 볼>의 마크 포스터 감독 작품. 이 영화 역시 공개 이듬해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곡상을 받았다. 제목으로부터 알 수 있듯, 작가 제임스 배리가 ‘피터 팬’을 창작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현실과 배리의 창작을 묘사한 판타지를 이음매 없이 부드럽게 연결한 연출이 대단히 뛰어나며, 배리 역의 조니 뎁은 특유의 괴짜 이미지를 따스한 인간성과 결합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련의 <피터 팬> 관련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손꼽힌다.
극중 배리가 피터 팬의 모델로 삼은 소년 피터로 분한 프레디 하이모어의 똘망똘망한 연기에 쏙 반한 뎁은 다음 작품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주인공 찰리로 그를 강력 추천하기도 했다. DVD는 작품의 특성을 잘 살린 화질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부록으로는 음성해설을 추천한다. (브에나 비스타 출시)
그때 그 사람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야기한 10. 26사태를 소재로 한 정치 블랙 코미디. 몇 년 전만 해도 ‘금기’로 취급되던 소재를 과감히 파헤친 이 영화는 작품마다 어느 정도의 논쟁을 수반했던 임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영화 안팎으로 가장 많은 충격파를 던졌다. 영화 자체가 지니고 있었던 파괴력도 엄청났지만, 아직도 생존해 있는 사건 관련자들의 항의와 그로 인한 일부 장면의 암전 처리 등 이 영화의 공개 당시 발생한 일련의 웃지못할 해프닝들은 영화계라는 범주를 넘어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대립과 과거사 청산을 완전히 이루지 못한 한국 사회 전체의 안타까운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DVD 역시 암전 상태인 본편 그대로 출시되어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KD 미디어 출시)
바람의 파이터
<넘버 3>에서 불사파 두목 송강호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최영의. 실전 공수도의 고수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무도가이다. 일반인들에겐 고우영의 <대야망>으로 알려졌고,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양윤호 감독의 영화는 방학기의 만화를 원작으로, 많은 무술인들을 꺾고 최강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지나치게 액션 위주로 연출이 되어, 최배달로 불리던 불세출의 무도인의 인생을 살았던 그의 인물됨과 그 내면의 세계를 확인할 길이 없다. 결과적으로 영화 <바람의 파이터>는 실존 인물의 잘못된 영화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만 하다.
DVD 타이틀에는 최배달이 연마한 극진 공수도 배우기 부록을 수록하고 있다. 기본적인 서기에서 주먹과 발을 이용한 다양한 기술을 해설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일본 현지 기자 회견에서는 최배달의 제자인 마키 히사오가 특별 출연, 눈길을 끈다.
아마데우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전기 영화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죽음에 당시 궁정 음악가였던 살리에르가 관여했다는 가정을 토대로 한 피터 셰퍼의 원작을 바탕으로 거장 밀로스 포먼 감독이 연출해,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대 성공을 거두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획득한 F. 머레이 에이브람스를 비롯한 주조연들의 명연과 완벽한 시대고증, 영상과 음악의 탁월한 조화 등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2003년 출시된 <아마데우스 SE> DVD는 오리지널 극장판에서 20여분이 추가된 감독판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추가된 장면에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가 갈등을 빚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들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메이킹 필름에는 F. 머레이 에이브람스가 정말 우여곡절 끝에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기와 공산 치하의 체코에서 망명했던 밀로스 포먼 감독이 부득불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 영화를 촬영하게 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당시 엑스트라였던 사람들 중에는 체코 정부의 비밀경찰이 상당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워너브라더스 출시)
밴드 오브 브라더스
최근 들어 영화를 능가하는 TV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 효시가 된 작품이자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 바로 전쟁 미니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성공시킨 스필버그, 톰 행크스 콤비가 다시금 2차대전 이야기에 눈을 돌려 제작한 작품으로, 101 공수사단 소속 이지중대의 활약상을 소개한 스티븐 앰브로즈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총 10부작으로 이뤄진 드라마는 윈터스 중대장을 중심으로 한 부대원들이 훈련소 시절을 거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하고 그리고 종전을 맞이할 때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진한 전우애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개별 에피소드마다 엄청난 자본과 물량이 투입되어 실제 전장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영상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실제 이지중대원들의 인터뷰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그들이 매 편마다 출연해 자신들의 실제 경험담을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마지막 편까지 보고 나면 흡사 역사 속에서 그들의 여정에 동참한 것 같은 그런 기분마저 들게 하는 작품이다. (워너브라더스 출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한국 노동 운동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기록되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 굵직한 주제를 빼어난 영상미에 담아내는 것으로 평가가 높은 박광수 감독의 의욕작이었으며, 제작 당시 일반을 대상으로 한 제작비 모금이라는 초유의 방식을 도입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그 전까지는 아역 배우로만 알려졌던 홍경인이 성인 배우로의 도약을 위해 전태일이라는 어려운 역을 맡아 직접 분신 장면을 연기하는 등의 성실함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DVD는 화질과 사운드 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트랜스퍼였으나 감독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전태일 열사 관련 자료 등을 어렵사리 모은 부록도 체크해 볼 만하다. (씨넥서스 출시)
사우스파크 극장판
미국 북부의 깡촌 마을 사우스파크에 사는 네 명의 욕쟁이 소년들. 이들은 말도 안돼는 이유로 캐나다를 침공하려는 어른들과 지옥의 사탄, 그리고 동성애자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하는 운명에 놓인다. 앞서 제작된 TV 시리즈에서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실제 인물들을 희화화시켜 깔아뭉갰던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 콤비는, <사우스파크 극장판>에서도 여러 인물들을 출연시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썰렁한 이야기를 했다가 얻어맞는 브룩 쉴즈,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 캐나다 군의 폭격으로 몰살당하는 볼드윈 형제, 미군들 앞에서 야한 쇼(?)를 펼치는 위노나 라이더 등이 그들. 그 가운데서도 단연 압권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CEO 빌 게이츠 회장의 등장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윈도우의 블루스크린 오류로 한참 욕을 먹었던 그가 애니메이션 속에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작전 컴퓨터의 다운으로 화가 난 군의 장군이 변명만 늘어놓는 빌 게이츠를 불러다 한 방에 사살하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지만 후련한 기분이 들었던 이들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워너브라더스 출시)
에너미 앳 더 게이트
2차대전 당시 소련 최고의 저격수로서 전쟁영웅으로 칭송받았던 바실리 자이체프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 그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독일 장교 에르빈 쾨니히와의 숨 막히는 대결이 볼만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 같은 대결이 펼쳐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 상당부분 허구적인 내용들이 가미되었는데 자이체프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타냐의 경우 전쟁이 끝난 뒤 자이체프가 죽은 줄로만 알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영화 덕분에 우리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비롯해 당시 처절했던 독소전의 참상과 소련 군인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가 있다.
DVD 부록으로는 메이킹 필름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더욱 자세히 묘사한 삭제장면 모음이 들어있다. 후르시초프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밥 호스킨스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지만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파라마운트 출시)
존 말코비치 되기
실존하는 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리 속에 들어가는 통로가 있어 잠시 동안 그로 행동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존 말코비치가 그 통로로 들어간다면? 영화의 기발한 스토리도 놀라울 따름이지만 배우로서가 아닌 존 말코비치의 일상생활(물론 그 또한 연기겠지만)도 들여다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
결국 존 말코비치는 꼭두각시 인형사 크레이그에 의해 지배당해 배우에서 인형사로 전직을 하는데, 영화 속에는 그가 인형사로 대성공을 거두는 과정을 소개하는 가상의 다큐멘터리까지 등장한다. DVD 부록 중에는 바로 그 ‘존 말코비치의 절망과 환멸의 무도’라는 영상물이 별도로 담겨있다. 여기에는 그의 동료이자 인형사로서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숀 펜, 브래드 피트(왜 나왔을까?) 등 실제 인물들까지 출연해 뻔한 거짓말에 나름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부록만 보고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 또한 DVD에는 또한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7과1/2층에 관한 황당한 소개 영상도 같이 수록돼 있다. (유니버설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