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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뻔한 직업 & 별난 직업
김나형 일러스트레이션 헌즈 2005-10-31

우리의 직업은 당신의 조건반사보다 뻔하다

<야수와 미녀>의 구동건은 괴상한 직업을 갖고 있으니, 이름하여 ‘애니메이션 괴물 소리 전문 성우’다. 영화에 나온 이런 황당한 직업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등장했다 하면 뻔한 도식이 따라다니는 대표 직업들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예컨대 ‘형사’ 하면, 일단 한국에서는, 지저분한 점퍼를 입고 다니며 백이면 백 다 무식하고, 입에 육두문자를 달고 살며 사람을 예사로 패고 다닌다. 마약을 보면, 손가락으로 꾹 찍어 맛을 본 뒤 “이거 진짠데요” 따위의 멘트를 날리지 않고서는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미국 형사들은 보통 둘씩 짝 지어 다니는데 하나는 졸라 떠들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말한다. 일당 백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여, 특공대도 제압하지 못하는 테러리스트를 맨몸으로 소탕하는 은혜로운 존재들이다. 어어이, 자꾸 이러시면 영미·유미더러 “우우~ 정말 식상한데요~”를 백번은 외쳐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진다구.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직업군과 그 클리셰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아보았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하는 취지에서 사소한 변명도 달았다. 별난 직업 모듬 푸딩은 디저트로 드시기 바란다.

1. 교사

‘영화감상부’ 선배가 비장한 표정으로 권해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한(恨)많은 며느리처럼 펑펑 울었던 기억, 혹시 없으신지? 하긴… 그 부푼 감동을 안고 다음날 등교했다 해도, 삐돌이 담임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산통 다 깨졌겠지만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선생님의 유형은 겁나 훌륭하시거나 겁나 악질이시거나 둘 중 하나다. 전자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갈색 체크무늬 재킷에 조끼와 흰 셔츠를 선호하시며, 나름의 교육관을 굳건히 펴다가 십중팔구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때가 감동의 하이라이트다. 책상 등반, 자전거 체이싱, 오케스트라 연주로 감동의 도가니탕 끓이기 등 학생들의 다양한 세리머니를 구경할 수 있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며, 인상적인 대사 남기기를 즐기고, 쇼맨십이 있는 편이다.

후자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보곤’을 연상케 한다. 코에 걸린 안경(특히 줄이 달린 안경) 너머 39도 각도로 꼬나보며 갈궈대는 것이 매력 포인트. 회초리를 항시 소지하시며 적시 사용하신다. 여차하면 애들을 소시지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분이지만 늘 음지에서 조연만 맡으시는 겸손한 분이기도 하다.

<홀랜드 오퍼스>

<모나리자 스마일>

사소한 변명/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이 땅에는 저런 극단적인 선생님들보다 지금도 ‘담탱이’ ‘수학’ ‘학주’ 등으로 불리는 평범한 선생님들이 더 많다. 머그컵 하나씩 들고 교직원 휴게실에 모여 수다떨고, 주말엔 임용고시 학원에 다니고, 새로 부임한 선생님을 보고 대뜸 마음 설레고, 애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 곤욕을 치르고, 위로는 선생님들에게 아래로는 학생들에게 시달리고, 더러운 꼴도 보고, 그래도 참고, 가끔은 애들과 똑같은 수준이 돼서 욱하고, 사고도 치고, 반성도 하고, 그렇게 늙어간다.

관련 영화 보기 <죽은 시인의 사회>, <홀랜드 오퍼스>, <모나리자 스마일>, <선생 김봉두>

2. 조폭

<친구> 이후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심하게 많이 등장해버린 관계로 요즘은 약간 약발이 떨어진 직업군. 아래 위로 까만 양복이 지정복이므로 개성이 없을 것 같지만 ‘통일 속의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패션 감각은 주목할 만하다. 재킷 안에 무엇을 입느냐가 관건. 베이직한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바지 안으로 깔끔하게 집어넣은 흰색 면티를, 모던하고 댄디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이는 단추 두 개를 푼 나염 셔츠를, 과감하고 화려한 멋쟁이라면 얼룩 무늬가 아로새겨진 스판티를 입어준다.

한국에서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다 보니 서양 갱들처럼 폼은 안 나지만, 오로지 각목, 사시미칼, 도끼 (가끔은 가위)로 승부하는 ‘곤조’만은 칭찬할 만하다. 야심있는 이들은 일본에서 유학하며 칼 쓰는 법을 배워 오기도 한다.

양아치라는 말만 들으면 반드시 흥분하는 경향이 있어, 영화마다 양아치와 건달의 차이를 강조한 다양한 시적 표현이 등장한다. 병원에 갔다면 반드시 담배 피우다 한소리 듣는 장면이 나올 것이고, 윗대가리들이 룸에서 뭔가 모의하고 있으면 ‘곧 칼부림 나겠구나’ 생각하면 틀림없다.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

사소한 변명/ 오우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보면 뾰족한 것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야쿠자 중간 보스 이야기가 나온다. 칼은 물론 주사기나 바늘, 심지어 젓가락만 봐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더 우스운 것은 다른 조직 중간 보스와 ‘쇼부’를 보러 갔는데, 그 인간은 담요가 없으면 공황장애를 일으킨다는 것. “조폭이란 원래 그런 거야. 모두들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오히려 죽어라 뻗대는 거지.” 그러고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관련 영화 보기 <친구>,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3. 정신과 의사

영화에 나오는 정신과 의사들을 보면 도저히 상담받을 마음이 나지 않는다. 자기 차 뒤에 주차했다고 주차 빌딩에서 차를 밀어 떨어뜨리질 않나, 남성성과 여성성을 오가며 사람을 죽이고 다니질 않나, 사람을 먹고 그 껍질로 전위예술을 하질 않나…. 이거 환자보다 더 환자스러워주시니 대략 난감하다.

<검은 고양이> 중 ‘발데마르에게 생긴 일’이나 <얼굴없는 미녀>를 보고 나면 최면치료 하자는 의사도 두려워진다. 최면을 걸어놓고 유언장을 고쳐 쓰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 강간까지 하니 어찌 불안치 않겠는가. 법정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시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가 어이없는 과거지사(심각한 알콜의존 혹은 유아강간 등의)가 까발려지면서 외려 상황을 작살내놓기 일쑤다.

그나마 정상적이라는 의사들도 병원을 보면 정이 떨어진다. (엄청 비쌀 것이 분명한) 도심 고층빌딩에 위치한 병원이 부티나긴 하지만, 심하게 깨끗한 실내에 유리나 금속 같은 차가운 재질로 만들어진 뭔가 잡다한 것들이 가득 올려져 있어 영 병적으로 보인다.

<성질 죽이기>

<얼굴없는 미녀>

사소한 변명/ 가뜩이나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인데, 영화들까지 저 지경이니 정신과 의사들이 항의를 할 법도 하다. 피 튀기고 공부해서 의대 가고, 원하는 전공 고르려고 성적에 목숨 걸고(정신과는 특히 티오가 적다), 좋은 병원에 남으려고 경쟁하고, 힘들게 자리잡아서 병원을 차렸을, 그들은 뭐랄까, 음, 전문가들인 것이다.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근거는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이 이 괴상한 세상에 발 담그고 살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지.

관련 영화 보기 <성질 죽이기>, <얼굴없는 미녀>, <양들의 침묵>

4. 성직자

성직자들은 사이좋게 역할을 분담한다. 우선 교황님을 볼라치면, 대체로 인자하신 분으로서,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신세대 찬송가에 기립박수를 쳐주실 수 있는 쿨함을 겸비하고 계신다. 반면 주교나 추기경님들께선 음모를 꾸미는 막후의 권력자나 애들을 데리고 포르노비디오를 찍는 변태 성욕자 역으로 자주 캐스팅되어 물의를 일으키시곤 한다.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분들은 역시 신부님들이다. 각각 개성이 뚜렷하며,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설정될 때가 많다. (“저는 신앙을 잃었습니다” 같은 대사는 전형적인 신부님용 대사인 것이다.) 부업으로 엑소시즘을 행하시는 분들도 종종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대체로 음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수녀님은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 드물며 그룹 출연을 선호하시는데, 수녀원장님 역으로는 바늘 하나 안 들어갈 듯한 깐깐한 얼굴을 하신 분이 적당하다. 반면, 역시 그룹 출연(약간은 소규모의)을 선호하시는 스님들은 큰스님은 반드시 세상만사 다 초탈한 얼굴을 하고 계시어 그 대비가 재미있다. 성직자들도 인간이라 갈등이 없을 수 없겠지만 합창이나 축구 한 게임이면 대체로 해결된다.

<엑소시스트>

<보리울의 여름>

사소한 변명/ 절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영화지만 <신부수업>의 상황 설정만은 그럭저럭 사줄 만하다. 아무리 신부님이라 해도, 신학대학 다닐 때는 다 피끓는 청년들인 법. 러시아 어린 양들을 구제하러 밤마실을 다니기도 하고, 사랑에 고민도 하고, 그러다 내 갈 길은 이게 아니다, 하고 발길을 돌릴 수도 있는 일 아니겠나. 내가 스페인어 학원에서 만난 수녀님 역시 평범하고 발랄한 보통 사람이다. 잘 웃으시고 수다도 잘 떨고, 친절하고 상냥하신. 성직자도 그리 먼 사람들은 아니다.

관련 영화 보기 <엑소시스트>, <보리울의 여름>, <신부수업>, <시스터 액트>

5. 법조인

법정영화 캐릭터의 스테레오 타입 역시 직종별로 ‘학실히’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다른 데서는 흑인 여성 엘리트들을 잘 볼 수 없어도, 이상하게도 ‘판사’라는 캐릭터만 있으면 (어딘가 오프라 윈프리를 연상시키는) 흑인 여성들이 꼭 등장한다. 검사는 큰 키에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체격을 가진 남자이며, 대부분 달걀처럼 동그란 두상을 하고 있다. 인상은 더러운 편이고, ‘걸리면 100퍼센트 기소’ 따위의 명성이 자자함에도 결과적으로는 꼭 진다. 이 쇼의 주연인 변호사들은 냉정하고 깔끔해 보이는 검사들에 비하면 감상적이고 어딘지 흐트러진 듯한 인물이다. 대부분 젊고 잘생겼으며 천재기가 있고, 밤마다 서류를 뒤적이고 (잠은 언제 자는지 모르겠고), 늘 갈팡질팡 뛰어다니며, 곧잘 좌절하지만 마지막 한방으로 승리를 거머쥔다. 이 과정에서 은퇴하여 처박혀 있는 나이 지긋한 퇴직 변호사 아저씨들이 반드시 도움을 주게 돼 있다. 사건에 휘말릴 경우 젊은이답게 액션까지 소화해줘야 하므로, 여자 변호사라면 조깅 정도는 가볍게 해줘야 한다. 군인들 앞에서 조깅하다 누가 휘파람을 불거든 바로 가운뎃손가락 들어주는 정도의 센스는 발휘해야 예의.

<하이 크라임>

<프라이멀 피어>

사소한 변명/ 지금도 신림동 고시촌에서 슬리퍼를 끌면서 매일 새벽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대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을 수많은 고시생들을 좀 생각해보라. 불같이 태워도 모자랄 젊은 시절을 담보로 매년 희박한 가능성에 목숨을 걸어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씩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말이다. 한국 판사, 검사, 변호사가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 그런 안쓰러운 젊은 날을 보낸 사람들이다. 로스쿨 때문에 이제 저 풍경도 사라진다 생각하니 어째 시원섭섭하다.

관련 영화 보기 <하이 크라임>, <프라이멀 피어>, <공공의 적 2>

6. 댄서

발레, 모던, 탱고, 스포츠댄스, 힙합 등등, 그 종목도 다양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직업 댄서를 아우르는 특징이 있으니 반드시 누군가에게 춤을 가르치게 된다는 것. 그것도 춤에 ‘ㅊ’도 모르는 숙맥을, 더군다나 아주 촉박한 기한 안에 가르쳐 뭔가 대회 따위에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바람둥이일 것 같지만 의외로 여러 다리를 걸치는 일이 없으며, 대신 춤을 가르치는 상대와 잘 되든 못 되든 섬싱이 생긴다. ‘보글보글 파마머리에 어깨가 넓은 점퍼와 디스코 바지, 흰 운동화로 마무리되는 복고 스타일’부터 똑떨어지는 트레이닝 바지에 색과 파임의 정도가 다른 톱 두 개를 겹쳐 입은 모던한 스타일’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는 패션도 꼭 감상하시길. 무대에 섰다가 부상을 입거나 실수를 하여 의기소침해 있다가, 그를 극복하고 멋진 마무리를 해주는 것이 정식 코스. 연애 문제로 한번 더 성숙하는 것은 옵션이다.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

<바람의 전설>

사소한 변명/ 춤이 화려해 보여도 댄서란 배고픈 직업이다. 잘나가면 명성과 돈이 굴러 들어오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찌 해야 엑스트라라도 한번 해볼 수 있을까 안절부절못하고 노심초사하는 것이 저 동네 사람들이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에서처럼 서로 경쟁심에 이래저래 스트레스받을 것도 당연할 듯. 하지만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댄서들도 꿈을 먹고 산다. 춤을 출 땐 모든 것을 다 잊는다는 대사. 영화 속의 것만은 아니겠지.

관련 영화 보기 <댄서의 순정>, <바람의 전설>,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

7. 언론인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나 앵커들은 4가지가 결핍된 인간 유형으로, 특종과 출세에 혈안이 되어 온갖 재수없는 짓을 일삼는다. 자료를 훔쳐서 허락없이 방송하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뷰 방송 중에 자연스런 눈물연기하기, 고위층 인사에게 잠자리 주선해놓고 들이닥쳐 사진 찍기, 출세에 방해되는 남편 고등학생 꾀어 살해하기 등 못하는 짓이 없다. 특히 여기자들은 반드시 히스테리컬한 노처녀 일중독자로 표현되는데, “병신, 지금 찍으란 말이야!” “머리 헝클어진 거 안 보여?” “방금 그 장면 찍었어?!” 같은 대사를 짜증나게 쏘아대며 카메라맨을 돌쇠 다루듯 한다. 방송국 PD들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예고 전화를 받은 그녀, 과연 무사할까요? 채널 고정!’ 같은 문구를 뽑는데 망설임이 없으며, 귀신 출현 직전에도 “표정 리얼한데, 시청률 잘 나오겠다”고 좋아라 한다. 얼마 전엔 한국영화계에도 걸출한 재목이 나타났으니 <너는 내 운명>의 여성지 사진 기자다. “아저씨, 잠깐만요. 걸어가시는 거 뒷모습 한장 찍을게요. 어깨 좀 축 늘어뜨리고 최대한 슬프게.” 취재기자가 툭 치자, 이어지는 결정적 한마디. “왜 이래? 선수끼리.”

<투 다이 포>

사소한 변명/ 솔직히 이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멍석에 말아서 밤새 밟아주고 싶은 사람이 없지 않은 건 사실이다. 되먹지도 않은 게 잘난 척이나 하고, 권위부터 내세우고, 얻어먹는 것을 당연하게 알고, 조작과 왜곡 보도를 일삼는 위와 같은 케이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박봉에 시달리고, 데스크의 세탁(기사를 맘대로 고치는 일)과 압력에 맘 상하고, 폭탄주과 담배로 스트레스를 푸는(지 쌓는지 모를) 가엾은 족속이랑게.

관련 영화 보기 <LA 컨피덴셜>, <투 다이 포>

영화 속 별난 직업

<새드무비>/ 수은/ 놀이공원 인형 수화통역사라는, 언니 수정의 직업도 특이하지만, 동생 수은의 직업도 만만찮다. 놀이공원 인형으로 일하는 수은은 (신민아의 자그마한 머리가 10개는 들어갈 것 같은) 커다란 인형 머리를 쓰고 점찍어놓은 총각을 놀려먹고 다닌다. 캐릭터가 백설공주라 배불뚝이 일곱 난쟁이가 늘 따라다녀 더 귀엽다. 애용하는 간식은 요구르트.

<…홍반장>/ 홍두식/ 동네 반장 반장이 어찌 직업일 수 있을까 싶지만 홍두식은 정말로 직업이 반장이다. 온 동네 일을 책임지고 일당 5만원(반나절 2만5천원)이면 해달라는 일은 다 한다. 어제는 부동산 중개업, 오늘은 페인트공 및 인테리어 업자, 내일은 자장면 배달, 모레는 김밥집, 그 다음 날은 정육점, 고장난 게임기 수리에서 대리 애인까지. 그 활약은 안 보고는 알 수 없당게.

<인터프리터>/ 실비아/ UN 통역사 UN 통역사라니, 보려야 볼 수 없는 경우다(통역대학원에 합격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 마당에 UN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주변 사람을 어찌 찾기가 쉽겠는가!). 게다가 아프리카 언어 전문이라니 더 신기하다. 거기다 희귀 언어가 오가는 전화 통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어 국제 위기를 막는 일에까지 휘말려들다니…. 그녀의 인생도 직업 만큼이나 기구하다.

<얼굴없는 미녀>/ 민석/ 외환 딜러 말 그대로 ‘광녀’ 아내를 둔 이 남자의 직업은 외환 딜러다. 컴퓨터 앞에서 시장 상황을 살피며 초를 다퉈 외국환을 사고 판다. 잘하면 엄청난 이익이, 잘못하면 엄청난 손해가 나는 일로 일종의 현대판 도박사인 셈이다. 본인의 말마따나 피말리는 직업인데 그런 만큼 돈은 엄청 버는 듯. 서울 시내 어딘가 산기슭에 자리한 듯한 그 집, 아직 못 보셨나?

<귀여워>/ 장수로/ 박수무당 이 무당은 아들이 셋인데 세 아들이 다 엄마가 다르다. 젊었을 때 신내림을 받았다는 이 남자는 아기 생기는 부적을 잘 쓴다고 소문이 났는데, (사실인즉) 부적을 써주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 방법’으로 애를 만들어준다. 아들이 데려온 ‘귀여운’ 순이에게 날리는 말이 가관이다. “난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해. 처음 보는 순간 느꼈어. 너 나한테 말 깔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효진/ 커플 매니저 결혼정보회사는 한국과 일본에밖에 없단다. 대학 때부터 청춘남녀들을 엮어주는데 재능을 보였던 효진은 그 끼를 살려 직업으로 커플 매니저를 선택했다. 근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구, 어째… 쯧쯧! 정작 자기는 옛날에 헤어진 남자친구 사진이나 지갑에 넣고 다니는 걸 뭐. 회원으로 등록한 남자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러자 직업윤리가 마음에 걸린다고! 참 실속 없구려, 당신도.

이 기사는 씨네21과 CGV가 만드는 영화잡지 제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