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는 보르헤스의 단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한다. 책의 서두에서 포부르 생 페르가 인용하는 보르헤스의 정의에 따르면 ‘자히르’는 “이슬람 전통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눈에 보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일단 그것과 접하면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나가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사물 혹은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신성 혹은 광기의 은유다. 어쩌면 ‘자히르’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무엇인지도 모른다. 물질적 안락함이나 직업적인 일의 세계, 또는 애타는 사랑이라는 대상 역시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오 자히르>에서 주인공이 집착하는 ‘무엇‘이란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여성이다.
<오 자히르>의 서두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다. ‘나’는 아내 에스테르의 실종과 관련해 혐의를 의심받아 경찰에 체포된다. 아내가 사라진 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어 풀려나긴 하지만, 아내가 종적을 감춘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소설을 쓰고 싶었던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는 것에 집중하지 못한 적 있는데 과거의 에스테르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 자신의 문제 때문에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 적 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방치한 채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오는 권태로움을 잊기 위해 늘 새로운 모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혼자 순례를 떠나라고 한다. 이후 주인공은 소설을 쓰게 되지만 에스테르는 사라지고 주인공은 영문을 알지 못한다.
<오 자히르>는 순례의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막을 건너는 여정 속에서 유목민의 문화를 배우고 일상의 기적을 만난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던 에스테르를 재회한다. <연금술사>가 그랬듯 코엘료의 소설은 신화와 종교, 문화적 체험을 강조하지만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개인주의의 매혹, 그리고 자기 발견의 신화를 강조함으로서 책을 읽는 이와 공감의 폭을 넓힌다. 소설엔 ‘아코모다도르’라는 표현이 있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누구나 한계에 부딪힌다는 의미다. 아코모다도르를 어떻게 극복할지의 문제가 영원한 숙제 같은 것이라는 의미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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