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한 사파를 파고드는 <씬>은 연쇄살인을 둘러싼 고문자 해독과 교회 비판의 모티브 등이 <장미의 이름> 같은 중세 미스터리스릴러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물론 인간도 신도 아닌 사면자의 생존 방식은 변종 <드라큘라>를 보는 것 같고, 악마주의 누아르의 색채는 <엔젤 하트>의 음영을 드리우기도 한다. 죄와 악귀의 스펙터클화는 <엑소시스트>에도 미약한 젖줄을 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작들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마크하지 못한 <씬>의 진정한 참고문헌은, 호러스릴러의 문법에 성과 속을 장식적이고 쾌락적으로 뒤섞어놓은 80년대 이래의 저 숱한 B급 신비주의영화들이다. 과장되게 진지한 캐릭터는 왠지 모르게 빈약하고, 음산한 어둠은 습관적으로 오렌지빛에 물들며, 꽤 치밀할 뻔한 구성은 군데군데 두절된 편집과 설득력 없는 음모 따위로 자꾸만 허술해지는 영화들. 거기서 기독교는 ‘선한 사면자’ 같은 B급 정서를 낳기 위한 선악 이분법의 말초적 변용에 소용될 뿐이다.
이게 무가치한 건 아니지만, <씬>의 감독이 〈LA 컨피덴셜>과 <미스틱 리버>의 그 마력적인 시나리오의 작가였단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브라이언 헬겔런드는 <기사 윌리엄>의 제작진을 이끌고 또 한번 중세 유럽 배경의 미국영화을 찍었는데, 주인공 헤스 레저는 아무래도 사제복보다는 투구와 갑옷이 어울리는 듯하다. 치네치타 세트장의 위력이 발휘된 예스럽고 화려한 건축물만큼은 로마의 정취를 전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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