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퀼리브리엄>은 전후 다 때려치우고 곧장 지옥 같은 ‘평정’의 국가로 우리를 안내한다. 감정이 모든 죄악의 근본이라고 설파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체제가 어떻게 생성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전사는 영화 속에서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서사가 아니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세상을 구출하는 ‘액션’만이 자랑거리이다. 리브리아에 살고 있는 모든 국민은 감정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마다 프로지움을 맞아야 한다. 그 체제를 지키는 살인기계 존 프레스턴은 가공할 실력을 지닌 전사이다. 그가 얼마나 빨리 정부군에서 저항군의 수호신으로 입신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도시의 미치광이 살인자 역을 맡았던 크리스천 베일이 여기에서는 살인을 일삼는 냉혈한과 감정을 되살리는 ‘액션 네오’의 그 양자를 모두 수행한다. 그의 찰나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편집 스타일은 순간순간 눈을 휘어잡을 정도이다. 또한, ‘건카터’라는 권총 무술은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액션의 개념은 그리 나아가지 못했다. 액션에도 개념이 있어야 한다.
<이퀼리브리엄>은 감정없는 세상이라는 ‘불가능한 명제’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사전범죄예방과 만나게 된다. 또는, 과거를 끌어당겨 미래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대다수 SF영화들과 합을 같이한다. <리크루트> <스피어>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각본을 썼던 커트 위머는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히틀러와 베를린을 배경으로 깔았고, 분서갱유의 역사적 사실을 은연중에 가상화한다. 현존했던 역사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이퀼리브리엄>은 재미를 제공하면서도 자꾸 무거운 생각을 짊어지게 만드는 영화이다. 제작자 얀 드봉의 영화철학을 신망하는 관객이라면 그 점을 무시해도 된다. 그럴 때 <이퀼리브리엄>은 ‘감동’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