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은 아니다. 그의 만화는 5년 동안 세상과 격리되었던 나의 빈자리를 매우 적절하게 채워주고 빈자리 그 전과 그 뒤를 아주 편안하게 또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그 이어줌과 채워줌은 아직도 내 안에 잠재해 있을지 모르는 공허한 성(聖)의 관념, 아니 ‘공허=성’의 상태를 예술적으로 세속화하고 역사화하고 현재화한다.
고우영에게도 빈자리가, 있었다. 이 책을 내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당시 군용트럭 비슷한 것에 깔려 팔 다리 몸통이 갈가리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된)…. (중략) 내 아이 <삼국지>를 다치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치료하기 위해 정형외과 일반외과 내과 정신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등의 온갖 전문의들이 대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장갑을 벗지 않는가….
그렇다. 이 책은 1979년 단행본으로 출판될 때(이때도 나는 군대에 있었다) 폭력, 선정성 등을 이유로 100여페이지가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군용트럭’이란 물론 군사정권을 은유한 말이다.
한번 더 읽어보자. 그렇구나… 70년대 민주화운동의 문학-예술은 김지하의 강골찬 풍자와 첨예한 서정, 그리고 김민기의 눈물을 닮은 기다림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고우영의 만화가 ‘팔 다리 몸통이 갈가리 찢’긴 몸을 회복하는 과정은 70년대 반독재 문화운동사가 총체성을 갖추면서 주류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꾸로, 그것이야말로 만화의 과정이고, 만화를 통해 세속이 예술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우영 만화를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거나 너무 민족주의적이다. 그의 만화는 가장 장대한 영웅호걸들의 신화적인 용호상박에 일상적 잡다(雜多)의 결을 과감하게 부여, 영웅주의를 탈피할 뿐 아니라 급기야 잡다의 의미를 심화한다는 점에서 ‘현대적’이다. 김정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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