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세 소녀의 목소리를 담은 <지금 얘기해도 돼요?>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내면과 그들이 놓인 현실을 들여다본다. 2015년 청소년 상담 전화 1388에 걸려온 목소리에서 출발한 이 작품에는 아이들의 신원을 보호하면서도 그들의 이야기와 감정을 전하려는 고민이 담겼다. 이승준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 이야기를 얼마나 잘하는가보다 얼마나 잘 듣는가의 문제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그 목소리를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거쳤는지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제목이 인상적이다. <지금 얘기해도 돼요?>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
영화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소년 상담 전화 1388에 걸려 온 전화속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상담 전화에 처음 걸려 온 한 아이가 머뭇거리다가 상담자의 말을 듣고 “지금 얘기 해도 돼요?”라고 물었다. 그 목소리가 인상 깊게 남았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이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이유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 장편을 기획했다. 이전 작품들은 다소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가져온 말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았다.
- 영화에는 보호관찰소의 음성감독 시스템에 접속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와 시스템이 요구하는 숫자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굉장히 기묘하다고 느꼈다. 아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이지만, 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계음이고 아이들도 기계처럼 숫자를 읊는다. 그 풍경이 아이들이 처한 서늘한 현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영화적 표현으로 가져올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낯선 소리가 주는 강렬 함이 있었기 때문에 도입부에 배치했다.
- 아이들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뒷모습이나 신체의 일부를 담거나 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 아이들의 신원을 보호하면서도 관객이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어떤 점을 고민했나.
촬영 허가의 조건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공개할 수 있다는 동의를 얻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건 치명적인 제약이다. 얼굴을 통해 감정과 정보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대신 뒷모습과 몸에 새겨진 흔적들, 목소리의 떨림과 쉼이 전달하는 감각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아이들의 얼굴과 표정은 무척 중요했다. 얼굴을 보여줄 수 없더 라도 표정은 살아 있으면서 신원을 보호할 수있는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구현 방법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실사 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려면 시간과 비용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방법을 고민한 끝에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방식과 직접한 프레임씩 그리는 방식을 병행해 완성했다.
-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미성년자를 촬영하면서 동의와 자기표현을 존중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 있었나.
누군가를 인터뷰하거나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으면 먼저 시설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동의하면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촬영하면서는 내가 어디까지 물어봐도 괜찮을지 스스로 계속 질문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픈 이야기들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어디까지 질문해도 될지는 늘 고민했다.
- 그동안 사회가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를 다뤄왔다. 전작들과 공유하는 문제의식과 이번 작품에서의 새로운 시도에 관해 듣고 싶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잘 듣는지’ 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전제 하나를 가지고 출발한 뒤 그 안에서 듣게 되는 사람들의 목소 리에 집중하고, 목소리들이 모이면 그 안에서 질서를 찾아 구성을 만들어간다. 이번에는 특히 목소리가 중요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들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형식적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영화라는 제약도 컸다. 처음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가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 만족한다. 기술을 위한 시도를 넘어 목소리와 표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알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앞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하나의 대전제를 가지고 출발한다고 했다. 이번 작품을 관통하는 대전제는 무엇이었나.
일종의 로그라인이다. 내가 나에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자, 영화를 만들면서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작품의 키워드는 ‘경계’다. 2015년 청소년 상담 전화에서 만난 아이들은 학교폭력이나 가정사 등 여러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 아이들은 큰 사고를 치거나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라기 보다, 잘못 발을 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안전한 쪽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경계에 있는 아이들이었다. 이번 작품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하고 답답한지 질문하고 싶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처음 에는 재판을 받고 시설에 들어온 한 아이를 따라가며 그 아이의 변화를 담으려 했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세 아이의 이야기를 담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처음 세운 전제를 놓치지 않되, 현장에서 발견한 인물과 상황에 맞춰 계속 구성을 바꿔나갔다.
- 이 영화가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에 어떤 방식으로 닿기를 바라나.
청소년에 관한 영화지만 10대보다 어른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면 사회가 보이고 어른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마치 거울을 보듯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사회의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영향을 받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과 고통을 안고 있는지는 잘 모를 수 있다. 단순히 물질적 지원이나 제도를 마련하는데 그치기보다, 청소년 문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 제도만 도입하면 된다는 식의 접근보다 그 바탕에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얘기해도 돼요?>를 통해 청소년 문제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함께 보고 논의하는 자리가 전국적으로 마련된다면 사회와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지금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