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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8호 [스페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기대하며, <풀문> 정지혜 감독 인터뷰
글 김민세 사진 백종헌 2026-10-13

중학생 혜미(정민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댄스팀의 센터 자리와 ‘덕질’ 중인 동급생 준(이태양)의 존재다. 리허설 중의 의상 사고로 축제 무대에 서지 못한 혜미는 점차 또래 친구와의 관계에 균열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사춘기 소녀의 일상을 보내는 혜미에게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친구들에게 비밀로 숨겨두었던 지적장애인 부모의 존재가 그렇다. <풀문>은 가족이라는 관계, 청소년이라는 문턱의 시기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어떻게 공간을 보여주고 동시대적인 풍경을 드러낼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섬세한 연출자의 대답처럼 보인다. 혜미의 좁은 집은 숨겨진 공간을 하나씩 들춰내며 비밀스러운 긴장감을 자극한다. 인플루언서, 덕질 같은 극 중 요소는 타자와 마주하는 것에 대한 현대인의 관계성을 정확히 지목한다. <정순>(2022)에 이어 두 번째 장편을 완성한 정지혜 감독은 부산과 경상남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창작자다. 이번 영화에서는 양산과 마산을 담았고, 양산 소재의 개운중학교 밴드부 학생들을 비전문 배우로 캐스팅했다. 자신의 삶과 밀접한 장소에서 적극적으로 영화의 무대를 발견하는 그의 방식은 독립 영화 창작자로서 앞으로 한국의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한다. 아역과 비전문 배우가 어우러져 만드는 활력은 배우에게서 무엇을 발견하고 발휘시킬지 알고 있는 정지혜 감독의 배우 연출력을 증명한다.

- 부스스한 머리, 큰 키, 거침없는 몸짓 등이 혜미라는 인물의 개성을 만든다. 정민주 배우를 캐스팅한 과정은 어떠했나.

작년 촬영 당시 정민주 배우는 18살이었다. 처음에는 16살 중3 학생인 혜미 역과 과연 어울릴까 싶었다. 그렇게 오디션 현장에서 만났는 데,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정말 많은 오디션 참가자 중 다른 후보가 없을 정도로 혜미에 적절한 배우였다.

- 혜미와 친구 은우(김태연)의 조합 또한 중요했을 것이다. 아역들의 연기 지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혜미 모녀와 은우 모녀가 명확히 대비되는 그림이었으면 했다. 혜미 모녀는 서로 생김새가 다른 반면, 은우 모녀는 굉장히 닮았다. 혜미와 은우만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신체적인 발달 등에서 차이가 크다. 연기적인 면에서는 보다 단순하게 접근하려 했다. 극 중 인물의 정서와 상황을 너무 많이 부여해 주면 그 나이대의 배우에는 버거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황에서 느껴지는 확실한 감정만 표현하게 하는 것이 배우들에게도 더편해 보였다.

- 혜미의 집이 인상적이다. 통상적인 숏이 온전 하게 만들어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곳이고,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공간이 계속 발견된다.

촬영 감독을 통해 알게 된 로케이션인데 보자 마자 완전히 매료됐다. 이 공간에서는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을 더 재밌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공간에 맞춰 시나리오가 변경 되기도 했다. 말한 것처럼 촬영에 있어서는 용이하지 않은 굉장히 작은 집이었다. 다만 이 가족이 좁은 집에서부터 시작해 세상 밖으로 차근차근 나오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혜미의 아버지가 다락방에 숨어 들어가는 장면은 그 로케이션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편집 감독은 집 근처에서 아이들이 계단을 오를 때 올라가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이런 재미있는 공간적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 혜미의 집과 친구 유정(문주빈)의 집 또한 대비된다. 이처럼 영화는 혜미와 주변 친구 간의 격차를 반복해서 드러낸다.

나는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아파트에 이사를 갔다. 그 전에는 아파트 생활이 궁금하기도 했고, 어쩌다 한 번씩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 놀러 갔을 때 놀라움이나 질투를 느끼곤 했다. 어쩌면 혜미는 어린 시절 내가 느낀 그런 정서 들이 녹아든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남들과 같은 정상성의 궤도에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갈등하는 시기에 놓여있다. 주거 공간으로 그런 정서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 밴드 합주 장면, 축제 리허설과 공연 장면 등에서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밴드부 친구들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한 실제 중학교 밴드 팀이다. 준 역의 친구 또한 그 팀의 실제 기타리스트고 영화를 위해 용기 내줬다. 혜미와 지효(박지율), 유정이 정월 대보름 행사장에서 놀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장면도 그런 방식의 일환이었다. 마을 축제에 왔을 때 이 아이들이 실제로 어떤 시간을 보낼지 고민했고, 세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만들어주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항상 기대하게 되는 현장이었다. 이런 순간을 발견하기 위해 최대한 힘을 빼고 이들과 떨어져 있으려 했다.

- 영화에서 인물들은 스마트폰 앞에 서서 영상을 촬영하고, 라이브 방송을 송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일반인이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닌 동시대의 모습을 엿보았다.

소셜미디어 노출에 대한 반응과 의식은 세대마다 정말 다르다. 어찌 보면 혜미가 부모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또래 친구들과 매우 반대되는 반응일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에 익숙한 오늘날에는 그것에 대한 반응 만으로 어떤 캐릭터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 관객들도 ‘혜미는 왜 부모가 카메라 앞에 나서는걸 반대할까’라고 궁금해하며 캐릭터를 파악할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혜미와 지효는 준에 대한 애정을 ‘덕질’이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동시대 사랑의 풍경은 이런 것일지 생각했다. 사귀기 전엔 좋았는데 사귀고 나니 안 좋아하게 되었다는 지효의 말도 마찬가지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데 거리감이 존재하는것 같다. 휴대폰이라는 벽이 생기고, 이 벽을 거쳐야만 누군가를 보게 되는 경험이 잦아진 요즘이다. 혜미와 지효가 준에게 느끼는 감정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좋아하지만 가까워 지지 않고 일정한 거리감을 갖자고 서로 약속한거다. 그런 동질감으로 뭉쳤다고 생각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사귀는 것 자체가 배신처럼 느껴지는 관계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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