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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무비랜드 메이킹북>으로 돌아본 우리의 극장 - 무비랜드 극장주 모춘, 소호 인터뷰
이우빈 사진 오계옥 2026-05-18

2024년 3월, <씨네21>은 개관 3주차였던 성수동의 무비랜드를 찾아 극장주 모춘, 소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 무비랜드는 이제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당연히 알 법한 극장이자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매달 새 큐레이터를 섭외해 그들의 선정작을 상영하는 기획은 무비랜드의 대표적 콘텐츠가 되어 전방위적 크리에이터 문상훈, 배우 박정민이제훈,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 등을 큐레이터로 부르고 있다. 지난 4월 발행된 <무비랜드 메이킹북 매일의 일을 만드는 여정>(이하 <무비랜드 메이킹북>)엔 지금에 당도한 무비랜드의 지난 역사가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극장을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공간 브랜딩을 위해 몸과 머리가 지끈했던 기억들, 지금도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의 어려움들까지가 엮여 있다. 책을 펼치며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 무비랜드의 극장주 모춘, 소호를 다시 만났다.

- <무비랜드 메이킹북>을 출간하기로 계획한 시점과 목적은.

모춘 개관 직후였다. 우리 팀은 워낙 기획이라는 일을 즐기고 중요히 생각하기에 그 과정을 모아두는 편이다. 개관하고 나서는 여기가 언제 망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아서(웃음) 얼른 기록을 엮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정도 준비한 셈인데, 다소 오래 걸렸던 이유는 화자의 톤을 맞추는 일에 있었다. 처음 택한 화법은 회사의 목소리를 공적으로 말하는 쪽에 가까웠던 터라, 화자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듯해서 형식을 아예 바꿨고, 소호의 관점에서 일기를 쓰듯 가벼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쪽으로 결정됐다.

소호 앞표지는 마치 박물관에 있을 법한 물건의 사진인데, 뒤표지를 보면 정반대다. 실제로 극장 1층에서 팔고 있는 음식의 광고 이미지다. 종종 주변에선 극장을 만들었다는 것을 굉장히 낭만적이고 근사하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 이면에는 무수한 실패가 있고 결국 ‘장사’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책의 부제를 ‘매일의 일을 만드는 여정’으로 삼은 것처럼, 재미있으면서도 오래오래 일을 이어가려는 애씀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자기 일을 꾸준히, 주체적으로 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 공감하고 힘을 얻길 바랐다.

- 다만 책을 정독하면 ‘어떤 일 하나 하기가 이렇게 힘들다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힘보다 겁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웃음)

모춘 그럴 수도 있겠다. (웃음) 겉으로는 되게 멋있어 보이니까 사서 읽었는데, 막상 내용은 되게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말이 많긴 하다.

- 책의 디자인 구성도 흥미롭다. 중심이 되는 글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이미지를 함께 배치할 법도 한데, 글은 글대로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몰아넣은 터라 환기가 되는 인상이다.

모춘 처음에는 언급한 구성대로 갔다. 본문에 관련 이미지를 함께 배치했는데, 그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소호의 글이 정작 잘 보이지 않더라. 결국은 글과 이미지를 꽤 뚜렷하게 구분하게 됐다.

소호 잡지 같은 컨셉으로 꾸려지길 바랐다. 책디자인을 맡아준 신신팀에 엄청 방대한 자료를 처음부터 잔뜩 넘겨줬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여러 러프한 사진, 중간중간 썼던 일지와 스케치 등 다각도에서 무비랜드를 회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었다. 글의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이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할 것인지를 디자이너가 함께 고민해준 끝에 이러한 배열이 나오게 됐다.

- 잡지라는 형식을 꽤 선호하는 것 같다. 책에서도 “매달 한권의 잡지를 펴내는 미디어 콘텐츠 기업”이라고 무비랜드를 표현했고, <무비랜드 메이킹북>도 잡지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잡지’스럽다는 것이 무엇일까.

모춘 잡지의 개념적인 틀을 사용하고 싶은 것 같다. 무비랜드를 만들기 이전에 ‘모베러웍스’ 일을 할 때부터 여러 불안정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안정된 루틴과 형식 안에서 여러 실험에 임하고 싶었고, 그런 방식을 잡지에 빗댔다. 어떤 잡지든 기본적인 자기들의 형식이 있고, 그 안의 기사가 매호 바뀌면서 한권, 한권 축적되어 잡지 전체의 색을 지니게 된다. 이런 형식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소호 맞다. 극장을 만들 때 우리가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지속 가능성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잡지라는 형식은 수익성과 별개로 가장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뿐 아니라 무비랜드의 구성원들, 관객들, 큐레이터들 등 이곳에 모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길 바랐고, 그 총체적인 합이 하나의 잡지처럼 차곡차곡 쌓이길 바랐다. 다른 말로는 바구니랄까. 무비랜드도 그렇고 <무비랜드 메이킹북>도 그랬다.

- 책에도 계속 언급하지만, 공간을 찾는 이들의 성향과 목적도 무비랜드를 구성하는 주요인이다. 특히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정서적 이유로 ‘결핍, 도피, 유예, 위안’을 삼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운영 과정에서 실제로는 어떻게 느꼈나.

소호 물론 복합적이다. 처음에 설정한 네개의 키워드와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정말로 현실이 너무 답답할 때 도피하듯이 무비랜드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던 관객의 정서는 ‘향유’에 대한 욕망인 것 같다. 원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도 큐레이터들의 면면을 보며 영화에 관심을 지니고, 새로운 취미로서 영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례가 많다. 사실 극장주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큐레이터들이 엄선한 일종의 오마카세를 매번 누리다 보니까 삶이 굉장히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 큐레이터와 상영작을 논의할 때 최소한의 가이드는 있는 편인가.

모춘 전혀 없다! 최대한 열어두고 이야기한다. 창작에 영향받은 작품, 어릴 때 재밌게 본 작품, 좋아서 여러 번 본 작품 등 각자의 기준을 매번 새로 삼게 된다. 최대한 울타리를 치지 않고 그들의 큐레이션을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큐레이터에 대한 위키를 내부적으로 만들어서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진행하려고도 했는데, 최근엔 오히려 그들에 대한 정보를 되도록 차단한 채로 협업하기도 한다. 사실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너무 재밌는 기획들이 생기는 만큼 지금의 방향성을 이어가고 싶다.소호 큐레이터들도 순수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보물을 남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인생의 어떤 이벤트로 여긴다.모춘 큐레이션을 진행하면서 결과론적으로 얻은 생각인데, 이 시스템은 창작의 과정과도 비슷한 것 같다. 창작자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어떠한 관점, 표현을 세상에 나누고자 창작하는 것이니까.

- 큐레이터들이 자연스럽게 어떤 분야의 오피니언리더로서 참여하고, 관객들이 팔로워로서 모이게 되는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 같다. 일종의 직무교육 현장 같은 느낌도 있겠다.

소호 (웃음) 직무교육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믿음직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다.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또래보다 뭐든지 조금 빠른 것 같은, 무심코 따라가게 되는 언니와 오빠들이 있지 않았나. 거창하게 리더와 팔로워라고 개념 짓기보단 그런 언니, 오빠들의 엄선된 관점을 같이 공유하는 정도랄까.

- 빗대자면 예전 싸이월드 시절에 반윤희씨와 그를 보고 자랐던 아이들의 유대 정도겠다.

모춘 와, 정확하다! (웃음)

- 전환점을 돈 느낌이다. 앞으로의 무비랜드는 어떻게 이어가려 하나.

소호 얼마 전에 북토크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한 관객이 본인은 ‘무도 키즈’가 아니라 <모티비>(MoTV, 소호와 모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편집자) 키즈’라고 설명했다. 너무 벅찬 감정이 들었다. 궁극적으로는 누군가가 이렇게 우리와 함께, 무비랜드와 함께 시간을 쌓아간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싶다.

모춘 한자리에 꾸준히, 오래 있는 존재들은 굉장히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2년은 ‘이제 고작’이라고 느낀다. 아직은 먼 미래를 생각하면 괴롭고, 매 순간에 집중하며 매일의 일에 매달리는 상태다. 갈 길이 멀다. 예를 들어서 <씨네21>은 30년 넘게, 코로나19 팬데믹이 오든 누가 뭐라든 마감 기한을 지키고 주간지를 내지 않나. 그게 <씨네21>에 대한 가장 큰 신뢰를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게 되고 싶다.

- 그 말은 기사에 꼭 쓰겠다.

모춘 (웃음) 빈말 아니고 진심이다.

<무비랜드 메이킹북 매일의 일을 만드는 여정>

<무비랜드 메이킹북-매일의 일을 만드는 여정>은 무비랜드 극장주 소호가 썼다. 내용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상, 실현, 실전’이다. ‘구상’ 부분엔 무비랜드라는 공간이 주는 오감의 심상이 무엇일지 상상하고, 찾아오는 관객의 일상을 시나리오화하는 등의 굉장히 상세한 브랜딩 과정이 적혀 있다. ‘실현’에서는 제목 그대로 ‘전쟁 같은 건축’과 장비 구축 비화, 공간 전반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방식 등 물성 있는 극장을 만들어야 했던 이들의 고심이 녹아 있다. ‘실전’ 편에서는 큐레이션 시스템의 배경과 절차,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제, 가장 중요하게는 매일매일 화장실과 상영관, 팝콘 기계를 청소해야 하는 공간 운영자로서의 노고가 다뤄진다. 스스로 잡지 같은 책이 만들어지길 원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곳곳엔 무비랜드 브랜딩에 대한 스케치, 계획안, 공간 설계도 등의 자료와 여러 사진도 실려 있어 보는 재미를 키운다. 무비랜드를 90번 이상 찾았다는 단골 관객과의 담백한 인터뷰가 백미다.

“극장을 운영하는 마음도 그렇다. 언젠가는 수익구조의 벽에 무너지는 날이올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 영생하는 기억을 만들고 싶다.” 소호, 213쪽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와 함께한, 무비랜드의 큐레이션 시스템

무비랜드는 매달 각 분야의 창작자들을 큐레이터로 초빙한다. 큐레이터들은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하고, 때론 상영 후 관객과 함께 대화하기도 한다. 무비랜드는 큐레이터의 작업과 연계한 각종 굿즈나 기획, 포스터를 구상하여 극장 1층과 2층 공간을 꾸민다. 예를 들어 이번에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가 큐레이터로 참여했을 땐, 민희진 대표의 드로잉이 새겨진 소품들을 비치하거나 그의 선정작들에 맞춰 극장의 분위기를 바꾸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두고 그 마음을 공유하는 대화의 자리 역시 이 큐레이션 시스템의 핵심이다.

사진제공 무비랜드

5월7일엔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가 큐레이팅한 <남과 여>(1966) 상영과 GV가 진행됐다. <남과 여>에 대한 큐레이터의 전폭적인 애정으로부터 GV가 시작됐다. “초등학생 때 처음 TV에서 본 뒤, 철들고 나서 대학생 때쯤 두번을 연속해서 봤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후로는 일부러 다시 보질 않았다. 처음 봤을 때의 그 굉장한 감각을 반복하여 느끼는 게 오히려 내 감정을 깎을 것만 같았다”라며 이번 상영회를 통해 십수년 만에 <남과 여>를 감상한다고 회고했다. “영화는 언제, 누구랑, 몇살에, 어디에서 보는지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장면이 기억날 정도로 너무 벅차긴 하지만, 이 영화를 오늘 처음 본 분들과 비슷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민희진) <남과 여>에 대한 이야기가 흐른 후엔, 이 작품에 영향받은 큐레이터의 자전적 이야기도 이어졌다. 이것은 곧 창작에 대한 큐레이터의 진솔한 마음이 영화, 관객과 이어지는 무비랜드 큐레이팅 시스템의 골자다. 이를테면 ‘디렉터’라는 일에 대한 민희진 대표의 뚜렷한 가치관이 공유됐다. “멋있게 지휘하기만 하는 역할이 아니라, 극장으로 비유하자면 상영이 끝나고 상영관 청소까지 모두 끝내는 일이다. 프로젝트의 완결까지를 구상하고, 최상의 시점에 창작자들의 작업을 공개해야 하는 것”이란 신념을 밝힌 것이다. 이렇게 대화의 시간은 2시간 넘게,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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