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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 영화는 읽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읽기 위한 영화다, <너는 나를 불태워>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

<너는 나를 불태워>에서 마티아스 피녜이로는 체사레 파베세의 <레우코와의 대화>, 그중에서도 여성 시인 사포와 요정 브리토마르티스의 대화 파트를 각색한다. 이 영화는 파베세가 자살하던 날 그의 책장에 놓여 있던 <레우코와의 대화>로 시작해 책 속에 담긴 사포의 목소리를 불러들이고, 그것을 낭독하고 각주를 덧붙이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덧입힌다. 다른 층위에 있던 목소리들은 서로의 페이지에 상호 침투하며 장면을 모호하게 교란한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렇게 파베세의 언어인지, 사포의 언어인지, 텍스트를 읽는 배우의 언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로 스크린에 흩어진다. <너는 나를 불태워>에서 화면 안팎의 목소리는 흩어지는 박테리아균처럼 장면에 결부된 모든 것들을 감염시킨다.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영화를 보는 것은 문학의 언어와 영화의 음성이 뒤섞이고 변형되는 과정에 동참하는 일이고, 출발지와 도착지가 결정되지 않은 독후감의 여정에 참여하는 행위다. 그의 픽션은 영화와 현실을 마모하는 규칙이다.

- 여러 차례 각색의 대상으로 삼던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체세레 파베세의 텍스트 <레우코와의 대화>를 선택했다. 이 작가와 텍스트에 어떤 호기심을 느꼈는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각색해 여러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작업의 주기는 어떻게든 끝날 필요가 있었다. 파베세의 <레우코와의 대화>는 영화로 만들기 무척 어렵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파베세의 텍스트를 어떻게 영화로 옮길 수 있을지 검토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고, 그것이 <너는 나를 불태워>에 적합한 방법을 고민하게 했다. 파베세의 책은 영화화를 저항하는 텍스트다. 그 저항이 나를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더 가까이 가고 싶게 만들었다. 파베세가 다루는 욕망과 죽음, 그리고 자살이라는 세 가지 요소, 그리고 그의 텍스트에 남겨진 여성 시인 사포와 그녀의 시는 내겐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다.

- <너는 나를 불태워>는 텍스트에 각주를 달아 영화에 이식하는 시도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영화 자체를 읽는 경험으로 재구성하려는 느낌이 있다.

각주를 다는 작업은 파베세의 텍스트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찾은 돌파구였다. 그의 문자는 여 러 층위의 문맥이 암호처럼 뒤섞여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각주는 문자를 해체하고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는 방법이었고, 나는 파베세의 텍스트가 스크린 위에서 폭넓게 공유되기를 원했다. 그의 문자를 공유하는 것은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동반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자신이 연출한 소크라테스나 파스칼을 다룬 영화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말한 것처럼, 지식은 영화의 이미지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 이 영화엔 교육적인 효과를 부여하고 싶었고, 교육은 스승과 제자처럼 선명하게 나뉜 상하 관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적인 힘이 아니라 즐거운 공유의 작업이다. 이 영화는 읽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읽기 위한 영화다. 나는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문자를 읽는 경험을 통해 파베세와 사포의 책을 읽는 경험으로 번질 수 있길 원했다.

- 파베세의 언어, 사포의 언어, 배우들의 언어가 뒤섞이는 상호 침투가 펼쳐진다. <너는 나를 불태 워>가 언어를 구성하는 형식에 대해 말해준다면.

내가 구상한 각색의 아이디어가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이유는 이 영화가 16mm 볼렉스 카메라로 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테이크에 25초가량 촬영할 수 있는 볼렉스 카메라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분리한다. 따라서 영화를 작업하는 첫 단계부터 이미지와 사운드를 독립적으로 고민해야 했다. 이 조건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결합해서 생각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카메라 앞에서 배우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때도, 나는 다른 것을 말하거나 상상할 수 있었다. 이 조건은 이 영화에 이미지와 언어를 새로 결합하는 자유를 주었고 다양한 경우의 수와 조합으로 언어를 뒤섞을 수 있었다. 볼렉스 카메라가 부여한 물리적 한계가 새로운 실천의 방법을 찾도록 이끌었고 이 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 말해준 것처럼 이 영화는 준비된 시나리오 없이 16mm 볼렉스 카메라로 촬영을 진행했다. 당신은 초기 두편의 영화에서 16mm 필름을 사용했는데, 이 선택은 변화이면서 동시에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있다.

내가 선택한 <레우코와의 대화>를 영화로 만들면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촬영할 수 없다고 느꼈다.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의지를 내세우기보다는 카메라의 조건을 바꾸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볼렉스 카메라는 아마추어적이고 독립적인 작업 방식을 허용한다. 조금씩 촬영한 뒤 기록된 이미지를 편집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했다면 이전에 했던 방식을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방법을 배워야 했고 거듭해서 실패해야 했다. 1년 반 동안 수많은 장면을 촬영하고 선택하고 버리는 과정을 반복 했다.

- <너는 나를 불태워>는 당신의 두 번째 데뷔작 같은 인상이 있다. 인물의 말, 연기(acting), 공간의 현장성이 부각되던 지난 작업과 달리 낭독자의 손, 풍경, 신화적 추상성이 돋보인다. 이 변화에 대해 말해준다면.

맞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시기’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겐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파베세의 텍스트가 내게 새로운 질문을 제공했기 때문에 큰 자극을 느꼈다. 이 영화는 파베세의 문장에 대한 응답이다. 그의 텍스트에 나오는 인물들은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생생한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추상적인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유령이다. 따라서 영화는 유령처럼 그들과 공명해야 했다. 내겐 이 작은 영화를 만들며 끊임없이 재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내가 전에 만든 영화들의 작업 방식에 만족하지만 파베세의 책은 다른 방식을 요구했다. 나는 이 텍스트를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방식에 강제로 맞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텍스트의 에너지와 울림을 보고 싶었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너는 나를 불태워>는 나의 의지나 아이디어보다는 사포와 파베세의 텍스트가 더 큰 영향을 미친 영화다. 그들의 텍스트가 나의 머릿속보다 흥미롭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 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배치된 것은 문자와 조각의 이미지다. 영화가 움직임의 예술이라는 관점을 고려하는 이들이라면 반(反)영화적이라고 여길 만한 요소들을 끌어들였다.

강아지를 빗질할 때 보통 머리부터 꼬리까지 한 방향으로 빗질하지만, 나는 반대 방향으로 빗는 걸 선호한다. 이런 것처럼 영화를 규정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비평가인 앙드레 바쟁은 불순한 영화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는 자신과 다른 것, 심지어 정반대에 있는 것들과 관계 맺을 때 가능성을 확장한다고 말한다. 나는 영화가 문학, 연극, 조각, 건축과 같은 다양한 예술과 상호 작용하면서 새로운 형태와 존재 방식을 찾는다고 느낀다. 이 영화에서 책과 조각은 전체가 아니라 깨져 있는 파편으로 제시되고 그 안에 더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나는 그 점을 좋아한다. 문자와 조각은 부서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의 층을 만들어내고 영화 안에서 공명할 수 있다.

- <너는 나를 불태워>에선 유독 음악적인 면모가 도드라진다.

영화에서 플롯을 지워버리고 나면 이미지와 사운드가 연결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영화의 경우엔 인물의 행동이나 움직임이 서사와 결부되지 않기 때문에 음악적인 방식을 상상하게 됐다. 이 영화의 편집 과정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사운드와 사운드 사이,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의 음악성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 영화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속 가수인 엘리자베스 코튼의 음악에 영감을 받았다. 사포 또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엔 음악적 리듬이 필요했다. 역사 속에서 유실되고 조각난 사포의 음악에 대응시키기 위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영화 속에 조각내어 배치했다.

- 이번 작업에서 배우의 역할에 관해 묻고 싶다.

나는 두 배우(가브리엘라 사이돈, 마리아 비샤르)와 매우 밀접하게 협력했다. 가브리엘라의 집에서 리허설을 진행했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마리아가 작성한 희곡을 바탕으로 연극을 공연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그들은 연극을 제작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연극 포스터를 수채화로 그렸다. 모든 작업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우정과 작업의 유대감이 독특한 관계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영화의 내레이션은 6개월 간격을 두고 네 차례 녹음했다. 처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편집을 한 뒤에 시간이 지나 들어봤을 때, 두 사람의 목소리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현장에서 녹음해야 한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우리는 가브리엘라 집의 주방, 거실, 정원을 돌아다니며 카메라 없이 마이크만 들고 녹음을 진행했다. 두 배우는 단순히 대사를 외우고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고, 텍스트를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제작 과정은 함께 삶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마티아스 피녜이로, 홍상수(왼쪽부터).

- 최근 홍상수 감독의 <수유천>에 관한 리뷰를 쓰면서 자크 리베트가 언급한 ‘강의 영화’라는 비유를 인용했다. 바다와 파도와 박테리아균이 나오는 <너는 나를 불태워>는 어떤 영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포말의 영화’라고 느낀다. 이 영화를 떠올리면 작은 거품과 작은 조각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파베세의 책에서 각색한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 사이의 대화 파트 제목은 ‘바다 거품’이다. 이 영화의 연결고리는 바다나 해안이라기보다는 ‘포말’에 가깝다. 바다 거품은 사라지고 가라앉고 유동적이고 불규칙하다. 그것은 나타나고 사라지지만 다시 무언가를 생성하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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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마티아스 피녜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