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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백의 공포와 시치미의 유머, 노영석 감독
이유채 사진 최성열 2025-08-21

유튜버 인공(변재신)의 전문 분야는 귀신이다. 얼마 전 그의 채널 <귀신 찾는 남자>가 구독자 10만명을 돌파하며 기세를 이어갈 방법을 찾던 중, 자신이 귀신을 보고 불러낼 줄도 안다는 사람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는다. 성공의 감을 느낀 인공은 발신자인 자연인(신운섭)을 만나기 위해 댄스 유튜버 친구 병진(정용훈)과 함께 산으로 향한다. <낮술>(2008)의 취기와 <조난자들>(2012)의 소름을 좋아했던 관객에게 반가운 소식이 당도했다. <THE 자연인>은 앞선 두편을 만든 노영석 감독의 신작이다. 외딴 초가집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을씨년스러운 기운으로 골격은 공포스럽지만, 속은 천연덕스러운 유머로 채워져 있어 충돌의재미를 선사한다. 아마도 올해의 발견이나 코미디영화 리스트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 될 것이다. 연출에서부터 포스터까지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세 번째 장편영화를 두고 노영석 감독과 짠내 밴 대화를 나눴다.

- 결말의 놀라움은 엔딩크레딧까지 이어진다. 감독·각본부터 VFX와 사운드믹싱까지 무려 12개 파트에 ‘노영석’의 이름이 올라간다. 제작비 조달의 어려움과 감독의 다재다능함을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진짜 엔딩이다.

사연이 길다. <조난자들>을 끝낸 뒤 큰 영화를 해보자는 결심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자그마치 5년이 걸렸다. 공들인 만큼 결실이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결국 잘 안됐다. 허송세월한 듯한 마음이 밀려와 급히 새 작품을 썼고 그게 <THE 자연인>이다. 그런데 역시 투자받지 못했다. 거절이 계속되니 오히려 신이 났다. 최대한 내 뜻대로 할 수 있게 된 거니까. 그렇게 분노를 원동력 삼아 혼자서 해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 가내수공업의 실제 과정은 어땠나. 호랑이와 박쥐 떼를 CG로 넣고 카메라도 직접 들었다.

자연인의 증조할아버지가 약초를 캐다 맞닥뜨리는 호랑이는 동물원에서 찍어 합성했다. 문제는 날아오르는 박쥐 떼였다. 새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구현한 에셋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괜찮은 걸 사서 화면에 얹었는데도 어색했다. 가려보겠다고 블러 처리하고 색감을 조정했지만 어쩔 수 없이 표가 난다. 그러니 유심히 보지 말아 주시라. (웃음) 카메라는 짐벌에 올려 촬영했는데 작동 방식이 익숙지 않아 애를 먹었다. 간신히 맞춘 중심은 렌즈를 갈 때마다 다시 잡아야 했다.

- 새벽에 자연인이 혼자 틀어박혀 뭘 먹는 장면들은 어땠나. 조명 사용이며 밤 촬영이 쉽지 않았을 텐데.

순수하게 호롱불에 의지해 찍었다. 요즘 카메라가 좋아서 어두운 데서도 얼굴이 잘 보인다. 그래도 조명이 필요한 신들을 위해 5m짜리 스테인리스 장대를 샀다. 원래는 1m 길이인데 펴면 쭉 늘어난다. 거기에 화선지를 감은 강한 조명을 걸어 달처럼 띄워놓고 밤 신을 찍었다. 촬영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장대를 차에 싣고 다닌다. (웃음)

- 자연인이 끝까지 수더분한 아저씨와 미스터리한 남자 사이를 오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를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애초부터 양면을 다 가진 캐릭터였으면 했다. 원래는 공포쪽에 가까웠는데 신운섭 배우가 자연인을 맡으면서 코믹한 분위기가 강해졌다. 여전히 무서운 느낌을 주면서도 거부감은 덜해져 마음에 든다.

- 그렇다면 구상 당시에는 호러에 가까웠나.

처음 완성한 시나리오는 그랬다. 러닝머신 위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출연한 자연인이 냉이가 나오는 계절도 아닌데 냉이를 심어놨더라. 누가 봐도 마트에서 산 것이었고. 그렇지만 만약 그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자연인이 정색하고 진짜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굽이진 산속에서? 그때부터 수천 가지의 오싹한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 찼고 오프닝과 엔딩을 연결해 어떤 시간 안에 갇힌 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다.

- 웃긴 상황이 계속 터져도 자연인의 초가집이 으스스한 기운을 강력히 내뿜며 분위기를 음산하게 만든다.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에서 찍었다고.

맞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팝콘 눈이 내리던 바로 그곳이다. 때마침 비어 있어 신청했는데 운 좋게 승인이 났다. 입구에 ‘촬영 중’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언덕 위의 넓은 공간을 우리만 썼다. 그곳 마당이 내가 구상한 초가집의 마당보다 훨씬 넓었는데 찍어 보니 화면이 시원시원해 좋았다.

- 그렇게 공간이 크니 풀숏일 때 여백에 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무섭기도 했다.

자연인이 인공과 병진에게 야외에서 꽃등심을 구워 먹자고 하는 밤 신이 기억난다. 이때 신운섭 배우가 잠깐 화면 밖으로 빠져 어둠 속에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무섭던지. 실제 현장 자체가 오싹했다. 특히 불빛 하나 없는 밤, 근처 폐동굴에서 쫄쫄쫄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때.

-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자연인이 만든 밥상의 킥, 소금 잼의 레시피가 궁금할 것 같다. 비하인드가 있을까.

숨겨둔 비밀을 생각하면 갈색빛이 돌았으면 해서 브라운 카야잼을 썼다. 거기에 소금을 부숴 넣고 후추도 좀 뿌렸다. 먹을 사람 입장을 고려해 단것 중에 골랐는데, 입에 넣은 배우들은 다 별로라고 하더라. 나는 괜찮았는데. (웃음)

- 유튜버인 주인공들처럼 본인도 삶을 영상으로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나.

한때 냄새나는 아이돌 그룹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볼까 했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못했다. 대신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만들었다. 6개월 계획으로 시작했다가 2년을 매달렸는데 결국 망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쉽게 다른 쪽으로 일을 벌이지 못하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일단은 글 쓰고 영화 만드는 데 집중하려 한다.

- 차기작 계획은.

내가 태어난 해인 1986년에 초등학교 5학년 셋이 여행 갔다가 고립되는 이야기다. 나도 이 나이 때, 만화책에서 본 무전여행이나 친구 시골집에서 놀아보는 걸 해보고 싶었지만 집에서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에서라도 신나게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썼다. 정말 소중한 시나리오라 아껴두고 있다. 여력이 될 때 <스탠 바이 미>와 <소나기>를 합친 느낌으로 완성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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