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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람들의 선의를 믿는다, <악마가 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5-08-21

데뷔작 <엑시트>로 단번에 주목해야 할 연출자로 떠오른 이상근 감독이 6년 만에 차기작을 내놓았다. 선지(임윤아)의 몸속에 사는 악마가 활동하는 밤마다 길구(안보현)가 선지를 보호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이상근 감독에게 “재난영화로 데뷔전을 치른 내가 이런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도 좋아한다는 걸 소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엑시트>의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에 이어 선지와 길구의 여정을 확인한 후엔 인간의 선의를 신뢰하고 희망하는 이상근 감독의 주제 의식까지 확인할 수 있다.

- 본래 <악마가 이사왔다>를 데뷔작으로 준비하고 있었다고. <엑시트> 이후 다시 예전의 시나리오로 돌아가게 된 계기는.

<엑시트> 이후로 내가 규모 있는 영화를 할 것이란 예상을 많이들 했고 그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차기작을 준비할 무렵 영화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직격탄을 맞았다. 그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던 차에 이 시나리오가 생각났다. 원제목은 <두시의 데이트>였는데 시간이 지나 꺼내보니 당시 왜 시장에서 먹히지 않았는지 알겠더라. 선지와 길구가 아파트 윗집, 아랫집에 살고 길구가 밤에 우연히 기묘한 모습을 한 선지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는 설정은 같다. 그러나 평범한 인상이 있어 ‘악마’와 같은 새 아이디어들을 덧붙였다.

- 일상에 예외적 사건을 접목하는 것 같다.

그런 편이다. 주변을 둘러보며 상상을 펼치곤 한다. <엑시트>도 사람들이 건물을 타고 올라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악마가 이사왔다>는 줄곧 아파트에서 산 나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어릴 때 엘리베이터에 술 취한 아저씨가 타면 그분의 하루를 예상해보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녀가 탔을 땐 가슴이 두근거린 기억도 있다. 엘리베이터라는 작은 공간에 두 사람만 둬도 재밌는 상황을 보여줄 수 있고 공감대도 잘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엑시트>에 비해 인물들의 배경과 관계가 디테일하게 그려졌다. 각본을 쓰고 연출할 때의 접근법은 어떻게 달랐나.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길구가 회사에서 상처를 받고 집에 틀어박히게 된 이유를 더 보여주려 했고 실제로 촬영도 했다. 하지만 극의 진행을 방해할 것 같아 과감하게 들어냈다. 안보현 배우에게는 길구의 전사를 충분히 설명했고 임윤아 배우와도 낮 선지와 밤 선지의 차이에 관해 오랜 시간 논의했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표면적으론 젊은 스타 배우와 감초 연기자가 나오는 전형적인 로코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장르적 클리셰와 더불어 촘촘하게 엮인 서사 속에서 객들이 숨겨진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길 바랐다. 그런 욕심으로 제작진, 배우들과 치열하게 임했다.

- 앞서 말한 것처럼 선지는 낮과 밤에 보여주는 성격과 외관의 차이가 뚜렷하다. 배우에게 어떤 디렉션을 줬나.

낮 선지와 밤 선지의 자아를 꼼꼼하게 설정했다. 밤 선지의 경우 꾸미길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지닌 친구라 옷도 원색으로 입고 머리와 화장을 다양하게 시도한다. 컬러 렌즈 등은 임윤아 배우가 낸 아이디어다. 성격 면에선 ‘악마’ 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을 굳이 외면하지 말자고 했다. 진한 아이라인과 붉은 손톱 등의 외형 외에도 거친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했으면 해서 임윤아 배우와 다양하게 연구했다.

- 아파트 단지를 반복해 배회하는 선지의 밤을 지루하지 않게 연출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했을 것 같은데.

로케이션 헌팅을 하다 결국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촬영을 했다. 익숙한 곳인데도 밤에 조명을 설치하니 분위기가 달라지더라. 알고 보면 주민들조차 모르는 조형적인 요소가 아파트에 많다. 그런 부분을 잘 활용해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 선지와 길구의 여정 중 결이 다른 것이 한강 신이다. 투신하려던 한 행인을 두고 선지와 길구가 상반된 대응을 보인다.

마침내 선지가 아파트 바깥으로 처음 발을 디딘 장면이고 로맨틱코미디, 미스터리 코미디의 탈을 쓴 이 영화가 한번쯤 선사해야 하는 빅숏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개그 쇼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행인에게 ‘용기를 내 뛰어들라’고 소리치다 결국 자신이 다이빙해 수영을 하는 선지가 누군가에겐 웃음을 주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작은 용기를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교훈이나 훈훈함을 주려던 건 아니다. 다만 ‘용기를 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계속 가져가고 싶었다.

- 동화적인 색감과 연출을 강조한 이유에 관해서도 들려준다면.

악마가 존재한다는 하이 컨셉의 영화라 초반 진입이 중요했다. 진짜 악마라는 설정을 주입한 뒤 관객들이 끝까지 잘 따라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원색을 많이 사용하고 클라이맥스나 엔딩 컷에 2D 동화책의 느낌을 부여했다. 더불어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고자 프레임인·아웃을 자주 배치했다.

- 작품에 악인을 등장시키지 않는 건 어떤 의도에서인가.

말한 대로 내가 도가 지나친 악당을 잘 만들어내지 않는 편이다. 영식이 위기의 순간을 만들긴 하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중간 장치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상업영화로서 쫓고 쫓기는 강렬한 추격전이 맞는 구조일 수도 있지만 그게 내 색깔은 아니더라. 이 정도의 설정과 묘사가 내겐 적당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 본인에게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선의를 보이는 인물 또한 자주 등장한다. 그런 캐릭터를 선호하나.

기본적으로 ‘다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사람의 선의를 많이 느끼며 살아왔다. 지하철 사고를 막는 슈퍼히어로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의를 갖추고 살아가며 그 속엔 따뜻함이 있다고 여긴다. 차 밑에 깔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힘을 합치는 영상이 뜨곤 하지 않나. 그런 걸 보면 눈물이 핑 돈다. 이번 영화로 다 같이 선하게 행동하자고 선동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다정함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내가 외유내강의 디즈니를 담당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웃음) 언젠간 강한 빌런의 이야기를 다룰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12세, 15세이상관람가이겠지만.

- 이후엔 또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싶나.

내게 각인된 이미지가 하나 있다. 학창 시절 만화책만 보고 공부만 하던 친구들이 수련회에서 엄청난 댄스, 노래 실력을 보여줄 때의 순간. 누군가에게서 예상치 못한 일면을 발견할 때의 그 소름 돋는 순간이 정말 좋다. 기본적으로는 언더도그 서사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예외적인 일면과 능력을 드러내는 인물의 이야기를 계속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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