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에 서툰 남녀를 주인공 삼은 리얼리티프로그램은 과거에도 있었다. <나는 SOLO>가 모태 솔로 특집을 두 차례 방영했고, <19/20>은 갓 스무살이 된 출연진을 모았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하 <모솔연애>)는 왜 ‘모태 솔로’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나.
조욱형 과거 크게 히트한 예능프로그램 포맷들 중 재해석할 만한 것이 있을지 살펴보던 중 김노은 PD가 ‘메이크오버’와 ‘모태 솔로’를 합쳐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나는 SOLO>가 30대 중반의 솔로에 집중했다면 우리 프로그램은 20대 중후반 솔로가 가진 진정성과 순수함을 비추고자 했다.
김노은 연애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방법을 모르는 분이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솔루션을 제시해주면서 좋은 연애의 방향성을 찾아갈 수 있게 도우려다보니 성장 서사까지 구현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처음부터 예측한 건 아니지만 커플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출연진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어 기뻤다.
- 시청자들이 모태 솔로에게 기대할 법한 이미지를 충족하면서도 연애 리얼리티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을 추려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을 텐데.
원승재 언제 어떻게 썸을 타봤는지, 어떤 연애관을 갖고 살아왔는지, 고백했다가 차인 적이나 소개팅을 망쳐본 적이 있는지 등을 지원서와 면접을 통해 물었다. 수많은 답변을 들으면서 연애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분들을 모았다.
김노은 연애에 서툴지언정 매력이 확실한 분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모태 솔로로 살아온 배경도 달랐으면 했다. 연애를 못한 분들도 있지만 안 한 분들도 있지 않나. 출연진간의 다양성을 고려해 12인을 조합했다.
- 덕분에 메이크오버도 외양에만 집중되지 않았다. 출연진을 구성한 후 제작진끼리 세운 가설은 촬영 중 잘 들어맞았나.
조욱형 PD들과 작가들이 누가 커플이 될지, 누가 서로 끌릴지 여러 조합을 떠올렸는데 그 누구도 맞히지 못했다. 촬영 초반 지수씨가 상호씨를 호감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순간 지축이 흔들렸다. (웃음) 그때부터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리라고 예감했다.
원승재 제주도 숙소 곳곳에 심어둔 장치들의 활용법에 대한 가설들도 있었다. 제작진이 텐트, 루프탑, 카라반 등 다양한 스폿을 마련했다. 거기서 많은 대화가 이뤄지길 바랐다. 하지만 촬영 초반에 누구도 그 장소들을 활용하지 않아 긴급회의를 거쳐 15분 스폿 데이트를 급하게 만들어냈다. 롤러장 데이트에서도 우리의 가설이 빗나갔다. 남녀가 서로 도와주면서 친밀함을 쌓고 스킨십을 하길 바랐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웃음)
- 롤러장 데이트는 <모솔연애> 첫 세 에피소드 공개 당시 많은 화제가 되었다. 이 정도로 서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는데, 그런 출연진의 모습이 상대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기보다 이성애 연애 각본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태도로 비치기도 했다.
조욱형 현규씨와 지수씨가 바닷가 돌길을 걷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그 장면을 편집하면서 웃었다. ‘손 잡아줘야지’, ‘이렇게 말해야 지’ 생각하며 봤는데 막상 내가 현규씨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지수씨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 지수씨가 싫어할 것이라는 예측이 앞서지 않았을까? 나였어도 그 짧은 찰나에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원승재 출연진을 추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이 진정성이었다. 연애를 해보지 않았지만 해보고 싶어 하는 분들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한편 제주도까지 간 만큼 연애 프로그램다운, 풋풋하고 설레는 장면이 나왔으면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진정성이 있을 줄은 몰랐다.
- 100가지 질문에 대한 출연진의 답을 적은 다이어리가 꽂혀 있던 5분 책방도 흥미로운 장치였다.
원승재 상대방의 연애 로망을 알고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나누다가 탄생했다.
김노은 출연진에게 도움은 주고 싶지만 개입은 하고 싶지 않아 간접적인 방법을 찾다가 떠올렸다. 상대방에 관한 일종의 족보 같은 것을 마련해둔 셈이다.
조욱형 상대방에게 ‘어떤 음식 좋아해?’ 같은 질문도 건네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었다. 관심 있는 이성에 관한 사전 정보를 읽고, 그것에 맞춰 움직여 상대를 만족시키는 장면을 상상 했다.
- 다이어리를 가장 성실히 채운 출연자, 5분 책방 시스템을 가장 잘 활용한 출연자는 누구였나.
조욱형 불리고 싶은 애칭, 부르고 싶은 애칭, 원하는 데이트 코스 등 처음 사귀는 사이에 할 법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 가장 짧고 쿨하게 적은 분은 지수씨였고, 가장 길고 낭만적으로 적은 분은 상호씨였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는 그 안에 아주 귀여운 소년이 살고 있다. (웃음) 책방 자체를 가장 잘 활용한 분은 정목씨, 여명씨였다. 재윤씨는 5분 책방에서 필기까지 할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표현을 잘 못한 케이스다.
- 그런 재윤씨가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같은 캐릭터라는 리뷰가 많았다. 대다수의 시청자가 가장 응원한 출연진이 아니었을까.
조욱형 방송에 나오지는 않은 장면인데, 재윤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것은 좋은 아버지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좋은 남편이 돼야 하고, 좋은 남편이 되려면 좋은 남자가 돼야 하고, 좋은 남자가 되려면 좋은 사람부터 돼야 하는데, 나는 아직 사람도 되지 못한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을 터닝포인트 삼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모솔연애>는 곧 재윤씨의 고군분투였다. 그의 따뜻한 심성을 많은 분이 좋아해주신 듯하다.
- 현규씨도 비슷한 분투를 다른 결로 보여줬다. 그의 경우 의욕이 과해 다른 출연진과 트러블을 빚기도 했는데, 이런 장면은 다수의 남녀가 모이는 연애 프로그램에 꼭 한번씩 나오곤 한다. <모솔연애>에도 들어내지 않고 포함시킨 까닭이 있나.
김노은 결국 편집되었지만 메이크오버 중 각 출연진이 모의 소개팅도 거쳤다. 그들이 출연진이 아닌 다른 이성과 대화할 때 어떤 식으로 임하는지 지켜보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때 제일 매끄러웠던 분이 현규씨다. 숙소에 들어가서도 잘해내실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절박해지지 않나. 현규씨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 방송에 많이 나왔을 것이다. “내가 그럴 줄 몰랐는데, 여기서는 인간관계고 나발이고 연애에 직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때, “인생에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연애는 공부가 아니다”라는 진심을 쏟아낼 때 너무나 공감했다.
- 정목씨와 지연씨가 이어진 것을 두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후반부 데이트 장면에 놀랐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들의 서사를 어떻게 보여주고 싶었나.
조욱형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갑작스럽게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됐을 때 드러날 법한 자연스러운 감정이 표현된 게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얼마나 꽉 찼겠나. 제작진이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희석해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김노은 편집하는 동안, 출연진이 시청자에게 특정한 이미지로 비치길 바라는 제작진의 의도를 경계했다. 가급적 자연스럽게, 출연진의 감정에 맞게 이야기가 흐를 수 있도록 중립적인 편집을 지향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목씨가 다른 여성 출연자들과의 관계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1박 2일 데이트를 하러 가서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들께는 정목씨조차 그렇게 관심을 받는 상황이 처음이라 혼란스러워했고, 거절에 서툴렀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 과정이 편집 단계에서 압축돼 설명이 부족했다면 제작진의 미숙함을 탓해주셨으면 한다.
- 왜 출연진들이 대면하지 않는 형식으로 최종 선택을 진행했는지도 궁금하다.
김노은 다른 연애 프로그램들과 다르게 첫인상 선택 결과 또한 본인들이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 그로 인해 오해와 착각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첫인상 선택이 이뤄지면 선택받지 못한 분들이 위축될까봐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 선택도 마찬가지다. 함께 서 있는 동안 분위기에 휩쓸려서 본인 의사가 아닌 선택을 하는 장면만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 프로그램이 추구한 진정성의 마무리가 그런 방식의 최종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모솔연애> 마지막 에피소드는 역설적으로 ‘연애하지 않아도 괜찮다’, ‘연인보다 나를 찾는 게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프로그램을 통과한 소감은.
김노은 단순한 연애 상대를 넘어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싶어 하는 출연진의 진정성이 결국 공감을 많이 얻지 않았나 싶다. 서툰 모습까지 카메라 앞에서 가감 없이 보여준 그들의 용기를 많이들 칭찬해주셨으면 한다.
원승재 사랑을 순수하게 대하는 출연진의 태도를 보며 내가 어떤 연애관, 이성관을 갖고 있는지 돌아봤다. 나 또한 첫 연애를 하기 전에는 모태 솔로였다. 그때 내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들도 그 시간을 떠올리며 출연진을 응원해주길 바란다.
조욱형 갑작스러운 관심과 평가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출연진이 몇 있다. 넷플릭스와 함께 출연진 사후 케어에도 세심하게 임하고 있다. 애초에 누구도 완벽해 보일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가지 사랑의 장면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셨으면 한다.
모태 솔로지만 로맨스는 보고 싶어!
“이게 진짜 사랑 같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에 한 출연자가 <이터널 선샤인>이라 답한 이유다. 연애를 해보지 않았다고 사랑을 모르는 게 아니다. 연애라는 단어가 감히 포섭할 수 없는 비정형의 감정들까지, 그들은 알고 있다. <모솔연애> PD들에게도 그런 발견을 선물한 영화가 있다.
조욱형 PD - <원스>(2007)
“모든 걸 알고 떠나는 남자의 마지막이 기억에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느낀다. 어떤 형태든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어설프게 시작했든,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지 않나. <모솔연애>를 만들며 다시 느꼈다.”
김노은 PD - <타이타닉>(1997)
“옛날 영화지만 여전히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진짜 사랑’의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두 주인공이 나온 장면이 아니다. 배가 가라앉는 동안 방에 물이 차오르는데, 침대 위에 한 노부부가 껴안고 누워 있다. 서로의 마지막을 지키는 그 모습이 진정한 사랑 같았다.”
원승재 PD -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기혼자인 두 PD와 달리 미혼이다. 그래서일 수도 있지만 처음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봤을 때는 이해가 안됐다. 남편이 아내에게 질려 다른 남자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의뢰하다니. 그런데 거듭 볼수록 인물 한명 한명에게 이입되더라. 결혼 후에 할 수 있는 농익은 사랑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들어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