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하 <모솔연애>) 첫화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유사 콘텐츠는 <투 핫!>이다. 입맞춤 이상의 신체접촉이 금지된 섬에서 수영복만 겨우 걸친 남녀가 서로 살을 맞댈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그 넷플릭스 쇼 말이다. 둘은 같은 플랫폼으로 유통돼 글로벌한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 외에도 세 가지 공통점을 가졌다. 첫째, 헤테로 로맨스를 추구하는 출연진이 단일한 출연 자격을 공유한다. <모솔연애>가 이성 교제 이력이 전무한 이들을 모았다면 <투 핫!>은 활발한 성생활을 자랑 삼는 이들을 불렀다. 둘째, 그들은 집합 후 그 자격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한쪽은 경험이 일천해 나설 수 없고, 한쪽은 경험이 넘쳐나 참을 수 없다. 그래서 셋째, 제작진은 맞춤형 감정 교육을 제공한다. <모솔연애>가 ‘메이크오버’, <투 핫!>이 ‘클래스’로 통칭하는 관계 맺기 수업이 낳는 효과를 지켜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 방송 내 결과가 어떠하든, 짝짓기만으로 그치지 않는 성장 서사는 국내외로 범람하는 연애 리얼리티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이 둘을 지탱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에 있다. AI 스피커가 출연진을 향한 지령과 시청자를 위한 첨언을 건네며 조롱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투 핫!>과 달리 <모솔연애>는 ‘썸메이커’라는 타이틀을 새긴 연예인 패널을 내세운다. 서너명이 둘러앉아 모니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리저리 논평하는 건 관찰형 예능의 붙박이 형식. <모솔연애>는 그 관찰을 제작진 다음으로 맡은 첫 번째 목격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정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에서 차별화를 이룬다. 재혼한 MC가 자신의 과거를 들어 조언하는 <돌싱글즈>, 장기 연애 후 결별해본 래퍼가 공감의 눈물을 흘리는 <환승연애> 의 한 장면과 궤를 같이하나 <모솔연애>의 썸메이커들은 말과 행동을 동반한다. 경험 이상의 자원을 활용해 담당 출연자와 메이크오버 세션을 함께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인국은 남성 출연자에게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와 헤어디자이너를 붙여줬고, 이은지는 여성 출연자에게 플러팅이 가능해지는 대화 스킬을 가르쳐줬다. 헬스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20kg을 감량한 출연자, 스토킹 피해,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자 상담사를 만난 출연자들도 있다.
이 과정은 짐짓 문제적이다.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갖춰야 할 체중이나 옷차림을 규정해 편견을 강화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남성 출연진에게 다이어트나 패션 변신과 같이 비교적 단순한 미션이 부여되는 와중 두명의 여성 출연자는 카메라 앞에서 트라우마를 고백해야 했다. 그들의 의지로 부담을 짊어졌다고는 해도 이 불균형은 묘한 찝찝함을 남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모솔연애>는 사회성이나 외모, 경제력과 같은 익숙한 구실을 넘어 ‘무엇이 오늘날 여성을 연애 못/안 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준다. 기존 연애 리얼리티 쇼가 태생적으로 외면해온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폭로한 셈이다. 사랑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에 금이라도 내보겠다는 여성 출연자들의 태도는 공포와 욕망의 충돌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시도에 다름없다. “망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어떤 맹목적인 마음에, 나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귀한 찰나를 본다.”(<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촬영 막바지,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았던 의대생은 연애는 공부가 아님을 깨닫는다. 아끼는 캐릭터 티셔츠를 금지당한 다이어터는 결국 라면을 끓여먹고 귀여운 토끼 얼굴이 그려진 옷을 걸친다. 잘돼가던 남성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듣고도 까먹자 실망한 여성은 그럼에도 그에게 기회를 준다. 한계를 마주하고, 개성을 회복하고,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타인에게 다가가보기. 모두 용감한 결단이다. 모태 솔로지만 연애를 해보고 싶었던 이들이 이룩한 성장은 그만큼 소박해서 더 소중하다. “우리는 도자기가 아니라 지점토”라는 성찰에 이르기까지, <모솔연애>가 따져보게 한 것은 어쩌면 연애보다 사랑, 연인보다 자아다. 연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긍정함으로써 도리어 연애 프로그램으로서 존재 의의를 단단히 하는 역설. 기획 의도와 무관할지언정 그 귀결이 정직하고도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