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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침내, 오늘의 주인공은 -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이정구 성우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5-07-15

“또 자넨가?” 잔인한 사건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모리 코고로 탐정을 발견할 때마다 메구레 쥬조 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모리 코고로의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는 어린이 주인공이 용의자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에피소드 가장 마지막 순간, 마취총에 잠들어 사건을 대리 해결하는 해결사가 된다. 따라서 모리 코고로의 존재 목적은 코난을 위한 자리에 가깝다. 그러나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은 모리 코고로를 독자적으로 일으켜 세운다. 절친한 동료 와니의 의문스러운 피습을 목도한 그는 평소보다 차갑고 냉정하게,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진상을 파헤쳐 나간다. 나가노현 3인방 형사(야마토 칸스케, 모로후시 타카아키, 우에하라 유이)와 뒤섞이는 이야기는 <명탐정 코난> 극장판 중 일본 현지 100억엔 수익을 최단 기간으로 돌파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곳에서 모리 코고로는 마취되지 않는다. 진실을 직면하는 그를 들여다보기 위해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그려온 이정구 성우를 만났다.

- <명탐정 코난: 14번째 표적> <명탐정 코난: 수평선상의 음모> 이후 모리 코고로의 활약과 멋짐을 조명한 극장판은 오랜만이다.

사실은 남모를 어려움이 있었다. 약 3개월 전에 부정맥 판정을 받고 지금 7kg 정도 감량되었다. 몸집이 작아지니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는 소리 지르는 장면이 많은 편이라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뻗어내는 게 중요하다. 모리 코고로가 오랜만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혹여나 아쉬움이 남을까 걱정이 컸다. 그래도 영화 무드가 워낙 좋아서 그것들을 잘 표현하려 노력했다. 요즘엔 모든 스케줄과 몸 관리가 <명탐정 코난> 위주로 돌아간다. 녹음 일이 정해지면 그 전부터 목을 조심스레 달래서 터뜨리고 돌아온다.

- 모리 코고로 탐정은 옛 동료 형사 와니의 피습을 목격한 이후 몹시 동요한다. 그동안 수많은 시체를 발견하고서도 오히려 겁 먹은 딸 란을 달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은 처음 본다.

모리 코고로는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만 받아들이는 단순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진중하고 묵직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래서 나 또한 “꼬맹아~”, “란아~” 하고 낮게 누르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서 힘을 빼고 보다 노멀하게 말하려 했다. 코난에게 마취총을 맞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관철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 변신을 했다.

- 코난은 보통 모리 코고로를 구슬려 사건 현장에 진입한다. “이 꼬맹이, 장난치지 말랬잖아!”라고 말하는 게 으레 하는 대사인데 이번에는 “넌 따라오지 마. 지금 놀러가는 거 아니니까” 하면서 야멸차게 뿌리친다.

정말 냉정하다. 목소리 톤도 일부러 낮추어서 아주 차갑고 냉철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냉철함이야말로 코고로가 인간적임을 보여준다. 자신의 오랜 동료가 타인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슬퍼하며 복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무척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평소 코난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야 했던 상황들과 다르다. <명탐정 코난> 역사상 모리 코고로가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주체성을 내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극장판은 무척 의미 있다. 모리 코고로를 연기하면서 이번 작품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 코고로가 드디어 대접받는구나.

- <명탐정 코난>에 합류한 지 어느덧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성우들과도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우리 네 식구는 연말엔 모여서 다 함께 밥을 먹는다. 김선혜 성우, 강수진 성우, 미란이까지. 돌아가면서 밥값을 내는데 올해는 나네. (웃음)

- 방금 코난은 김선혜 성우, 신이치는 강수진 성우라고 불렀지만 이현진 성우는 미란이라고 불렀다.

이젠 정말 딸 같다. (웃음) 이현진 성우가 어릴 적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모든 시간을 지켜봤다.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됐나보다. 현진이보다 미란이라고 먼저 나온다.

- 본래 외화 더빙을 주로 맡았다. 과거에는 애니메이션이나 CM 등은 주로 거절했다고.

한때 연출자들에게 원성을 많이 얻었다. 하도 거절을 많이 해서. 나는 성우에게 얼굴이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연기를 볼 때 목소리 주인의 얼굴이 떠오르면 안되니까. 그러던 어느 날 PD가 영화 한편을 시사하면서 막 웃고 있었다. <나 홀로 집에>였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가 말하기를 지금까지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 하드> <오션스 트웰브>,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터미네이터> 등 묵직한 작품을 주로 해와서 어려울 거라 하더라. 괜히 오기가 생겨 나섰다가 마브(대니얼 스턴) 역을 했는데 생각보다 나와 잘 어울렸다. 약간 꺼벙하고 바보 같은 캐릭터가. (웃음) 그 경험이 <심슨 가족>의 호머로 이어졌다. 만약 <나 홀로 집에>가 아니었다면 호머와 모리 코고로까지 연결되지 않았을 거다. 성우로 한 우물만 파기보다 동심원을 넓혀 다양성을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깨달았다.

- 실제로 할리우드 미남 역을 많이 도맡았다. 실베스터 스탤론, 조지 클루니, 리처드 기어, 니컬러스 케이지, 발 킬머, 해리슨 포드…. 말 그대로 잘생김을 연기했다. 목소리 연기란 결국 특정 이미지를 체화하는 것일까.

정확하다. 나는 사실 연기파 성우가 아니다. 감각이 좋을 뿐, 지금 성우 시험을 열번 봤으면 열번 다 떨어졌을지 모른다. 초반에는 시련도 많아서 그만둘까 고민도 많았다. 그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내가 꽃미남이나 소년의 목소리를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적어도 강인하고 사나운 캐릭터는 잘해낼 거라 생각했다. 사회에 저항하고 쉽게 굴복하지 않는 인물들. 그렇게 나만의 고유성을 발굴하자 내 자리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물론 모리 코고로에게도 조화되는 부분이 있다. 그는 때로 굴복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 오랜 짝꿍 모리 코고로를 실제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소라양 나온다고 너무 신나하지 말고, 진중하게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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