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INTERVIEW
[인터뷰] 잊지 않으면서, 잘 살아가는 것, <가족의 비밀> 이상훈 감독
이유채 사진 백종헌 2025-07-10

2020년 제2회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대상작 <아내의 비밀>이 <가족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새 단장을 마치고 올가을 드디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소중한 가족 승현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뒤 또 다른 위기에 접어든 한 가족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엄마 연정(김혜은)의 이유 모를 외출이 잦아지면서 남편 진수(김법래)와 딸 미나(김보윤)는 그의 외도를 의심하고, 삭막해진 집안 곳곳에서는 각자가 억눌러왔던 아픔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슬픈 가족드라마로 예측되기 쉬우나 이 영화의 장르는 엄연히 코미디다.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확장성을 갖춘 작품은 당시 심사위원들도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작품”(심재명 전 4·16재단 이사)이자 “살아가며 겪게 되는 다양한 시련을 이겨내는 이야기”(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라고 평한 바 있다. 세월호 11주기를 맞은 올해의 공모전 접수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이상훈 감독을 만나 사회적 참사를 창작으로 풀어낼 때 마주하는 고민과 태도에 관해 들었다.

-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간 어떠한 시간을 보냈나.

앞서 내놓은 영화들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열의를 가지고 준비하던 작품들마저 공중에 뜨면서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타고난 긍정주의자다. 굴하지 않고 영화를 계속 찍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진수 역의 김법래 배우의 소속사가 작은 영화에 투자할 의사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얼른 <가족의 비밀> 시나리오를 제안했고 바로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적은 예산 안에서 캐스팅부터 컨셉까지 긴밀하게 조율했다. 2024년 5월 드디어 크랭크인을 했고 광주와 부산을 오가며 촬영했다.

- 대상 수상 직후 한 인터뷰에서 코미디의 강도에 대한 고민이 드러났다. 결과물을 보니 적절한 수위를 잘 찾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쳤나.

자칫 잘못하면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세심하게 조절해야만 했다. 중간에서 윤기원 배우가 큰 역할을 해줬다. 내 작품마다 나와준 페르소나인데 이번에는 진수에게 연정의 뒷조사를 의뢰받는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출연했다. 극에 현실감과 유머를 균형 있게 불어넣어야 하는 쉽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윤기원 배우라 가능했다. 후반작업에서는 <한공주>를 맡았던 최현숙 편집감독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장면마다 수위와 리듬을 논의하며 가장 적절한 톤을 함께 찾아갔다. 영화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코미디로 풀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유가족을 다룰 때 흔히 상실의 고통에만 초점이 맞춰지지만 나는 이분들이 느끼는 기쁨과 보람, 성장 욕구 같은 다른 감정도 이야기에 담고 싶었다. 아픔을 반복해서 끄집어내기보다 유가족도 삶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일상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 연정의 직업을 건축 현장 관리직으로 설정한 데에서 전하고 싶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다. 연정도 건축 소장도 원칙을 반드시 지킬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우선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건설 현장에 여성 관리자를 둠으로써 한계를 깨고 싶었다. 또 건설 현장은 안전이라는 주제를 가장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게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직접 겪지 않았거나 연관성이 적은 재난에는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건설 현장은 ‘내 집이 무너진다면?’ 같은 구체적인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원칙을 무시해 사회적 재난을 반복해온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그래서 작은 원칙을 지킬 때 비로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나 역시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 극 중 승현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다정한 과거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함께한 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감독의 의지가 느껴져 무척 뭉클했다.

가족이라 해도 늘 다 함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부자와 모자, 남매 사이가 제각기 다른 모양일 테고 쌓은 추억도 다를 거다. 그래서 일부러 승현과 가족들이 단둘이 있는 장면을 넣어 각자만의 방식으로 위로받도록 하고 싶었다. 밝고 건강한 아들이자 오빠였던 승현의 부재는 연정네 가족의 대화를 멈추게 했지만 동시에 다시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세 사람이 우리가 어떤 가족이었는지를 깨닫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 연정이 승현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은 이 신을 쓰던 이상훈 감독도, 현장의 김혜은 배우도 눈물을 참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게도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어 이 장면은 울면서 썼다. 김혜은 배우가 편지를 읽는 내레이션을 녹음할 땐 “우리 최대한 담담하게 가자, 그래야 관객이 덜 힘들다”라고 몇번이나 다짐했지만 불가능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무렵이면 늘 감정이 올라온 김혜은 배우의 눈물 고인 얼굴과 마주해야 했다. 4시간 가까이 녹음을 이어가며 결국 알게 됐다. 이건 억지로 눌러야 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이라는 걸. 연정의 편지는 처음부터 꼭 넣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우리는 잘 살고 있어’라는 말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 개봉 시기를 조정하고 있는 지금, 영화가 누구에게 어떻게 가닿길 바라나.

우선 세월호 유가족 시사회를 꼭 열고 싶다. 유가족 분들에게 영화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앞으로 웃는 날이 많아지길 조심스레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를 더 가깝게 느끼는, 20살이 된 조카와 세월호 참사를 잘 모를 어린아이들도. 기본적으로는 누구든 재밌게 보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 올해 제7회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은 장편 극영화, 다큐멘터리, 단막극 드라마 부문에서 7월11일까지 접수를 받고 있다. 고심 중일 지원자들에게 경험자로서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면.

공모 주제가 안전과 재난이라는 점을 유념해주었으면 한다. 나의 출발은 세월호였지만 핵심 메시지를 “유가족들이 희망을 품게 하자”로 정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넓혀서 풀어갔다. 덕분에 세월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여낼 수 있었고 보다 넓은 맥락에서 안전한 사회에 관한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재난에 노출돼 있고 이야기의 출발점은 아주 사소한 사고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공감 가능성과 기획의 신선함이다. 정형화된 주제를 좇기보다 자신의 삶에서 출발해 확장성을 가지고 접근하길 바란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