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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소년들의 세계를, <여름이 지나가면> 장병기 감독
유선아 사진 백종헌 2025-07-10

기준(이재준)은 원치 않는 전학을 오게 된다. 정 붙일 곳 없는 동네와 학교에서 축구와 게임이 전부였던 기준에게 영문(최현진)과 영준(최우록) 형제는 묘하게 눈에 띄는 존재다. 기준은 어딘지 자신과 다른 영문을 처음엔 두려워하다 친구가 된다. 첫 장편 <여름이 지나가면>을 연출한 장병기 감독은 어린 남자아이들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과 흠모를 사건과 대사, 감정으로 세심하게 조율하여 풀어낸다. 인터뷰 내내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에게 고른 지지와 감사를 전한 감독에게 이 영화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지 차례로 물었다.

- 10대를 갓 넘긴 남자아이들의 영화는 그간 참 드물었다. 왜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싶었나.

시나리오 단계나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주변과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근거는 이 나이대 아이들은 교우 관계에 있어 아직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금기를 주면 초등학교 저학년은 이유도 모른 채 부모 말을 따르고, 고등학생은 분별력이 생겼거나 자기 행동을 책임질 수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야말로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스러운 교우 관계가 생기는 시기여서라는 게 가장 합당한 이유다.

- 여러 소재와 인물의 감정이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각본은 어떻게 써나가는 편인가.

기획 의도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여태 ‘다른 상식을 가진, 혹은 사랑을 배우지 못한 아이’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영문을 상상하면 말이 좋아 사랑이지 음식과 옷, 학교, 친구의 개념이 다른 이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다. 영문, 영준 형제 이야기로 사회 드라마를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영화를 찍고 싶었고 내 구미를 당기는,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다가 도착한 곳이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었다. 영화 연출이나 시나리오를 전공하지 않아서 정해진 순서와 과정의 체계는 따로 없다. 진행 순서대로 첫 번째 신 쓰고 다음 신, 또 그다음 신을 써나가는 식이다. 다만 결론은 항상 가지고 시작한다.

- 어떤 캐릭터는 단선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캐릭터는 복합적인 태도를 보인다. 캐릭터의 일관성과 복잡성 사이의 균형은 어떤 식으로 조성하려 했나.

캐릭터의 밸런스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대신 하나의 캐릭터를 쓸 때 이들은 자기 인생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서 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쓴다.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이 그렇게 살았다고 가정할 때 그들이 내릴 수 있는 선택으로 써내려가는 거다. 기본적으로 인간성을 향한 내 생각에는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그렇다고 절망만을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각본을 쓰는 입장에서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 어떤 인물은 그 특정 상황 안에서 발버둥치는 모습을 담기만 하면 된다고도 생각한다. 인물이 복잡하게 보인다면 이들의 행동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내가 전제해두고 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미성년 배우들의 캐스팅에도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의 오디션을 본 게 처음이어서 너무 걱정됐다. 3일간 오디션을 봤는데 <여름이 지나가면> 배우들은 다 첫날 오디션에 왔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캐스팅했는지를 질문받곤 하는데 딱히 세워둔 기준 같은 것은 없었다. 물론 이미지는 중요하지만 캐릭터의 연령대인 열셋, 열넷, 열다섯살에 영화 현장을 이해해줄 수 있는 배우를 바랐던 정도다. 막연한 마음으로 오디션장에 들어갔는데 극적으로 들리겠지만 들어오자마자 알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어느 배우가 어떤 역할인지 그냥 알겠더라. 선택하는 데 이유는 없었고 전부 감에 의존했다.

- 캐릭터 구축은 섬세하고 상황 설정은 정교하다. 배우들의 감정선 연결에 난도가 높았을 듯한데 현장에서 디렉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미성년 배우와의 작업 자체가 처음인데 또 그 배우의 수가 많기도 했다. 촬영 초반에는 “대사를 하고 이쪽으로 몇 걸음 가”달라는 식으로 세밀하게 디렉팅하는 편이다. 성인 배우에게 이렇게 하면 한두 테이크 만에 적응하지만 미성년 배우는 그렇지 않다. 다섯 테이크를 찍었어도 배우가 보였던 좋은 점에 영향을 미칠까봐 점점 더 말을 못하게 됐다. 몇번 테이크를 더 가면 내가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자주 했던 말이 “너무 좋다, 한번만 더 가자”였다. 습관처럼 이렇게 말하니 영준 역의 최우록 배우는 “좋은데 왜 한번 더 가요?”라고 하고, 최현진 배우는 “감독님 마음에 안 드신다는 뜻이야”라면서 나중에 나를 놀리더라.

- 아이들이 자행하는 폭력이나 욕설하는 장면은 제작에서도, 현장에서도 부담 요소였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최현진 배우가 사투리 연기를 배우고 싶어 하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연출부가 서로 돌아가면서 욕설이 들어간 대사를 녹음하고 누구의 버전이 가장 적절한가 논의도 했다. 결국 내 버전을 최현진 배우에게 보내고 배우가 녹음본을 나에게 보내주면 피드백을 줘서 보완하는 식으로 연습했다. 배우 섭외를 마치고 다 같이 모여 미팅했을 때 욕이 많은 대사가 혹시 부담되지는 않는지를 물었다. 최현진 배우가 오히려 어른스럽게 “폭력이나 욕설은 전부 연기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을 해줘서 안심했다. 그 말을 너무 믿고 싶어서 그대로 믿었다.

- 플래시백을 활용한 장면에서 독특한 편집이 인상적이다.

그 장면에서 말하는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관객이 바로 떠올려야 하는데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편집은 7차가 최종이었는데 3, 4차까지 플래시백이 없었다가 나중에 편집기사님에게 넣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운동화 장면도 마찬가지다. 풀숏으로 촬영한 장면에서 운동화가 잘 보이지 않는 게 신경 쓰였다. 거기서도 역시 기준이가 운동화를 떠올리는 게 필요해서 편집 과정에서 집어넣게 된 장면이다.

-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은 캐릭터도 있을까.

하루 체험 활동이나 한컷 영화 만들기 수업을 진행한 일 외에는 이 연령대의 아이들과 별로 인연이 없다. 따로 취재를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캐릭터들은 옛 기억을 성인이 된 내가 떠올리면서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에 가깝다. 또 요즘 아이들은 내 유년 시절과 아주 다르다. 최우록 배우가 “이거 옛날이야기예요?” 하고 묻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기준은 나의 과거이고 영문은 나의 현재에 가까운 것도 같다. 옛 시절에 남아 있던 인상에서 시작해 사건이나 인물의 알맹이를 채운 건 전적으로 내 상상의 산물이다. 이렇게 하면 그때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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