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추억을 재료 삼아 집을 짓는 <건축가 A> 와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동행했던 이종훈 감독이 그사이 <창가의 작은 텃밭> 을 키웠다. <건축가 A> 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잇는, 그러면서도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들”을 다루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가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 제안을 받아 제작한 이 작품은 “일상에서 지킬 수 있는 행동 가이드”를 지향한다. 5분이 채 안되는 러닝타임으로 건축가 A의 하루를 보여준 까닭도 그래서다. 직접 기른 방울토마토를 따며 아침을 열고, 그 뿌리에 다시 물을 주며 밤을 맞는 A는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 빼두기, 도시락 챙기기, 물 아껴 쓰기, 쓰레기 분리 배출과 같은 과제를 해낼 때마다 ‘에코 에너지’를 만난다. 초록빛 비눗방울과 유사한 그 모양은 이종훈 감독이 <모브사이코 100> 의 악령 에쿠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숯검댕이들을 보며 영감을 얻은 것. A가 환경에 좋은 일을 할 때마다 받는 일종의 “기후 위기 극복 포인트”로 에코 에너지를 생각했다는 이종훈 감독이 각종 의태어를 이어 붙였다. “에코 에너지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도록 팔다리 없이 동글동글하면서도 쫄깃쫄깃한 느낌을 살린 형태를 원했다. 에너지가 나올 때마다 들리는 사운드도 너무 차지지 않되 몰랑몰랑한 물성을 가진 기체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A는 성실히 모은 에코 에너지를 가방 가득 싣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산불로 황폐해진 숲에 도착한 그는 시간을 멈추는 시계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 재해를 수습한다. 이종훈 감독은 “디지털과 거리가 먼 회중시계 디자인에 기계적이면서 투박한 장치들을 심어 시침과 분침을 비롯한 기어들이 거꾸로 돌아가게끔” 했다. 그 덕에 지난 작품에서 할머니에게 새집을 선물한 A가 이번에는 동물들에게 제 집을 되찾아줬다. 문제를 해결한 A가 곰, 토끼, 부엉이 등과 식사를 함께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공생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이종훈 감독은 그 신에 동석한 동물들이 초반에 도망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며, A가 불을 꺼줘 터전을 회복한 동물들이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밑그림을 그렸었다고 전했다.
사실 건축가 A와 이종훈 감독은 많이 닮았다. A를 이종훈 감독의 페르소나라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모두 ‘야호’라는 이름의 시바견을 키우고, 볕이 드는 곳마다 녹색식물을 둔다. 집 안에서 나무를 2m까지 길러낸 데다 별명이 ‘드루이드’인 이종훈 감독은 <창가의 작은 텃밭> 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프로듀서로부터 “감독님 일상을 그리기만 해도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겠다”는 응원을 들었을 정도다. 지난 작품에 이어 이번 작품도 환경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그동안 해온 실천을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종훈 감독은 이제 건축가 A가 주인공인 장편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다. “역시나 집 짓는 이야기인 동시에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차분하게 훑어볼 수 있는 영화를, 장편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표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