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생동함의 증거다. 살갗을 스치는 미풍도 고막을 울리는 아우성도 결국 무언가 살아 있기에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처 없이 떠밀려가는 이들의 진동은 누가 들을 수 있을까. <소리의 촉감> 은 듣는 이 없이 사라질 위험에 처한 공간과 인물에 귀를 기울인다. 청자의 위치에서 시작한 영화는 관객을 향한 매질이 되어 새로운 소리를 어루만지게 한다. “카메라에 담았던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있었다”라고 고백한 박동희 감독은 KBC광주방송의 PD로, 누구보다 사라지는 공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해왔다. 박동희 감독은 전자음악과 사운드아트의 전문가인 김석준 교수를 만나 소멸하는 것들의 진동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7.1채널 3D 입체음향으로 제작된 몰입형 사운드에 담긴 촉각화된 소리는 사라짐의 탄식을 담고 있다.
- 이미지가 아닌 소리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 철학을 공부하면서 소리에 관념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었다. 그러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김석준 교수님을 만나게 됐다. 당시 그는 ACC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특별 강좌를 진행했다. 무턱대고 ACC측에 연락해 강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교수님과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막연히 그렸던 소리에 대한 관점을 기술적으로도 인문학적으로도 구현하도록 도움을 주셨고, 이를 계기로 함께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 제목에서 유추하듯 소리를 촉각으로 인식하려 한다.
<소리의 촉감>은 오래전부터 생각한 제목이었다. 소리는 진동이다. 누군가의 진동이 매질을 타고 타인의 고막을 진동시킬 때 비로소 인식된다. 무언가를 듣는 행위란 나의 진동이 타인의 진동과 연결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담고 있는 인물들이 듣고 있거나 만들어내는 소리를 타인이 한번 만져보고 안을 수 있는 순간을 자아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영화다.
- 몰입형 사운드에 담긴 소리들은 관객에게 어떤 감각을 일깨우나.
직접 경험해보니 진동이나 입체감이 뛰어나 마치 실재하는 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소리나 추상적인 소리도 놓치지 않고 감상할 기회다. 예를 들어 광천동 에피소드에 새소리를 많이 넣었다. 길을 걸으며 자주 듣지만 쉽게 간과하는 소리다. 몰입형 사운드를 통해 그런 미묘하고 사소한 소리도 놓치지 않는 경험을 하길 원했다.
- 광주, 몽골, 튀르키예, 진도로 나뉜 4부작 구성이다. 서로 다른 공간과 인물은 정처 없음이란 공통점이 있다.
당장 사라지고 있는 소리를 기록하려 했다. 광천시민아파트는 전작 에서부터 함께 담아온 재개발 지역이다. 유일한 거주민 손마리아 할머니의 이주를 담는 것이 일순위였다. 몽골은 사라지는 것과 이를 대체하는 것이 교차하는 공간이라 반드시 다루고 싶었다. 튀르키예는 김석준 교수님이 ‘잔나 잔나’라는 노래를 배경으로 프로젝트를 앞서 진행하던 곳이었다. 아랍의 봄(아랍권 민주화 운동) 당시에 울려 퍼진 잔나 잔나는 광주의 <임을 위한 행진곡> 과 맥을 같이하는 노래다. 이를 축으로 튀르키예에 사는 난민 모하메드의 이야기를 담았다. 진도의 경우 실제 장례식장에서 씻김굿을 하는 소리를 포착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진도씻김굿보존회로서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임했던 현장이다. 회원들이 워낙 고령이어서 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제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 소리 자체보다는 인물에게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에 집중한다. 따라서 소리의 주관적 해석이 중요했을 것 같다.
광천동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모두가 떠난 자리에는 결국 듣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긴 무음의 시간을 배치했다. 이는 할머니가 아파트에 살면서 경험한 일상적인 소리와 대비를 이룬다. 소리가 발생해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단절된 공간이다. 몽골에서는 유목민의 삶과 탄광 노동자의 삶 사이에 발생하는 사운드의 대비감에 집중했다. 튀르키예의 난민 모하메드의 이야기에서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소리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데에 집중했다. 실제로 모하메드는 뒤편에서 치는 손뼉 소리 하나에도 화들짝 놀랄 정도로 어떤 소리만 나도 불안감을 느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기에 불안감이 곧 소리를 인식하는 태도로 이어졌던 것이다.
- 진도 씻김굿은 직접적으로 떠나는 인물을 조망한 앞선 세 에피소드와는 확연히 다르다.
망자가 있는 곳은 우리가 갈 수 없는 세계다. 하지만 씻김굿의 가락이 만든 진동이 그 세계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소리는 에너지라서 우리가 말할 때 공기를 울리면서 세계의 위상에 변화를 준다. 변화된 에너지는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영속해나가게 한다. 따라서 고인의 목소리도 사실 이 세계에 남아 있는 셈이다. 씻김굿이라는 진동이 고인의 남은 소리와 만나며 두 세계를 연결한다는 아이디어였다.
- 이처럼 사라져가는 소리를 기록한 은 아카이브로서 의의가 있다.
프로젝트에 자문을 맡았던 사운드 연구자 멜레 야모모 교수님은 맥락이 배제된 아카이빙은 죽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소리 자체보다는 발화자, 발화자의 상황, 청자 등 소리를 둘러싼 맥락들이 중요하다. 따라서 역시 사라지는 것을 포착하는 사운드 아카이빙이지만 인물을 둘러싼 상황과 공간을 함께 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 세 사람은 재개발, 사막화, 난민 등의 이유로 이주하게 된다. 이는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전 지구적 문제다.
모하메드는 기자 출신이다. 그가 소개한 다른 동료 난민들도 성실하고 박학다식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참 많이 울었다. 광천동을 떠날 수밖에 없던 손마리아 할머니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광산업에 종사해야 했던 유목민 가정의 가장을 보면서도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하지만 은 앞서 열거한 문제에 대해 명확히 선언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소리는 일종의 질문이다. 관객들이 정처 없는 사람들이 경험한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만의 결론에 이르길 바란다.
- 김석준 교수와 함께 차기작을 기획 중이라고.
전작에 참여한 사운드 아티스트 윤지영, 조예본 작가도 함께한다. 차기작의 제목인 는 물에 대한 지식을 뜻한다. 하지만 지식의 어원인 그노시스(gnosis)는 믿음과 신념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기후 위기 등으로 사람들이 기존에 가진 물에 대한 믿음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을 포착할 예정이다. 좀더 도전적인 영상과 몰입형 사운드를 구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