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자 프로그래머의 추천작과 선정의 변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절대 아니다. 지금처럼 소비 중심의 삶을 지속하고, 플라스틱에 둘러싸인 일상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결국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를 앞당겨 소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실제로 2020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보다 평균 7 배 더 많은 폭염을 겪게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는 이제 불평등하게 나뉜 기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비관적인 전망과 절망적인 수치들이 쏟아지는 지금,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찾아 나가고자 한다.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과 행동의 동기를 줄 수 있는 5편의 영화를 선정했다. 이 작품들은 기후 위기, 생물다양성, 인간과 자연의 공존 등 다양한 환경 이슈를 각자의 시선으로 조명하며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지구의 미래를 성찰하게 한다.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캔 아이 겟 위트니스?
Can I Get a Witness? / 앤 마리 플레밍 / 캐나다 / 2024년 / 110분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성
가까운 미래, 인류는 수명을 50살로 제한하는 국제협약을 통해 기후 위기와 빈곤을 극복하고, 검소하고 평등한 지속 가능 사회를 이뤘다. 소비와 기술은 과거로 되돌아갔다. 막학교를 졸업한 재능 있는 화가 키아(키라 장)는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어머니 엘리(샌드라 오)와 함께 살며, 임종 절차를 기록하는 ‘기록관’으로 첫 출근한다. 이제 그녀가 만날 사람 들은 한때 90살 넘게 살던 과거를 기억한다. <윈도 호스>의 앤 마리 플레밍 감독은 이번 장편애니메이션에서도 서정적인 연출 감각을 발휘한다. 이 영화는 그러한 균형의 필요성을 조명하며, 깊은 성찰을 이끈다.
곰과의 위험한 공존
Dangerously Close / 안드레아스 피흘러 /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 2025년 / 90분 / #재야생 #동물권
2023년 4월, 이탈리아 트렌티노숲에서 26살 청년이 곰 JJ4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알프스 지역에서 수십년 만에 발생한 곰에 의한 인명 피해로, 유럽 최대 규모의 곰 재야생 프로젝트가 직면한 현실을 드러냈다. 멸종위기에 놓인 갈색곰 복원을 목표로 한 트렌티노 프로젝트는 초기엔 성공 사례로 주목받았지만 곰의 개체수가 100마리를 넘어서며 인간과의 충돌이 잦아졌다. 곰이 민가로 내려오거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서 갈등은 확산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인간과 야생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불타오르다
Incandescence / 노바 아미, 벨크로 리퍼 / 캐나다 / 2024년/ 105분 / #산불 #기후변화 대응
다큐멘터리 <불타오르다>는 10년 넘게 기후와 인간의 관계를 조명해온 노바 아미와 벨크로 리퍼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토착 공동체와 소방대원,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한 영상과 함께 담아내며, 단순한 재난 그 이상을 이야기한다. 기후 위기의 가속화로 전통적인 진화 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산불은 메가파이어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퍼스트 네이션의 전통 지식에서 대안을 찾는다. 제어된 불은 생태계 회복의 도구이며, 어떤 식물은 불의 열기로 씨앗을 터뜨리고, 어떤 생명은 불이 남긴 토양에서 다시 피어난다. <불타오르다>는 계절의 순환을 따라 불의 고대적 리듬- 파괴, 잔해, 재생- 을 따라가며 불을 두려움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그린다. 잿더미 위에 피어나는 생명처럼, 이영화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재생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말한다.
평화를 찾아서
Searching for Amani / 니콜 고믈리, 데브라 아로코 / 미국, 케냐 / 2024년/ 76분 / #기후변화 적응
케냐 중부의 라이키피아 자연보전지역은 반복되는 가뭄과 강수량 감소로 생태계가 무너 지고 지역 공동체간 갈등까지 격화된 상태다. 이 혼란 속에서 13살 소년 사이먼 알리의 아버지가 의문의 죽음을 맞고, 사이먼은 친구 하론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여정에 나선 다. 원제 <Searching for Amani>에서 ‘Amani’는 스와힐리어로 ‘평화’를 뜻하며, 아버지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기도 하다. 그 절박한 외침은 평화에 대한 갈망을 상징 한다. 감독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아동들에게 카메라를 나눠주는 프로젝트를 통해 사이먼을 처음 만났고, 이후 4년간 그의 삶과 성장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영화는 기후변화가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갈등과 불평등, 식민주의의 유산, 문화적 충돌과 같은 복합 적인 문제로 사람들의 삶에 깊이 침투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와일드 코스트 워리어
Wild Coast Warriors / 닉 쉐발리에, 리 우드, 귀도 잔기, 워렌 스마트 / 남아프리카공화국 / 2023년 / 71분 #에너지 #환경운동 #화석연료 #생물다양성 #인권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부 해안의 와일드 코스트는 풍부한 생물다양성과 원주민 아맘폰도족의 전통적 삶이 이어지는 땅이다. 2021년, 이곳에 세계적 에너지 기업 셸이 해저 지진파 탐사를 시도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이 탐사 방식은 고래를 포함한 해양생물에 큰 피해를 주고, 주민들의 생계와 문화까지 위협했다. 이에 아맘폰도 공동체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2022년 남아공 고등법원은 셸의 탐사 권한이 부당하게 부여됐다며 사업 중단을 명령했다. 이는 이윤을 앞세운 거대 기업에 맞선 원주민의 희귀한 승리이자, 기후 위기 시대에 남긴 소중한 선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아맘폰도족이 셸과 임팩트 오일 앤 가스, 그리고 정부를 상대로 벌인 투쟁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