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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의미가 확장된 뱀파이어 범죄물, <씨너스: 죄인들>

1932년, 흑인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이 시카고에서 미시시피로 돌아온다. <씨너스: 죄인들>의 기본 설정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의 금주법 시대는 1919년에서 1933년까지다. 시카고의 갱단 두목 알 카포네는 금주법 시대에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다. 노예해방은 공식적으로 1863년의 일이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하게 존재했다. 특히 남부 지역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행패가 극심했다. 그런데도 참전 용사이면서 시카고의 갱이었던 스모크와 스택은 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맞아도 아는 놈들한테 맞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스모크와 스택은 백인 호크우드에게 건물을 사서 클럽 ‘주크 포인트’를 시작한다. 중국인 상점의 그레이스와 보 부부에게 음식 재료를 사고, 클럽의 간판도 부탁한다. 후두교 마법사인 스모크의 전 부인 애니에게 요리와 카운터를 맡긴다. 사촌 동생 새미는 블루스 뮤지션으로 첫 공연을 하게 된다. 스모크와 스택은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갱에게 훔친 와인과 맥주를 팔면서, 흑인만의 공간을 만들려 한다.

<씨너스: 죄인들>의 전반부는 돌아온 탕아의 신고식이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소문이 무성한 스모크와 스택은 트럭에 손을 댄 사람에게 거침없이 총을 쏜다. 의사를 불러주고 치료비도 주지만, 절대 관용은 없다. 스모크와 스택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흑인이다. 가능한 일일까? <씨너스: 죄인들>은 백인들의 세상에서 흑인 갱이 살아남는, 거의 불가능한 투쟁을 그린 누아르의 세계 같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나타난다. 외딴집에 백인 남자가 도망쳐온다. 인디언들이 쫓아온다며, 제발 구해달라는 남자의 이름은 레믹. 총을 겨누는 젊은 부부 뒤로 인종차별주의자 단체인 KKK단의 두건과 옷이 보인다. 금을 주겠다는 말에 부부는 레믹을 안으로 들인다. 인디언은 돌아가지만, 부부는 레믹의 동료가 되어야만 한다. 뱀파이어의 몸에 영원히 갇힌 영혼.

사회적 의미가 확장된 뱀파이어 범죄물

쿠엔틴 타란티노 각본,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겹친다. 전반은 긴장감 가득한 범죄물, 후반은 뱀파이어 격투물로 질주하는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아드레날린의 분출만을 원하는 순수 오락영화다. 영화의 바깥은 완전히 지워버리고, 오로지 스크린 위에 존재하는 것만을 즐긴다. <씨너스: 죄인들>은 같은 궤도를 달리면서, 전혀 다른 목적을 추구한다. 모든 인물과 대사, 장면, 음악에 사회적 의미가 넘쳐난다. 차별당하는 자의 처연한 감정이 장면마다 사무친다. <씨너스: 죄인들>은 외면당한 미국 흑인의 역사를 장르적으로 담아내고, 사회적 의미로 확장한다.

뱀파이어 레믹은 아일랜드 민요를 부른다. 과거의 침략자들이 성경 문구를 강요했다고 한다. 아마도 수백년 전의 레믹은 피해자였을 것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어 더 약한 자를 공격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며 역사는 흘러간다. <씨너스: 죄인들>의 뱀파이어는 KKK단과 손을 잡고 흑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백인이고, 악이다. 레믹이 클럽 주크 포인트에 흥미를 느낀 것은, 새미의 블루스 음악 때문이다. 블루스가 나와 너, 이승과 저승, 과거와 미래를 이어준다는 것을 감지하고 빼앗으려 한다. ‘문화적 전유’의 중의적 의미로 읽힌다. 흑인의 지난한 삶이 만들어낸 고유의 문화를 빼앗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

<씨너스: 죄인들>에서 블루스 음악은 단지 배경음악이나 등장인물의 역할을 드러내는 것 이상이다. 스모크와 스택이 선물한 기타를 치면서 새미는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노래를 들려주자, 처음 들은 스택의 눈은 휘둥그레 빛난다. 그러나 스모크는 뮤지션을 포기하고, 목사인 아버지 곁에서 영가(Negro spiritual)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하라 말한다. 블루스 뮤지션의 미래는 대체로 참혹하다. 유명해져봐야 백인에게 착취당하고 버림받을 뿐이다. 하지만 새미에게, 흑인에게 블루스는 그저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고 영혼이다.

블루스(Blues)의 기원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힘들게 일하면서 고된 노동의 피로를 달래며, 현실을 한탄하며, 미래를 소망하며 부르던 노래. 단지 슬픔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타인과 주고받으며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고 생각하며 어울리는 노래였다. 흑인들이 남부의 농장을 떠나 북부 도시의 공장으로 가면서 블루스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현대 팝 음악의 기원에는 블루스가 있다. 그리고 블루스는 단순한 음악의 장르 이상이다. 고통, 저항, 생활, 희망, 정체성 등 흑인의 모든 것을 담은 문화적 표현이다. 흙에 바탕을 둔, 일하는 자의 노래다.

새미의 첫 공연이 주크 포인트에서 열린다. 목사인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에게 말을 던지는 노래로 시작한다. 클럽을 가득 메운 흑인들은 새미의 노래와 연주에 공감한다. 빠져든다. 노래를 들으며 하나가 된다. 그러면서 클럽은 지금 이곳을 넘어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환영을 보여준다. 브레이킹댄스와 랩과 디제잉을 하는 흑인들이 있고, 경극과 쿵후를 하는 중국인도 있다. 원주민의 가면과 춤도 있다. 블루스 안에서 모든 경계는 허물어지고, 모든 한계를 초월한다. 오텀 듀랄드 아카포의 촬영은 신비롭다.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저마다의 영혼을 한껏 발산하는 주크 포인트를 시대적 배경과 초자연적 요소를 모두 아우르며 하나의 화면에 담아낸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라이언 쿠글러가 <씨너스: 죄인들>에서 추구하는 주제가 완전하게 드러난다.

그것이야말로 새미의 아버지와 낡은 질서를 옹호하는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블루스가 악마의 음악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영혼의 타락을 두려워한다. 블루스의 거장인 기타리스트 로버트 존슨은 악마와 계약했다는 전설, 신화를 남겼다. 평범했던 존슨이 갑자기 출중한 연주 실력을 보여주자, 미시시피 델타의 한 교차로(crossroads)에서 악마를 만나 영혼을 넘겨주는 대가로 재능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크 포인트가 바로 교차로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만난다. 너와 나, 과거와 미래, 지구와 우주가 하나의 시공간에 얽힌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새로운 선택의 순간이다. 스모크와 스택은 클럽이라는 흑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서 새로운 길,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 것이다. 블루스는 영혼의 타락이 아니라 새로운 영혼을 만나 성장하는 길이다. 개인의 서사를 유려하게 전달하는 루드비그 예란손의 음악은 <씨너스: 죄인들>을 음악영화로서 보아도 탁월한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씨너스: 죄인들>은 전반부 누아르와 후반부 호러의 드라마틱한 결합을 넘어 블루스 음악, 저항의 역사, 노골적인 욕정, 이음새가 없는 현실과 환상, 후두교와 스피리추얼리즘 등 모든 요소가 멋지게 어우러진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이면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영화이고, 장르적 쾌감을 한껏 변주하며 달려가는 장르영화다.

흑인 주인공의 블록버스터 흥행이 의미하는 것

<씨너스: 죄인들>은 할리우드 메이저에서 만든 블록버스터다. 약 9천만달러가 제작비이고, 개봉과 마케팅 비용으로 1억5천만달러는 들었을 것이다. 올해 4월20일 미국에서 개봉하여 5월20일까지 북미에서 약 2억4천만달러, 전세계에서 총 3억1천만달러의 수익을 넘겼다. 흑인이 주요 타깃인 영화가 북미 흥행 1위를 차지하며 수익을 올리는 경우는 1990년대부터 익숙한 일이며, 라이언 쿠글러의 <블랙 팬서>는 흥행에 성공한 건 물론 흑인 커뮤니티와 아프리카에서 흑인의 자긍심을 드높인다며 찬사를 받았다. 그것은 <겟 아웃> <어스> <>의 조던 필이 개척한 길이기도 하다. 조던 필과 라이언 쿠글러는 장르를 앞세우고, 흑인의 비주류 역사와 정서 가득한 영화를 대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위대하고 혁신적이다.

<HBO>의 드라마 <왓치맨>(2019)은 오프닝에서 1921년 ‘블랙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던 털사 그린우드의 흑인 대학살 사건을 보여준다. 1996년 ‘털사 흑인 대학살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족되어 진상 조사를 시작했고, 2001년 위원회는 ‘대학살’이라고 규정했다. 2020년대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털사 흑인 대학살의 인종 폭력에 대한 국가적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조던 필이 크리에이터인 <러브크래프트 컨트리>(2020)에도 털사 대학살이 언급된다. <씨너스: 죄인들>의 스모크와 스택은 아버지가 죽은 후, 미시시피의 흑인 공동체인 바이유시에 갔다가 시카고로 향했다. 그들이 시카고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흑인들만의 공동체를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털사만이 아니라 1919년 아칸소의 엘레인, 1923년 플로리다의 로즈우드 등 많은 흑인 공동체가 대학살로 파괴되었다.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어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심한 규제에 시달리면서 힘을 잃어갔다. 흑인 공동체가 살아남으려면 결국은 강력한 힘, 폭력이 있어야 한다고 스모크와 스택은 생각하지 않을까.

조던 필은 <겟 아웃>에서 백인이 흑인을 세뇌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노예’로 삼는 사회적 구조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은 영화사에서 지워진 흑인의 역사를 재건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UFO로 거대 미디어의 탐욕과 착취를 은유한다. 이렇게나 신랄하고, 흑인을 내세운 영화로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는 블록버스터를 만든다는 것이 조던 필의 탁월한 성취다. 라이언 쿠글러도 이제 <씨너스: 죄인들>로 조던 필에 견줄 업적을 이루었다. 마블 슈퍼히어로영화의 틀과 공식 안에서 흑인들의 신화를 창조한 <블랙 팬서>의 감독 라이언 쿠글러는 <씨너스: 죄인들>로 다시 한 계단을 올라섰다.

<씨너스: 죄인들>은 라이언 쿠글러 자신의 ‘흑인 정체성’에 천착하여, 세계의 혐오와 폭력에 반대하는 모두를 공감하게 한다. 흑인의 역사이면서, 우리 모두의 절실한 사회적 이슈다. 하지만 반드시 그걸 느끼지 않아도 좋다. <씨너스: 죄인들>은 스모크와 스택, 사촌인 새미의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고, 멋진 화면 때문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에필로그로 나오는 두개의 쿠키까지도 완벽하다. 발길 닿는 어디나 찬란하게 빛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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