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데뷔작 <톡 투 미>로 제작비의 20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필리포 형제는 유튜브 채널 <라카라카>(RackaRacka)의 운영자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2025년 5월 현재 688만명의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이 채널은 아직 형제의 초심을 머금고 있다. 11년 전 업로드한 1분 남짓의 UCC들이 남아 있어서만은 아니다. 이 쌍둥이는 A24가 배급한 공포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첫 장편을 만들었음에도, 개봉 후 이 작품을 홍보하는 영상을 직접 편집해 올렸음에도 “영화감독 지망생들의 폭주!”(Wannabe Film-makers on a rampage!)라는 채널 소개글을 그대로 두고 있다. 이 문구는 마치 예언처럼 또 한편의 ‘폭주’를 낳았다. 필리포 형제는 유튜브에서부터 호러, 고어, 코미디를 넘나들면서 혈기를 분출해온 크리에이터답게 신작 <브링 허 백>에도 광란의 장을 펼친다. 이야기는 부모를 잃은 앤디(빌리 배럿)와 파이퍼(소라 웡) 남매가 새로운 보호자 로라(샐리 호킨스)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두 감독은 깊은 숲속 집 한채를 배경 삼아 슬픈 인간들의 결투를 부추긴다. 그 결과 관객은 화면 속 으스러진 신체만큼이나 조각난 마음으로 스크린을 응시하게 된다. <브링 허 백> 개봉을 맞아 화상으로 만난 대니 필리포, 마이클 필리포에게 이 괴로운 정화작용을 이끌어낸 여정을 들었다. 시종 유쾌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간 쌍둥이 형제는 호러 거장들에 대한 리스펙트도 잊지 않았다.
- 전작 <톡 투 미>에 이어 <브링 허 백>의 주인공 앤디도 부모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청소년이다. 두 작품을 모두 본 관객으로서 쌍둥이 형제이자 공동 연출자인 당신들이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 궁금해지더라. 그런 인물들에게 끌린 이유가 있나.
대니 필리포 우리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니! (웃음) 전작 <톡 투 미>와 이번에 개봉하는 <브링 허 백>의 시나리오를 정확히 같은 시기에 쓰고 있었다. <톡 투 미>의 한 장면을 쓰다가 도저히 풀어나가지 못하겠으면 <브링 허 백>으로 넘어가 다른 장면을 쓰는 식이었다. 거의 동시에 집필한 작품이기에 서로 같은 테마를 여럿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겪은 사건과 감정이 그때의 창작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지 않나. 유년기 또한 비슷하다. 공포영화의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어린 시절에 경험한 충격, 두려움, 불편함을 꺼내곤 한다. 그게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 영화를 보면서 공감과 만족을 느끼게 하지 않나 싶다.
- 마이클의 의견도 궁금하다.
마이클 필리포 딱히 더 할 말이 없는걸?
대니 필리포 마이클은 나와 함께 각본을 쓰지 않는다. <톡 투 미> <브링 허 백> 모두 작가 빌 하인즈먼과 내가 공동으로 작업했다. 마이클의 역할은 우리 두 사람이 쓴 각본을 보고 얼마나 별로인지 지적하는 것뿐이었다. (웃음)
마이클 필리포 내가 그런 걸 잘한다!
- 앤디의 동생 파이퍼는 시각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둔 친구를 통해 영감을 얻어 창작한 인물이라고 들었다.
대니 필리포 그렇다. 그 인물을 구체화하기 위해 파이퍼처럼 부분적으로 시력을 손실한 분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경험을 참고해 인물을 만들고, 영화에 반영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특별히 어렵다기보다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부분 시야를 가진 배우를 파이퍼 역으로 캐스팅하는 데 진심이었다. 그래서 배우 소라 웡을 찾은 것이 큰 행운이었다. 그녀는 무척 훌륭한 연기를 해냈고, 자신의 일부를 파이퍼라는 캐릭터에 쏟아부었다. 그녀가 이 작품에서 이룬 모든 성취가 자랑스럽다.
- 소라 웡 배우를 만난 과정을 더 들려줄 수 있나.
마이클 필리포 오디션을 거쳤다. 호주 전역에 캐스팅콜을 보냈는데, 한번도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소라가 온 것이다. 우리는 오디션에서 특정 상황을 제시하면서 그녀에게 즉흥 연기를 부탁했다. 이런 감정이 바로 파이퍼가 겪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소라는 즉흥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고, 실제 촬영을 하면서 더 어려운 장면을 찍을 때도 놀라운 변신을 선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단했지만 사실 오디션에서부터 그녀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한편 당신들의 영화 속 어른들은 그다지 어른스럽지 못하다. <브링 허 백>의 로라도 믿음직스러운 어른 행세를 하지만 결국 자신의 미성숙함을 드러내고 만다.
대니 필리포 관객이 거북함을 느끼는 동시에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을 원했다. 강한 모성애를 가졌지만 상실에 따른 슬픔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틀렸고, 해야 할 일 앞에 괴로워하는 인물을 우리 나름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로라는 앞에서는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을 짓지만 타인에게 과잉보상을 일삼으며, 아이들이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런 어두운 면모를 표현하는 것이 참 까다로웠을 텐데, 다행히 우리에게는 최고의 배우 샐리 호킨스가 있었다. 그녀는 이 시나리오에 깊이 공감하면서 로라라는 인물을 디자인했고, 세트장을 꾸미고 의상을 고르는 것도 함께했다. 그녀는 <브링 허 백>의 모든 요소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협력자였다.
- <톡 투 미>와 <브링 허 백> 모두 인간이 상실에 대처하는 갖가지 방법들을 보여준다. 그런 주제를 다룬 호러는 관객을 괴롭게 만들면서도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다른 장르가 아닌 오직 호러만이 줄 수 있는 감정적 정화작용이 있다고 믿나.
마이클 필리포 물론이다. 호러는 다른 방법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주제나 감정을 재밌게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공포스러운 소재에 끌렸고, 그걸 스토리텔링에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왔다.
대니 필리포 그 장르가 우리 어깨에 날개를 달아서 이야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느낌이랄까. 그 장르 안에 있으면서도 관객에게 너무 고압적이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순수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호러영화를 예술의 한 형식으로 사랑하고 있다.
- 각자 가장 좋아하는 호러영화를 꼽는다면.
대니 필리포 여전히 <엑소시스트>(1975)를 역대 최고의 호러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죽도록 사랑한다. (웃음) <브링 허 백>에 어마어마한 영감을 준 <제인의 말로>(1962)도 좋아한다. 주연 베티 데이비스는 엄청난 배우다.
마이클 필리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1957)이다.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세월을 초월해서 지금의 관객도 보기 불편할 것이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라 보는 내내 불안하지만 나는 이렇게 불편한 관람 경험에 환호하는 편이다.
대니 필리포 잉마르 베리만의 <늑대의 시간>(1968)과 같은 고전을 볼 때도 그렇지 않나.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시간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다. 제작 시기와 상관없이 관객에게 불편함을 선사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것 자체가 그 감독들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