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코끼리를 먼저 이야기하자.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와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는 배우 이혜영과 이영애의 차이만큼 다르다.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이혜영의 장점을,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는 이영애의 장점을 극대 화해 연출했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대본이 다르다.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헨리크 입센의 원작을,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는 입센의 원작을 각색한 리처드 이어(<노트 온 스캔들> <칠드런 액트>)의 각색본을 활용한다.
한 관객이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캐스트 보드 앞에서 말했다. “헤다 가블러가 아니고 헤다 테스만이네?” 그렇다.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원작 그대로 헤다를 헤다 테스만으로 명명한다. <헤다 가블러>는 가블러 장군의 딸인 헤다가 테스 만가의 안주인이 된 첫 이틀의 이야기다. 작중 모든 인물은 가블러 시절의 헤다를 추억하는 동시에 헤다를 테스만 가문의 사람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헤다는 테스만으로만 남길 거부하고 그 방식이 아무리 저열할지라도 수많은 인물의 삼각관계를 주도하며 권태를 극복하려 든다. 어쩌면 헤다는 아멜리 노통브의 <사랑의 파괴> 속 문장을 삶의 신조로 삼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해서 남들이 스스로를 파괴하기를 원하는 여자. 하지만 그의 성이 가블러든 테스만이든, 헤다는 자신이 파괴하려는 인물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19세기의 관객이 헤다를 악녀로 규정했던 이유와 21세기의 관객이 헤다의 행동을 정상참작하는 이유는 그 근원이 같다. 작중 헤다만이 유일하게, 관습 따위 제쳐두고 욕망대로 움직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생물학적 성별이 마침 직접 차별과 구조적 차별이 교차해 피해를 보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기간 5월16일~6월1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시간 평일 오후 7시30분, 주말 오후3시, 화 공연 없음
등급 15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