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만화수입이 개방된 이후 최신 인기만화는 물론 10년도 넘은 과거 작품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입되고 있는 실정에서 무려 1200만부나 팔린 초인기만화 한종은 아직 국내에 특이하게 수입되지 못하고 있다. <신혼일기>라는 해적판으로 국내에 출판된 ‘카츠 아키’ 원작의 <둘이서 H>(‘H’는 일본어의 ‘변태’(hentai)라는 뜻의 말이지만, 최근에는 성(性)적 이미지나 행동을 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라는 작품이다. 국내 검열도 요즘은 어지간한 폭력이나 누드에는 많이 관대해지긴 했지만 누드나 정사신이 자주 등장하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아직 정식출간이 멀어 보인다. <Young Animal>에 1997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둘이서 H>는 현재 17권까지 단행본이 출간되어 있는데 이 작품의 꾸준한 인기 비결은 온갖 변태적인 성행위도 허용해주는 일본의 일반적인 성인포르노성 만화와는 다르게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본 25살의 평범한 샐러리맨 ‘오노다 마코토’군와 똑같은 입장인 ‘가와다 유라’양의 결혼을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성적 고민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현대에서 ‘부부’라는 새로운 가족의 출발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웬만한 성교육책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하고 세밀한 성지식을 알려주는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일본에서 7월 말 출시된다. 성인 취향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인기도에 비해 단지 2편의 OAV로만 제작될 예정이어서 아쉽긴 하지만, 이 두 주인공 ‘초보 부부’의 섹스 모험담을 애니메이션으로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TV의 약진에 따라 질저하가 두드러지고 있는 일본 OAV계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사이킥 아카데미>는 얼마 전부터 TV에서 방영을 시작하였으나 깔끔하고 귀여운 원작의 이미지랑 많이 달라진 캐릭터 디자인으로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지만 이 <둘이서 H>는 그럴 염려는 없어 보인다. 자금투입이 유리한 OAV라는 매체적 특성과 함께 감독 겸 그림콘티를 모리야마 유우지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처럼 국내에 많이 알려진 감독은 아니지만 <프로젝트A코> <청공소녀대> <정글로 가자> <지오브리더스> 등 수많은 작품에서 활약한 배테랑으로 특유의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과 3D의 현란한 기계적 액션과는 느낌이 다른 파격적이면서도 유연한 동선처리 능력은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애니메이터이다.
이 작품이 국내 심의에 들어가면 자주 보게 될 누드나 정사신 때문에 ‘유해물’로 판정받기 쉬울 것이다. 성(性)을 단순하게 터부시하고 숨기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정확한 상식을 알려줘 진정 ‘가족’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눈들이 많은 곳에서는 발전의 씨앗은 자라기 힘든 일이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