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사라진 유명 배우를 추적하는 TV프로그램의 의뢰로 움직이기 시작한 어느 영화감독의 여정을 따른다. 어촌의 트레일러에서 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남자는 도시로 돌아와 묵은 기억을 들춰보거나 지금은 늙어버린 옛 동료들을 하나씩 차례로 만나고, 훌리오의 딸 아나(아나 토렌트)가 아버지와 재회할 가능성을 엿본다. <벌집의 정령> <햇볕 속의 모과나무> 등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명상적인 전작들에 비하면 선명하고 인과적인 플롯을 가진 영화지만, 2024년의 풍속도에서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회상과 성찰이 꽤나 검질긴 자태로 여겨질 법하다.
미겔의 궤적은 곧 자신이 만든 영화 <작별의 눈빛> 속 주인공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사라진 것을 되살리기 위해 방랑한다. 추적의 모티프는 곧 삶에서 미뤄둔 질문을 재생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미술관, 필름 보존고, 영사실, 호텔 방의 피아노 앞에서 펼쳐지는 대화는 종국에 인물들을 그토록 찾아 헤맸던 존재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되 더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다. 페르소나의 죽음과 망각 앞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 닫힌 극장이 마침내 다시 열리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종반부는 눈을 감고서도 오랫동안 망막에 맺혀 지속된다. 영화란 우리를 망각으로부터 일깨우는 것이라고, 여전히 믿는 이들에게 에리세의 신작은 깊이 침습해 영사기의 빛과 소음이 아득히 사라지는 순간까지 내내 전율하게 한다.
빠르면 약 10년 주기로 장편을 내놓았던 과작의 감독 빅토르 에리세가 가진 사연과 함께 들여다보면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복각된 영화적 집념의 완성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 본래 의도에서 절반만 완성된 그의 영화 <남쪽>의 잃어버린 한 짝이라면?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본다는 것은, 세월의 더께를 헤치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까지 영사된 어느 필름영화의 소생을 극 중 인물들과 함께 마주하는 경험이다. 빗물로 가득 찬 신발을 벗어둔 채, 골대 앞에 서서 무형의 공과 선수를 상대하는 남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의 명장면을 오마주한 듯한 이 장면은 어떤 의미로든 영화의 존재론 혹은 운명에 관한 관객 각자의 대답을 요청할 것이다.
close-up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영사기사다. 오랜 동료 미겔에게 쓴소리도 마다않는 영사기사 막스(마리오 파르도)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필름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미겔과 해후한 그는 수많은 필름캔이 보존된 창고에서 <작별의 눈빛>을 단번에 찾아내고, 선명한 화면이 떠오르자 보존가로서의 긍지도 숨기지 않는다. 무덤덤한 얼굴로 평생 영화에의 경배를 실천해온 한 사람의 인생에 감탄하기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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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의 정령> 감독 빅토르 에리세, 1973
<벌집의 정령>은 시골 마을을 찾은 이동식 영화 트럭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괴물과 사랑에 빠진 5살 소녀의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절반은 연기, 절반은 그저 현실을 살아간 소녀 아나 토렌트가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아버지와 소원해진 장년의 딸로 나타난다. 두 영화 속 캐릭터의 이름도 모두 아나다. 배우의 세월을 흡수한다는 점에서,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오래전에 이미 남긴 영화를 향한 연서라는 점에서 <클로즈 유어 아이즈>와 공명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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