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담임 선생님마저 윤철을 통해 지나의 휴식을 제안하고, 곤두박질치는 지나의 방황은 갑작스러운 출가로까지 이어진다. 한편 윤철은 우연히 알게 된 여자 영지와 애틋한 사이가 된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보였던 영지 또한 갈수록 그에게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는 영지가 윤철에게 느끼는 감각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된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행자가 된 지나는 어느덧 윤철과 전보다 다정한 관계가 된 듯하지만, 이제 불도를 따라 예절과 경어로 마주하는 이들은 더는 부녀의 모습이 아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을 뜻하는 ‘절해고도’는 본편의 세 인물 각각을 의미하는 듯하다. 김미영 감독의 <절해고도>는 시나브로 변화하는 삶의 단면을 고요하게 조망한다. 윤철의 목소리가 지난 과거를 회고조로 읊고, 기억의 틈바구니에서 유독 살아 숨 쉬던 순간들이 불쑥 튀어오른다. 특히 <절해고도>의 시간은 엉뚱해 보일 만큼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금 끼워 맞춰진다. 덥수룩한 수염과 긴 머리카락으로 등장한 윤철은 시간이 지나 단정한 쇼트커트를 하고 있는가 하면, 지나는 파란색으로 염색했던 머리를 삭발하고 집을 떠난다.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머리카락은 그대로 시간의 변동을 짐작하게 만든다.
사이사이에는 죽음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절해고도>의 인물들은 모두 한번씩 죽음과 유사한 사건 혹은 치명적인 고통을 경험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으로 인해 이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안위를 염려하고 평안을 기도하는 이들로 살아갈 책무를 떠맡게 되었다. 큰 소리 없이도 들끓는 각자의 마음이 거대한 풍경 속에 녹아든다. 산책과 사색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