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소감을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받은 게 참 많구나 싶다. 관객의 사랑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 배우들을 올리며 얻은 것도 많다. 후배를 볼 땐 나도 지치지 말아야지, 선배들 보면서는 나도 저렇게 가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무대를 쉽게 여기지 못하게 됐고 좋은 배우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었다. 회전율이 빠른 업계인데 <뮤지컬 이야기쇼>덕에 이석준이란 배우가 꾸준할 수 있었다.
-무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공연이다. 시작이 궁금하다.
=공연 뒤 배우를 기다리는 한 팬의 모습에서 시작됐다. 한겨울에 공연 끝내고 나왔는데 팬이 밖에서 덜덜 떨며 장미 한 송이 들고 배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 배우를 불러다줬더니 팬은 꽃을 건네고 고맙다고 인사만 하고 갔다. 그것만으로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무대에만 서니까 뮤지컬 배우에 대해 관객이 사적으로 알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 내가 팬들 대신 궁금한 걸 물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발굴되지 않은 배우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됐다.
=뮤지컬을 하고 싶다며 지방에서 올라와 지금 무대 만들며 경력 쌓고 있는 후배가 있다. <뮤지컬 이야기쇼>를 알고 나서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하더라. 좋은 뮤지컬 배우가 참 많은데 소수 대형스타에 관객의 관심이 치우쳐 있다. 대형스타와 신인배우 사이의 중간 그룹이 엄청나게 넓다. 한번이라도 이들이 관객 앞에 설 기회를 주고 싶었다. 시즌1 끝나고 관객이 돌아오라고 해준 것도 고마웠지만 배우들이 ‘그거 안 해요?’ 할 때도 참 좋더라.
-예능 형식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한 건가.
=처음 생각과 달리 무대에 갇혀서 보여줄 수 없는 게 생겨났다. 우리가 두 시간 반 공연을 하지만 그 시간 안에 작품과 배우의 매력을 최대치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 예능 프로그램은 대여섯 시간씩 촬영을 해서 진짜 좋은 것으로만 딱 두 시간을 채워넣지 않나. 우리에겐 편집이 없으니까. 뮤지컬 배우들이 예능에 나가면 예능 포맷에 이들을 맞추게 되니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의 매력이 잘 안 느껴지기도 했다. 그 틈새시장을 공략한 거다. 뮤지컬을 사랑해주는 관객이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들이 진짜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의도도 있었다. 혼자 뮤지컬 배우 준비하는 친구들에게도 벽을 허물어주고 싶었다.
-스탭과 배우가 모두 노개런티라 쇼를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았을 텐데 반대 의견은 없었나.
=기획을 던진 건 일년 전쯤이었다. “우리 방송 하자.” “왜요?” “재밌잖아. 관객이 배우 보고 싶어 하는데 볼 수가 없잖아. 그럼 우리가 만들어줘야지. 우리가 지금껏 해온 게 그건데.” 결국 좀더 많은 관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싶었던 거다. 다행히 내가 복이 많은지 아무도 반대하진 않더라. 예전과 달리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멀어졌다. 전엔 공연이 뜻대로 안 돼서 내가 힘들어 울고 있을 때 직접 관객이 등을 두드려줄 수 있었을 정도로 관객과 배우가 가까웠다. 요즘은 매니지먼트가 커지면서 배우가 관객에게 거리를 두는 것도 있고, SNS가 흥하면서 관객이 배우에게 상처 내는 것도 쉬워졌다. 이렇게 멀어지는 게 무서웠고, 예전의 거리가 그리웠다. 배우들이 평소 진짜 웃긴데 우리끼리만 아는 것도 아쉽지 않나. 방송전문가들의 편집기술과 이들의 캐릭터를 합치면 굉장히 재밌는게 나오지 않을까. 차세대 <뮤지컬 이야기쇼>가 가야 할 방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험이 필요했다.
-뮤지컬 배우들이 예능 포맷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뭔가.
=의외로 관객은 배우들이 주로 가는 맛집, 대학로에서 배우들이 시간 때우는 법, 학교 다닐 때 연기는 어떻게 연습했는지, 이런 걸 궁금해한다. 맨 앞줄을 채우는 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위성시계까지 맞춰놓고 티케팅을 하는 마니아 관객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모든 것을 가져가려고 ‘밀녹’(몰래 녹음하는 행위), ‘밀캠’(몰래 녹화하는 행위) 등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한다. 배우들이 모르는 게 아니다.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라면 모르는 척하는 거다.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준말. 비매너 행위로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에 대처하는 법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얘기들을 배우들이 언급하는 걸 재밌어하기도 한다. 보여줄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웃음)
-반대로 공연 볼 때의 현장성은 못 느끼게 되지 않겠나.
=가장 위험한 생각은 공연을 그대로 찍는 거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뮤지컬이 침체기에 접어든 것 같다. 이 시기를 잘 넘어설 필요가 있는데 지금의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포맷을 통해 새로운 관심을 환기하고 싶다. 공연 예술에 있어서 관객은 소비자가 아니다. 배우와 마찬가지로 행위자다. 관객의 반응이 없으면 배우가 아무리 잘해도 훌륭한 공연이 될 수 없다. 관객은 공연을 즐길 권리도 있지만 그 공연을 함께 잘 만들어가야 할 의무도 있다. 클래식 공연이나 오페라는 공부하고 가면서 뮤지컬은 왜 그냥 보러 올까 궁금했다. 우리가 보여주는 준비과정들과 비하인드를 보고 관객이 공연에 대한 매력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게 되면 더 재밌을 거다.
-뛰어난 예능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판국에 <배우수업>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관객은 웰메이드를 원하는 게 아니라 재밌는 걸 원한다. 우리의 상대는 <무한도전> <1박2일>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파일럿의 목적은 그 ‘비스꾸무리한’ 것만 만들면 된다는 거다. ‘아이고,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네’ 정도면 된다. 초등학생이 영화를 만든다고 하자. 여기다 작품성을 논할 건가, 완성도를 논할 건가.
-그동안 공연 전까진 배우 라인업이 비공개였는데 이번엔 사전에 캐스팅을 밝히고 시작한다는 차이도 있다. 이석준, 최대훈, 정상윤, 박해수, 최성원, 임철수까지 여섯명이 정예부대로 첫 출격한다.
=<무한도전>의 영향인지 여섯명이 완전체인 것 같다. (웃음) 내가 아는 배우들 중 가장 독특하고 재밌는 이들이다. 내가 무척 잘 아는 배우들이기도 하다. 익숙하지가 않아서 뮤지컬 배우들은 카메라 들이대면 굳어버린다. 서로 격식을 차리지 않고, 고삐를 풀어놓을 수 있는 여섯명이랄까.
-지난 11월30일 연극 <사회의 기둥들>(김광보 연출)을 마쳤다. 배우로서 다른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내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거다. 올해 활발히 활동했는데 지금 약간 우울증이 온 것 같다. 슬럼프 아닌 슬럼프인데, 변태할 시기가 왔다. 청춘의 역할을 못할 때가 올 테니까 배우로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가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내년엔 작품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 거다. 점점 고민이 많고 어려워진다. 와이프는 돈을 안 벌고…. (웃음)
-배우자인 배우 추상미는 어떻게 지내나. 연초 연극 <은밀한 기쁨>을 마친 뒤의 근황이 궁금하다.
=장편영화 연출을 준비하며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돈 벌 작품을 쓸 사람이 아니라 큰일이다. 휴…. 내가 11월 말에 공연을 끝내고 쉬니까 옳다구나 싶었는지 일주일 동안 짐싸들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시나리오를 쓰다 오늘 왔다. 지금 난 겨우 육아를 인수인계하고 인터뷰하러 온 거다. (웃음) 아기도 잘 크고 있다. 말을 빨리 배워서 그런지 어머니가 자꾸 보통 애가 아니라고 하시는데 난 잘 모르겠다. 어쨌든 배우는 안 시켜야지. (웃음)
-12월28일 <배우수업> 첫 촬영 뒤 29일엔 <뮤지컬 이야기쇼>의 71회 공연이 열린다.
=공연 때는 <배우수업> 촬영 비하인드를 풀게 될 거다. 뮤지컬과는 준비 과정이 너무 다른 데다 막바지라 정신없지만 어쨌든 고(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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