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여자배우들에 비해 두 남자배우의 외모가 많이 떨어진다. 한명은 배가 꽤 나왔고, 다른 한명은 툭 치면 쓰러질 듯 말랐다. 남자건 여자건 새끈한 외모가 일반적인 서양 포르노와 한참 다르다. “왜 AV를 취재하죠?”라며 자못 질타조로 나오던 통역 안민화씨가 한마디한다. “저봐요. 남자배우를 일부러 평범한 인물로 쓰는 것도 판타지를 주려는 거 아니겠어요? 나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섹스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 남자처럼 저런 어여쁜 여자와 저럴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하려는.”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스케치가 예정된 지하 1층 세트장으로 내려갔더니 잠시 분장실에 대기시킨다. 왜 하필 분장실이었을까. 좀 민망하다. 전라의 여배우들이 제각각 자기 일에 몰두해 있다. 스탭과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배우,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는 배우, 담배를 질끈 물고 대본을 노려보고 있는 배우…. 그 틈에 여고생 복장으로 차려입은 20살의 이마노 유아이와 슬쩍 대화를 나눴다(프로듀서는 예정에 없는 배우와의 인터뷰를 꺼렸다).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지난해 10월 길에서 스카우트됐다. 처음에 고민이 됐지만 제작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심이 됐다. 가족에겐 아직 비밀이다.
촬영 없는 날은 어떻게 지내나. 학교 다닌다.
학교 친구들이 모르나. 아주 친한 친구 몇몇만 안다.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부정적으로 나오더니 내가 잘 지내니까 점점 괜찮지 않나 하는 식으로 바뀌더라. 분명히 그런 건 있다. 너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네, 하는 무시하는 시선. 실은 이런 시선이 싫어서 주변에 내 일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큼지막한 눈을 깜박이는 이마노 유아이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난처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표지 촬영 때도, 분장실에서 만났을 때도, 잠시 뒤 이어진 섹스신에서도. <여자고등학생을 사냥하다>의 세트장은 여의사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배우 출신 감독이 여의사와 리허설 중이다.
“고백할 게 있어요. 사실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자예요. 전, 바이섹슈얼인데 상관없겠어요?”
“…그래도 당신이 좋아.”
촬영이 시작됐다. 여의사의 여자가 여고생(이마노 유아이)이다. 그가 여고생에게 “날 믿지”라며 남자와의 섹스를 매개한다.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엉크러진다. 소음을 없애려 에어컨을 꺼놨지만 6명의 스탭과 3명의 배우는 더위 느낄 틈이 없어 보인다. 소품을 챙기던 연출부 한명이 어느새 남자배우에게 콘돔을 건네준다. NG는 없다.
사진 촬영 때도 느낀 점이지만 누구나 극진히 배려해주는 여자배우에 비해 남자배우는 살아 있는 소품 같다.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남자배우는 조용히 스탭 뒤에 있다가 제때에 나가 해야 할 일을 하곤 다시 가만히 빠져나온다. 접붙이기에 요긴한 수컷이 떠올랐다. 왠지 낯이 뜨거워 이마노 유아이와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돌아나왔지만, 실은 몹시 허탈했다. 촬영이었지만 실제 정사를 근접 목격하긴 첨인데 어쩜 그리 밋밋할까. 섹스 자체에 대한 매력과 환상이 푹 꺼지는 듯하다. 역시 카메라는 위대하다. 특히 클로즈업의 놀라운 효능이라니. 카메라의 클로즈업과 롱테이크를 포르노만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소비자에게 열광적으로 환대받는 장르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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