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제작사와의 공동제작에도 시간에 따른 경향이 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워리어스 웨이>(2010), <라스트 갓 파더>(2010), <설국열차>(2013), <넛잡: 땅콩 도둑들>(2013), <메이크 유어 무브>(2013), <옥자>(2017) 등 영어권 시장과 함께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주를 이뤘다면 2016년 즈음부터는 <연애의 발동: 상해 여자, 부산 남자> <엽기적인 그녀2> <대역전> 등 중국과의 공동제작이 활발했다. 국제적 여파가 컸던 한한령 이후에는 더 다양한 국가와의 공동제작이 늘어났다. 2019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2021년에는 태국과 일본, 2022년에는 싱가포르와 대만, 2023년에는 일본, 브라질 등과 함께했다(<KOFIC 현안보고-2024 아시아 영화공동제작 현황과 지원방안> 참고).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지금까지 공동제작을 통해 어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왔을까. 변곡점이 되거나 또 다른 기회의 발판으로 떠오른 작품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국정원>
감독 전창근, 도광계, 와카스기 미쓰오 제작연도 1958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홍콩
해방 이후 최초 국제 공동제작인 <이국정원>은 홍콩의 영화 제작사 쇼브러더스와 합작한 컬러영화다. 당시 컬러 촬영과 현상 기술은 홍콩과 일본에서 널리 상용되었기에 촬영 과정에서 기술적 지원을 받았다. 홍콩 가수 방음(우민)과 한국인 작곡가 김수평(김진규)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사랑을 이어간다는 줄거리는 국제결혼 반대라는 당시의 보편적 정서(혹은 편견)와 가족 내 비밀이라는 통속적 소재의 대중화를 알 수 있어 사료로서 가치도 높다. 한국에서는 전창근 감독, 홍콩에서는 도광계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으며 이후 일본에서 와카스기 미쓰오 감독이 합류했다. <이국정원> 이후 1960년대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컬러영화 시대가 시작된다. 특히 그 시절의 한국과 홍콩의 트렌드가 드러나는 의복을 감상하기 좋다.
<어거스트 러쉬>
감독 커스틴 셰리든 제작연도 2007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미국
한국영화 최초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공동제작한 작품. 2000년대 초반 당시 해외 자본을 통한 합작, 리메이크 판권 판매, 배우와 감독의 해외 진출 등 다양한 활로 모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한국 영화 제작사가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와공동제작한 것은 처음이었다. 워너브러더스와 협업하며 CJ ENM은 영화 제작비 3천만달러 중 5%에 해당하는 150만달러를 투자했다. 영화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센트럴파크 공연 장면에 ‘Mnet’ 로고가 선명하게 노출되는 것도 글로벌 합작의 결과라 할 수 있다(영화에 배우 구혜선과 가수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도 관계 구축 덕일 것이라 예측된다). 한국과 미국 합작영화의 모범 사례로 꾸준히 언급되는 작품.
<호우시절>
감독 허진호 제작연도 2009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중국
한국의 판씨네마와 중국의 종보미디어가 함께 제작한 <호우시절>은 본래 종보미디어에서 먼저 기획했다(종보미디어는 중국에서 <올드보이>를 수입한 곳으로 한국과 연이 깊다). 중국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팀은 장비를 하나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후문도. 영화진흥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임희철 프로듀서는 현지 촬영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중국도 1년에 400편 넘는 영화가 제작되기 때문에 장비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현상은 베이징에서 했다. 코닥이 유일하게 허락한 현상소가 베이징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산당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영화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 한-중 합작 옴니버스 프로젝트 <청두, 워 아이 니>는 중국쪽 기획이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협조가 좋았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감독 장건재 제작연도 2014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일본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나라국제영화제 ‘나라티브(NARAtive)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은 한-일 합작영화다. 영화제와 공동작업으로 진행된 측면에서 다른 상업영화 대비 상대적으로 신인감독 발굴 및 지원과 다양성 수호의 의미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나라티브 프로젝트는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감독의 차기작을 나라 지역에서 촬영하는 조건으로 지원한다. 이때 한국영화사 모쿠슈라가 함께하면서 합작 형태로 발전했다. 촬영감독, 조명감독 등 키 스태프가 일본이었던 만큼 합작 과정의 언어적 소통과 이해가 상당히 중대했다. 일본 내 판권은 나라영화제가, 한국 내 판권은 모쿠슈라가 소유하고 있다.
<설국열차>
감독 봉준호 제작연도 2013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체코
공동제작으로 한국의 모호필름, 오퍼스픽쳐스, 체코의 스틸킹필름스가 함께한 <설국열차>는 프로덕션으로는 CJ ENM의 참여를, 배급에서는 미국과 프랑스의 국제적 협력 체계를 갖춘 영화다. 영화의 50~60% 이상이 영어로 진행될 만큼 다국적성을 띠고 있으며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의 첫 영어영화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백지선 프로듀서는 영화진흥위원회 인터뷰에서 “체코로 촬영지를 확정한 이후 프로덕션 서비스 회사를 선정했는데, 체코의 경우 자국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보다 프로덕션 서비스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더 많았다”며 스틸킹필름스를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싱 마이 라이프>
감독 미즈타 노부오 제작연도 2016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일본
심은경, 나문희 주연의 한국영화 <수상한 그녀>의 판권으로 일본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한국의 CJ ENM과 일본의 니혼텔레비전, 영화 제작배급사 쇼치쿠가 공동으로 투자한 한-일 합작 프로그램으로 C&I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았다. 일본 외에도 미국,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으로 뻗어나가며 해당 국가와의 합작 형식이라는 글로벌 진출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 이로써 <수상한 그녀>는 한국어, 중국어, 베트남어, 일본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스페인어 등 총 8개 국어로 제작된 세계 최초 영화라는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밴드가 강세였던 일본은 밴드 신을 크게 강조했다. 이외에도 <써니>가 다국가 버전으로 공동제작되고 있다.
<밀정>
감독 김지운 제작연도 2016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미국
<밀정>은 미국 대형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에서 처음으로 선택한 한국영화다(워너브러더스는 <밀정> 제작비 862만달러를 전액 투자했다). 첫 작품에 공동제작. 워너브러더스는 <밀정>의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을까. 최재원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프로듀서는 최우선 요소로 시나리오를 꼽았다. “공동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은 기획 단계부터 각자 필요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따라서 그 기준이 될 수 있는 탄탄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이후 <밀정>의 공동제작 경험은 <인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즈음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인지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다양한 방식의 자본투자와 공동제작을 시도했고 <곡성> 또한 20세기 폭스의 자회사 폭스인터내셔널프로덕션(FIP)이 함께했다.
<아줌마>
감독 허슈밍 제작연도 2022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싱가포르
한국과 싱가포르의 첫 공동제작 영화인 <아줌마>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합작 방식을 고려했다. 한류 문화에 빠진 싱가포르 중년 여성이 한국에 오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을 다룬 영화는 줄거리만큼이나 한국 현지 촬영 비중이 높았다. 아쉽게도 제작 시기에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충분한 답사를 하지 못했다. 중요한 미션도 있었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주인공의 설정을 현실감 있게 그리기 위해 실제 한국 문화를 이해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허슈밍 감독은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시나리오 기획·개발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실질적인 문화와 고증을 맞춰나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된 촬영 기간은 대략 한달 정도다.
<랑종>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연도 2021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태국
한국 영화 제작사 노던크로스와 태국의 GDH가 함께 합작한 공포 스릴러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기획 및 제작을 하고 <셔터> <피막>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나홍진 감독은 본래 <곡성>의 무속인 일광(황정민)의 전사를 발전시키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촬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다른 문화권 캐릭터로, 한국과는 다른 정서를 가진 곳에서 신선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랑종>은 기획, 제작, 시나리오, 프로덕션, 후반작업, 배급까지 한국-태국의 협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사례다. 두 아시아 문화권의 융합 가능성을 성과로서 입증했고, 무엇보다 호러 장르로 떠오르는 태국 영화산업의 입지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패스트 라이브즈>
감독 셀린 송 제작연도 2023년 공동제작 국가 한국-미국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의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독립영화 제작사 A24가 공동제작하고 투자·배급한 작품이다. 유년 시절 한국에서 가깝게 지냈던 노라(그레타 리)와 해성(유태오)이 20여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이민자 세대의 관점과 서사를 유려하게 펼쳐냈다. 대중적 관심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오르는 성과도 얻었다. CJ ENM 작품으로는 <기생충>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을 찾은 사샤 로이드 A24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소감을 남겼다. “CJ ENM과의 협업은 값지고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가 함께할 때 얼마만큼의 파급력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알게 됐다. CJ ENM과 함께할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