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충무로 최고의 배우 정희란(이하늬)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돌아오는 귀국길에 분노가 치민다. 전속계약으로 묶인 신성영화사에서 또 한번 자신을 ‘벗는 영화’인 ‘애마부인’에 출연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신성영화사는 마음대로 조종 가능한 신인배우를 작품의 주연에 앉히고 희란을 조연으로 강등시킨다. 수많은 배우 지망생이 제2의 정희란을 꿈꾸며 오디션장을 찾지만 곽인우(조현철)의 눈에 들어온 원석은 신주애(방효린)다. 주애는 ‘애마부인’의 ‘애마’를 꿰찬다. 희란은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한 영화에 더해 후배마저 자기에게 기가 죽지 않아 불만이 크다. 은근하고 아련한 에로티시즘을 구현하려는 감독 겸 작가 인우와 달리 신성영화사의 대표 구중호(진선규)는 무조건 여자들이 몸을 노출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에 혈안이다. 모든 게 삐걱거리는 ‘애마부인’ 현장. 여기에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가 애마의 ‘말’(馬)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시나리오와 제목을 전면 검열한다.
“유신 때랑 다를 게 뭐야?”
<애마부인>과 ‘애마부인’은 모두 주인공의 이름을 애마(愛馬)에서 애마(愛麻)로 바꾸고 나서야 겨우 문공부의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애마>는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그린 대안 역사물이고, 작중 캐릭터는 대부분 허구다. 하지만 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의 문화 탄압과 검열의 역사만큼은 표백하지 않고 적시한다.
문공부는 오랫동안 시나리오와 필름(영화 본편)을 이중으로 검열했다. 시나리오 검열은 1987년 9월 ‘영화 시나리오 사전심의제’가 최종 폐지되기 전까지 문공부, 영화진흥공사,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로 집행 부처만 이관한 채 자행됐다. 1980년 3월 헌법 개정안엔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하여는 영화나 연예에 대한 검열을 할 수 있다”(18조 2항)는 조문이 존재했고, 그해 8월 공윤은 ‘공연물정화 장기계획’을 발표하며 영화 검열을 강화하겠다는 조치를 내세운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애마>는 검열을 피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여러 수고를 픽션화한다. 이를테면 주애는 노출이 불가능한 제도를 역이용해 흰 슬립만 입은 애마가 비에 흠뻑 젖은 채 풀숲을 헤치는, 에로티시즘을 극대화하되 심의는 준수하는 프레임을 제안한다. 실제 <애마부인>에도 등장하는 이 장면은 본편 심의 당시 일부러 어둡게 프린트를 떠 심의기구의 가위질을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한편 <애마부인>은 국내 첫 심야영화로 상영된 작품이다. 1982년 통행금지가 36년 만에 해제되면서 심야영업이 재개됐고, 때맞춰 개봉한 <애마부인>은 해금 직후의 흥행 특수를 누리며 서울 관객수 31만명을 기록한다. 관객들의 문전성시로 인해 서울극장의 유리창이 깨졌다는 비화도 <애마>에 그대로 재현된다. 영화인들이 컬러TV에 위기감을 느끼는 장면 또한 한국영화사에 기록된 순간이다. 1981년 컬러TV의 방영 결정은 영화인들의 위기의식을 촉발했다. 한국영화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발전한 외가 TV에서 컬러로 방영되면 더 이상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찾는 관객이 없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충무로는 더더욱 에로티시즘을 생존 활로로 삼았다. TV가 방영할 수 없는 고수위의 성애를 영화가 제공하면 관객이 극장을 찾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앞으로 더 어마어마한 샹X 할 거야!”
<애마>는 꽤 복합적인 방식으로 여성주의적 의제를 드러낸다. 이를테면 남성 캐릭터의 입을 빌려 수많은 여성혐오적 욕설을 대사에 넣는다. 남자의 권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생물학적 성별 그 자체에서 나오고, 이들은 미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미친 짓을 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수용할 수 없다. 여성을 비하하는 수많은 비칭(卑稱)은 발화자의 편협한 시선을 드러낼 뿐이다. 희란과 주애 또한 ‘여배우’에게 씌워진 도상을 일부 답습한다. 자기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각자가 보이는 행위를 두고 상대를 ‘미친X’, ‘샹X’으로 격하하며 남성들이 자신을 모욕한 방식 그대로 서로에게 화살을 돌린다. 작품 초반 더 예쁜 옷을 입기 위해 경쟁하는 순간 역시 ‘여배우’의 이야기에 떠올릴 법한 클리셰다. 이는 후반부를 위한 복선일까.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실상 여성을 착취하는 산업의 한가운데에서 대상화의 당사자가 날선 판단력으로 상황을 뒤집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애마>의 전반전은 타자화된 주체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현실을 다루며 여성배우가 처한 이중의 딜레마를 재고하게 한다.
하지만 <애마>는 후반에 이르러 야만의 시대를 응징한다.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지는 성상납 연회에 끌려간 주애는 이게 다 작품을 위한 길이라며 자신을 세뇌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란과 마주친다. 희란은 주애를 다그친다. 가진 것도 없는 네가 무슨 사명감이냐고. 잃을 게 뭐 있다고 네 전부를 거냐고. 이후 두 여자의 대오각성이 이루어지며 <애마>는 <애마부인>을 메타적으로 다시 써낸다. <애마부인>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여성의 성욕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참작돼왔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영화 속 애마(안소영)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찾아가는 방식은 남성의 관음적 시선에 봉사하는 구도로 찍혔다. 문오(하명중)가 애마와 정사를 나누는 방식은 남성들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할 뿐이고, 애마가 끝내 가정폭력범인 현우(임동진)에게 돌아가는 결말은 가부장제의 안정성으로 주인공을 귀의시키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희란은 작중에서 그나마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인우의 시나리오가 그럼에도 메일 게이즈(male gaze, 남성의 시선)의 한계 안에 있음을 지적하며 ‘애마부인’을 각색해간다. 문오와 애마의 관계가 ‘애마부인’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는, <애마>를 통해 직접 확인하는 편이 재밌을 것이다. 희란이 분한 애마의 친구 에리카 또한 보다 선명해진다. <애마부인>에서 김애경이 연기하고 박정자가 후시녹음한 에리카는 “애마야, 너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와는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야”라며 애마를 계몽하는 여성이었다. 동시에 “애마야, 네 몸은 언제 봐도 예뻐. 불꽃을 숨기고 있는 몸이야”와 같은 대사를 통해 당시 한국영화가 좀처럼 재현한 적 없는 여성 퀴어 캐릭터의 효시였다고 후대에 와서 평가받았다. ‘애마’의 에리카는 이 노선을 모두 밟으며 ‘애마’를 여성연대극으로 바꾸어낸다. 그리고 카메라 뒤 희란은 에리카처럼 한 발짝 뒤에서 주애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든든히 비춘다.
한편 주애 역시 희란을 돕는다. 희란이 모종의 폭로를 계획한 1982년 대종상 시상식. 주애는 남산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 희란을 구하기 위해, 자기에게 쏟아지던 사회의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 말을 활용한다. 이때 등장하는 <애마>의 여성 투숏은 <애마부인>이 만들어낸 말 타는 여성의 객체화된 이미지를 여성 주체로 전복하며 ‘애마부인’의 기의를 43년 만에 새로 창조한다. 만일 <밀수>에서 김혜수와 염정아가 수중에서 손을 맞잡는 숏에 감동한 (여성) 관객이라면, <애마>에서 못지않은 감흥을 누릴 것이다. 그렇게 <애마>는 ‘애마부인’ 안팎의 제작 과정을 다시 쓰며 전술한 <애마부인>과 그 배우들에 덧입혀졌던 편견을 어느 정도 지워내는 데 성공한다. 끝으로 <애마>엔 1대 애마부인인 배우 안소영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애마>와 <애마부인> 사이의 연관성을 과시하지 않되, 당대 충무로의 명과 암 모두를 경험하며 그 존재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던 배우에 어울리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