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테르 살리스는 라틴아메리카영화의 세 가지 물결- 1960년대 시네마 노보, 1980년대 제3영화, 1990년대 브라질 영화 운동- 사이의 핵심 인물이다. 살리스는 단순한 계승자가 아닌 혁신적 종합자로서 브라질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1990년 페르난두 콜로르 행정부의 영화 지원 기관 해체 이후 연간 제작편수가 3편까지 떨어진 위기를 겪은 브라질영화계가 1993년 영상법(Lei do Audiovisual) 제정 이후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는 가운데 바우테르 살리스 감독이 새 영화 모델을 제시했다. 바로 탈정치화된 정치영화다. 직접적인 구호 대신 인간애가 묻어나는 드라마투르기를 통해 사회적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브라질 영화 운동(Cinema da Retomada)의 핵심 기조가 됐다. 글라우베르 호샤, 네우송 페레이라 두스 산투스가 이끈 1960년대 시네마 노보(Cinema Novo)는 ‘배고픔의 미학’을 견지하며 의식 변화를 추구하는 급진적 정치영화였고, 제3영화가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제1영화)와 유럽의 작가주의영화(제2영화)에 대항하여 민중 해방에 방점을 뒀다면 바우테르 살리스는 투쟁하는 영화 운동의 거친 표면에 서정성을 더했다. 살리스의 첫 대표작인 <중앙역>은 특히 시네마 노보로부터 상호텍스트적 반향을 보여준다. 날것의 충격, 즉흥성이나 투쟁성보다는 정교한 기획력과 국제적 호소력 측면에서 새 르네상스를 예고하는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살리스의 영화는 북미, 유럽이 제3세계 영화라는 주변적 범주에서 브라질영화를 이해하거나 서구의 대안으로 치부하는 몰이해를 불식시키는 데 일조했다. 다큐멘터리에 뿌리를 둔 연출자이기도 한 살리스는 다큐멘터리와 픽션 영화의 관습을 융합하면서 상처받은 역사 위에 희망의 지도를 그리는 데 집중해왔다. 국가 폭력의 희생자이면서도 피해자성을 거부하고 절망적 상황에서도 삶의 진전을 추구하는 유니스 파이바에 대한 묘사, 루벤스의 납치와 살인에 있어 그의 정치 성향이나 반정부 행위의 세부에 집중하지 않는 점도 바우테르 살리스의 독립적 행보를 방증하는 설정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