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울 시네마테크의 건립을 추진했다. 2007년엔 영화진흥위원회와 서울시의 예산으로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에 들어섰으나 2008년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 계획이 좌초됐다. 2010년에 다시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마련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이후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 조례가 통과됐다. 2013년부터 서울시 시네마테크 건립을 위한 타당성 용역이 실시되고, ‘서울시 영상산업 발전 종합계획’에 시네마테크가 포함됐다. 또한 당시 서울시장이 직접 한시협의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영화인과의 만남을 가지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으며 2016년에 드디어 건립안이 정부에서 통과됐다. 이어서 건립 설계 공모가 이뤄지고 운영 컨설팅 조사가 실시됐으며, 2018년엔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준비위원회를 꾸려 한시협을 비롯한 민관의 협력 체제를 만들고자 했다. 2020년부터 착공에 들어갔으나 2021년경 오세훈 서울시장 부임 이후로 서울 시네마테크 건립에 대한 민관의 소통은 끊겼다. 2024년엔 서울시가 서울 시네마테크의 명칭을 서울영화센터로 바꾸면서 지난 20여년 동안의 협의가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영화센터의 개소가 석달여 남은 지금, 서울영화센터에 관한 한시협의 입장이 어떤지 한시협 곽용수 이사장, 김숙현 사무국장에게 청취했다.
- 2018년 발족한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준비위원회’가 종료된 이후 서울영화센터에 대한 서울시와의 소통이 끊긴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히 어느 시점이었고, 어떤 이유였나.
김숙현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준비위원회조차 시에서 한번도 제대로 된 소집을 한 적이 없었다. 서울시에서 자체적으로 다른 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당시 고영재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질의했으나 서울시에서 기존의 건립준비위원회는 해산했다고 통보했다. 건립 준비 단계 때 한시협과 함께 서울시에 이런저런 자문을 주셨던 영사기사도 어느새 시의 연락이 끊겼다고 전하시더라. 이분도 한시협, 준비위원회측과 마찬가지로 시에서 특별한 이유를 전달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가끔 서울시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 극장엔 몇명이 일하는지 물어보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가 지난 6월 말에 서울시측에서 미팅을 요청해왔고, 서울시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 처음인 터라 우리도 만남에 응했다.
- 그 당시면 이미 서울경제진흥원 주재의 서울영화센터 운영위원회가 꾸려졌을 때인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곽용수 서울시, 서울경제진흥원측과 한시협,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 영화인연대 관계자 등이 모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영상진흥원의 결정으로 인해 서울영화센터를 서울 시네마테크로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후의 시정 상황이나 서울경제진흥원의 새 결의를 통해 변경의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7월14일엔 한시협이 직접 서울영화센터를 방문했고, 서울영화센터측에서 한시협에 상영관 용역 입찰 관련한 자문서를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가 보낸 자문서의 중점은 간단했다. 원칙적으로는 서울영화센터가 시네마테크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만약에 공간의 용도 변경이 어려운 상황이라도 최대한 기존의 건립 추진 방향에 맞춰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 서울영화센터에 방문한 소감은 어땠나. 시네마테크의 기능을 할 수 있는 형태였는지.
곽용수 미팅 당시에 서울영화센터측에서 했던 말은 센터가 ‘영화인들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으로 운영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네마테크는 근본적으로 ‘관객’을 위한 공간이다. 공간과 운영 모두 관객 중점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렇기에 공간 설비를 떠나서 우선 공간의 정체성부터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김숙현 시설상으로도 서울영화센터를 온전한 시네마테크로 운용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현재 서울영화센터의 시설을 보면 관객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영관에 가는 정해진 동선이 좁고 한정적으로 구성돼 있다. 딱 상영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고 나오게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시네마테크보다 멀티플렉스의 형태에 가깝다. 시네마테크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본 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할 마땅한 공간이 없다. 영사 환경도 문제다. 함께 간 영사기사가 영사실을 보더니 “이거 필름 검색대를 넣을 공간도 안 나오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애초에 시네마테크로 건립된 공간이다 보니 35mm 필름 영사기가 2대가량 들어간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영사실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필름을 보관할 수 있는 수장고도 없더라. 시네마테크는 영화 상영뿐 아니라 필름 등 영화 자료의 보존도 함께하는 공간인데. 더군다나 지하 1, 2층의 상영관을 뺀 나머지 2개 상영관은 스크린의 좌우 마스킹이 없어서 세로 자막을 영사할 수가 없다. 시네마테크에서 트는 희귀한 필름영화 등은 어쩔 수 없이 세로 자막으로 틀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2개 상영관에선 상영작 선정에도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에 극장이 하나라도 더 생겨서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당연히 응원한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영화센터가 원래의 목적에 맞는 ‘시네마테크’는 아니란 것이다.
- 서울영화센터측은 앞으로의 시범 운영과 개소 이후 논의를 통해 공간 용도 변경 등으로 시설적인 한계를 최대한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곽용수 어느 정도의 용도 변경은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은 ‘할 수 있다’라는 불확실성이 문제다. 2년 정도 운영하다가 정부 윗선이 바뀌면 또 공간의 정체성을 두고 다른 지침이 내려올 수도 있다. 그러니 서울영화센터측에선 현재 수장고가 없어도 “다른 공간을 수장고로 바꿀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만 내비칠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로드맵대로 공간의 지속성이 확보되는 게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대응하게 된다는 상황부터가 아쉽다. 앞서 영화인들의 구심점이라는 단어를 말한 것처럼, 지금 센터엔 공유 오피스(지상 8층이 7, 9층과 연계한 공유 오피스로 운영될 예정이다.-편집자)가 자리 잡을 예정이더라. 원래는 미디액트 등의 단체가 영화 관련 교육을 하기로 한 공간이었는데, 영화 관계자들이 입주하는 산업 공간으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 곧 서울영화센터의 상영관 용역 공모가 진행된다. 한시협도 공모에 참여할 예정인지.
김숙현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 들어가도, 들어가지 않아도 인력 문제부터 해서 여러 혼란이 생길 것 같다. 한시협의 문제를 떠나서 한국의 문화행정 전반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든다. 민간에서 나름의 노력으로 공공성을 띤 사업을 선도적으로 하고 있으면, 공공 재원이나 행정이 개입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부 기조의 변경으로 지원금이 근거 없이 깎이기도 하고, 민관 협치로 꾸리던 사업이었는데 어느새 입찰제를 언급하며 형태를 바꾼다. 물론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니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미 민간 주도로 오랫동안 이어온 사업마저 이런 형태로 집행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서울영화센터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정점을 찍은 것 같다. 지난 십수년 동안 민관 협치의 모델링을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시와 논의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린 게 참 아쉽다.
곽용수 단적으로 보면 정치적인 문제가 문화예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지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문화예술 관련 입찰 공고를 보더라도 업체에 대한 사전 심의 같은 내용들이 빈번하게 적혀 있다. 이렇게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후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서울영화센터가 시네마테크의 가치를 온전하게 지키긴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