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딸>이 올해 빠른 속도의 흥행 추이를 보이고 있다.
숨길 수 없을 만큼 너무 좋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촬영하는 내내 <좀비딸>의 따뜻한 메시지와 의도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만을, 딱 그것만을 바랐는데 진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기쁘다. 영화는 결국 관객이 완성하기 때문에 작품이 난항을 겪으면 그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 상실감, 반성이 이어진다. 처음엔 <좀비딸>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밋밋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바닷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좋아해주신 듯하다. 꿈꿨던 풍경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들까지 삼대가 함께 손잡고 영화를 보러 오는 모습. 모든 가족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 영화가 끝난 뒤에 서로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같은 질문을 나눠보기도 하고. 영화가 끝난 후 이어지는 대화야말로 진짜 메시지니까.
연기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 출연 배우로서 바라본 <좀비딸>의 흥행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많은 것이 운 좋게 맞물렸다. 먼저 타이밍이 좋았다. 영화가 12세이상관람가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여름방학 때 개봉했다. 만화를 찢고 나온 우리의 밤순(이정은)과 더불어 탄탄한 원작이 사랑받아온 것도 크다. 그리고 단연 조정석 코드. 코미디부터 페이소스까지 모든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훌륭한 배우다. 형이자 친구이자 아들이자 동생이자 철 없는 막내삼촌 같은 조정석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가 <엑시트> <파일럿> 등 여름 시장을 도맡았던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에겐 원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칫하면 신파라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 하나의 감정,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도 조정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특정 시대상을 비추는 청년의 맑은 느낌이 있어 대중적 호감도 또한 높다. 극장 관점에서는 정부 지원 영화관람 6천원 할인권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티켓값이 오르는 동안 지갑 사정은 그대로인 현실에서 많은 관객이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마중물이 됐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어렵게 극장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와하하 웃는 경험이 얼마나 좋은가. 옆 사람이 웃어서 나까지 웃게 되는 순간들. 그런 것들이 튼튼한 주축이 된 듯하다.
- 거의 산업 분석에 가까운 평가다. (웃음) <좀비딸>의 안팎을 계속 들여다본 듯하다.
만드는 과정부터 우리는 정말 행복했는데 우리만 행복할까봐, 그게 너무 걱정됐다. 동화 같고 아늑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아름다운 남해에서 촬영 기간 내내 즐거웠다. 내가 영화를 찍는지 은봉리에서 생활하는지 모를 정도로. 결말에 다다랐을 때 주민들이 집 앞을 둘러싼 장면은 실제 마을 주민 분들이다. 모두가 경계 없이 지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며 울었다고 하더라. 특히 딸 가진 아빠들. (웃음) 영화 개봉 이후 차태현 형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한테 딸 얘기를 건드리는 건 반칙 아니냐?!” 필감성 감독님의 서정적인 연출이 잘 표현된 것 같다.
- 영화 개봉 직전 출연한 <핑계고>에서 윤경호 배우의 클립 영상이 한창 화제였다. 영화 홍보에 있어 윤경호 배우의 몫도 톡톡하다.
이렇게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 쑥스럽다. (웃음) 내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관객을 모시는 역할을 한 것만 같아서 뿌듯하다. 사실 캐스팅 단계에서는 살짝 주눅 든 때가 있었다. 이름만으로 모두가 환호하는 배우 조정석, <기생충>팀인 배우 이정은과 조여정, 어려서부터 섬세한 연기를 체득해온 배우 최유리까지. 이 사이에 내 이름을 올리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내 몫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내 인지도가 더 높았다면 영화에 도움이 될 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주눅 들었다. 그런데 정말 과학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운과 천운, 기세가 있는 것일까. 올해 <중증외상센터> 때부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다. 심지어 수다스러운 모습까지 재미있다고 해주신다. 여태껏 말이 너무 많다고 핀잔만 들어왔는데. 그래서 나를 좋게 봐주시는 상황이 처음엔 전혀 이해가 안되었다. 너무 겸연쩍었다. 그러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엔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 <좀비딸>에서 윤경호를 통해 가장 많이 웃은 장면은 단연 토르로 코스프레한 동배의 등장 신 아닐까.
그게 맨 처음에는 할리퀸이었다. 레퍼런스로 할리퀸 분장을 한 남자들의 사진을 보았는데 다소 충격적이었다. 예쁘게 꾸미면 꾸밀수록 부담스럽더라. (웃음) 그래도 웃음을 주고 극적 환기를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다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질문이 들었다. 동배는 왜 많은 캐릭터 중에 할리퀸을 선택한 것일까. 심지어 다른 성별의 캐릭터를 오로지 재미를 위해 선택했을까. 마블 시리즈가 좋다면 약국에 피규어 하나쯤은 진열돼 있어야 하고, 화려한 의상이 좋은 거라면 평소에도 그런 옷들을 입어야 하는데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감독님이 토르는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그때 이거다 싶더라.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토르가 되어보고 싶을 테니까. 멋진 남자의 상징인 동시에 동배와 언밸런스해서 웃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좀비딸>에서 동배는 정환(조정석)과 수아(최유리)를 처음으로 위협하는 인물이었다가 나중엔 적극적으로 돕는 인물로 입장을 완전히 전환한다. 가장 멀리 서 있는 수아 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동배는 윤경호의 어떤 면을 가장 많이 이끌어낸 인물이라 할 수 있을까.
러닝타임상 편집된 장면이 있다. 정환이 총을 맞고 병원에 실려간 뒤 세상이 발칵 뒤집어진다. 공모자로서 국가기관에서 수사를 받으며 동배가 이렇게 말한다. “네, 제가 공범입니다. 제가 함께 수아를 훈련시켰고 계속해 숨겼습니다. 잘못을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이어 연화(조여정) 또한 수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도 공범입니다. 근데 한번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검사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바이러스에 걸렸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것은 객석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동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협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이 관계와 사랑에 동화돼 있었다. 마냥 속없어 보이기만 하던 동배가 상황에 굴하지 않고 정환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그의 따뜻함이 너무 좋았다. 나는 연기에서 인간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연기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악역 또한 자기애나 나르시시즘 같은 다른 방식의 왜곡된 사랑이 있다. 모두가 분절되고 개인화된 세상에서 동배는 비록 그게 주식을 위할지언정(웃음) 다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나의 핵심 가치관과 내밀하게 맞닿아 있는 인물인 셈이다. 유약해 보이지만 속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심지를 잘 드러내고자 했다.
호랑이 같이 화를 내도 고양이처럼 귀여운
- 올해 <좀비딸> 이전에 <중증외상센터>가 있었다. 얄밉지만 도저히 미워하기 힘든 한유림 항문외과장은 탄력성과 입체성이 무척 강한 인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나도 놀랐다. 한유림을 이렇게까지 좋아해주실지 몰랐다. 그렇지만 유림을 미워 보이지 않게 연기해야지, 사랑받게 연기해야지 하면서 계산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유림을 지배하는 감정이 무엇이느냐. 그것을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에겐 딸을 사랑하는 부성애가 정말 중요하다. 그는 딸을 홀로 키웠고 심지어 자신의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딸은 유림의 삶의 이유다. 하나뿐인 딸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그는 그제야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절절하게 슬퍼하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다음에 원래대로 돌아갔다면 못된 사람이겠지만 백강혁(주지훈)을 향한 고마움을 딛고 조금씩 변모한다. 아마도 이 과정을 호감으로 지켜봐주신 것 같다. 좀전에 맨 아래에 자리한 사랑을 포획해내는 게 연기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 <중증외상센터>는 특히 만화적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라 유림의 입체적인 설정과 잘 맞물렸던 듯하다.
그래서 어려움도 있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했던 점이 하나 있다. 작품이 전반적으로 코믹하고 경쾌하지만 그것은 작품의 무드인 거지 생명을 다루면서 코미디를 무조건적으로 내세우는 건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게 촌각을 다투는 현장을 소재로 쓰지 말자는 중요한 합의를 이뤄냈다. 그렇다면 유림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웃음) 그게 문제였다. 유림은 상대적으로 코믹 포인트가 많았기에 이런 지점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때 이도윤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다들 진지하기 때문에 한쪽에서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유림이 웃음을 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조금씩 고삐를 풀다가 나중에는 막 놔버렸다. 마지막에 “내가 백강혁이다!” 하면서 청진기를 마구 흔드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내가 반 미쳤던 것 같다. 감독님도 당황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렇게 가시죠” 하시더라. (웃음)
- <정직한 후보>에서도 밉살스럽지만 어느새 웃게 되는 봉만식이 되었다. 주상숙(라미란)의 키링 남편을 톡톡히 보여주었는데.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코미디는 여전히 어렵다. 나는 내가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정세 형님 같은 분이 최고다. (웃음) 나는 연극을 하면서 콤플렉스가 많았다. 외모부터 연기까지. 그래서 일부러 진지한 작품만 더 찾으려 했다. 나를 깨부수고 내 안의 밝은 면을 보여주는 게 두려웠다. 진지한 연기를 하면서 망가지고 싶지 않았다. 아마 나와 비슷한 배우들이 많을 것이다. 과묵하고 슬픈 것만이 자기의 영역처럼 느껴지고 웃기는 데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배우들. 하지만 내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더 유연한 내가 있다. 한번은 <밀당의 탄생> 이라는 음악극을 했다. 그중 꽃미남 스타일의 가냘픈 서동 왕자가 등장하는데 신라 시대 기준으로 아주 못난 사람이다. 반면 거칠고 굵직한 나는 그 시절 아주 잘생긴 축에 속한다. 내가 맡은 해명 도령을 두고 극 중에서는 ‘수세미같이 거친 피부, 황소 같은 콧구멍’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다 서동을 만날 때면 “못났다 못났다 말은 들었다만 어떻게 그렇게 생겼냐”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한다. 아주 말도 안된다. (웃음) 근데 나도 모르게 납득되지 않음이 티가 났는지 연출님이 나를 부르시더라. 그러곤 고양이 사진 하나를 보여주셨다. 뚱뚱하고 못생긴 고양이가 화를 내는 사진 하나. “경호야. 경호의 매력은 이거 같아. 못생긴 고양이가 아무리 호랑이처럼 화를 내도 고양이의 귀여움을 벗어날 수는 없거든.” 그 말이 나의 씨앗이 되었다. 어떤 콤플렉스도 오직 콤플렉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또한 나만의 고유함으로 기능하면서 나를 표현하는 요소가 된다. 그때부터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직하게 훈련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 주변에서 해주는 말들을 양분 삼아 성실하게 성장한 느낌이다. 조언을 왜곡하지 않고 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정말 좋은 말씀들의 힘을 받아 오늘이 온 것 같다. <관상> 축하 파티에서 송강호 배우가 해주신 조언도 꼭 말하고 싶다. 삼겹살 파티가 한창일 때 송강호 배우가 우리 테이블에 와 수고 인사를 나누셨다. 그때 내가 불쑥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선배님처럼 연기할 수 있냐고. 새파랗게 어린애가 갑작스런 질문을 한 것에 모두 당황했다. 술 취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송강호 배우가 자리에 앉더니 긴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기 삼겹살이 있으니까 삼겹살로 이야기해줄게. 불판에 고기를 얹었어. 이제 뒤집을 때가 됐어. 그래서 뒤집어. 내 생각에 이건 연기가 아니야. 그건 그냥 재연이야. 뒤집을 때가 됐어. 근데 안 뒤집어. 심지어 앞사람도 느껴. ‘이 사람 왜 고기를 안 뒤집지?’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때 뒤집는 거지. 그게 연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에게 연기는 대본에 쓰여진 지문에 충실하는 것이었는데 그보다 더 주도적이고 유연하게 판단해야 했던 것이다. 정말 벙쪘다. 아주 오랫동안 이 말을 부표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 그간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이름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극을 진행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돌이켜보면 윤경호의 커리어는 이런 식이다. 그 자리가 해야만 하는 것을, 혹은 그 자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기능적으로 많은 것을 완수하기에 감초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은 군중 속 한명이지만 동시에 주인공이다. 하루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엄청난 괴성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를 만났다. 너무 시끄러워서 빨리 지하철을 타고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열차에 함께 타더라. 역시나 노래를 이어불렀다. 이곳저곳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그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나 없으면 당신 웃을 일 없을 텐데 당신이 세상 사람들을 웃게 해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겨서 작은 웃음이라도 드리고자 이렇게 나왔습니다.”(윤경호 배우는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멈추며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박수가 막 쏟아졌다. 그때 누군가가 “그럼 팝송도 불러주실 수 있나요?” 했더니 아저씨가 “죄송합니다. 이 노래밖에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또 괴성으로 자작곡을 부르시더라. 이런 게 너무나 극적이다. 주조연을 떠나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이 아는 감정과 사연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나의 몸이 기억하는 무수한 눈물들이 그런 자리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