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노력, 승리.’ <귀멸의 칼날>(이하 <귀칼>) 원작 만화가 연재된 일본의 만화 잡지 <주간 소년 점프>가 1980년대부터 내건 표어다. 물론 ‘우정, 노력, 승리’가 모든 만화의 원천은 아니다. 소년 만화가들을 주인공으로 그린 <바쿠만>은 <주간 소년 점프>의 만화가가 되기 위한 3요소로 ‘자뻑, 노력, 운’을 언급하면서 ‘우정, 노력, 승리’의 클리셰를 뒤틀기도 한다. <귀칼>을 제외한 최근의 다른 인기 소년 만화들도 마찬가지다. <체인소 맨>엔 우정보다는 관계의 파탄이, 노력보다는 재난과도 같은 능력이, 통쾌하지 않고 미적지근한 승리가 그려진다. 또 다른 히트작 <진격의 거인>은 대놓고 ‘우정, 노력, 승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비극적 모토가 가득한 반소년 만화에 가깝다. 2000~2010년대에 세계의 만화, 애니메이션 시장을 이끈 소년 만화 3대장인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역시 우정, 노력, 승리의 법칙에만 묶여 있지 않았다. 노력형 인재인 줄 알았던 주연들이 알고 보니 어디 어디 혈통의 자제이고, 선천적으로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등의 설정이 드러나면서 ‘우정, 노력, 승리’를 굳게 믿던 세계의 만화, 애니메이션 팬들은 모종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귀칼>은 아주 순수하게 ‘우정, 노력, 승리’의 법칙을 따른다. 소년 만화의 근본을 벗어나지 않는다. <귀칼>의 서사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인간을 먹는 괴물들, ‘혈귀’가 있다. 본래 인간이었던 최초의 혈귀 키부츠지 무잔이 영생을 얻기 위해 다른 혈귀들을 만들며 세력을 유지한다. 그리고 혈귀를 물리치려는 인간 조직 ‘귀살대’가 있다.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는 혈귀의 습격을 받아 가족을 잃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동생 네즈코는 혈귀가 됐다. 이에 탄지로는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고 혈귀를 없애기 위한 왕도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탄지로는 다른 귀살대 대원들과 우정을 쌓고, 여러 수련과 결전의 노력을 거쳐 혈귀들에게 승리해나간다. 여기엔 <원피스> <진격의 거인>과 같은 방대한 세계관이나 막대한 만화적 상상력도 부족하고, <나루토> <헌터x헌터> 같은 신선한 능력들의 섬세한 싸움 방식도 없다. 기본적으로 귀살대의 정예 구성원은 ‘호흡’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일륜도’라는 특수 무기로 혈귀를 때려잡는다. 인물마다 물의 호흡, 번개의 호흡, 화염의 호흡 등 고유한 호흡 방식을 구사하지만, 솔직히 각 호흡이 엄청난 개성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더 빠르고 강하게 검을 휘두르는지의 차이에 가깝다.그러나 이것이 바로 <귀칼>의 성공 요인이다. 지독할 정도로 촘촘하게 짜여 진입장벽이 느껴지는 세계관, 인물들의 정동을 최대치로 키우려 점차 깊어지는 서사의 양, 머리가 복잡할 정도로 펼쳐지는 기술들의 수싸움은 없다. 대신 그 모든 곁가지를 걷어낸 소년 만화의 정수인 ‘우정, 노력, 승리’만 있을 뿐이다.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우정, 노력, 승리’에 충실한 <귀칼>의 주제는 만화가 아닌 애니메이션 <귀칼>의 성공 요인이다. 디테일의 부족과 서사의 빈약함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귀칼>의 원작 만화는 그다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지 못한다. 다만 ‘우정, 노력, 승리’의 토대만 남긴 상황에서 그려지는 애니메이션 <귀칼>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애니메이션의 시청각적 활력을 극대화한다.
무한성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다
애니메이션 <귀칼>의 장점이 최대치로 압축된 작품이 바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무한성>)이다. <무한성> 이전의 서사를 간략하게 요약해보자. 어찌저찌하여 귀살대가 혈귀의 대장, 최초의 혈귀 무잔을 몰아세운다. 무잔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혈귀의 약점은 목과 햇빛이다. 목을 베이거나, 햇빛에 노출되면 혈귀는 죽는다. 그런데 탄지로의 동생 네즈코가 혈귀임에도 햇빛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잔이 네즈코를 노린다. 항상 암약을 펼치던 무잔이 세상 바깥으로 나오자 귀살대는 여러 희생을 치르면서 무잔을 위협한다. 그런데 무잔은 추적해오던 모든 귀살대원을 혈귀의 소굴인 ‘무한성’에 가둬버린다. 무한성은 혈귀의 능력으로 만든 무한한 가상의 공간이다. 360도로 끝없이 펼쳐지는 일본식 성의 공간에 무수한 혈귀들이 도사리고 있다. 탄지로를 비롯한 귀살대의 정예 요원 ‘주’들은 무한성에서 정예 혈귀인 ‘상현’과 무잔을 무찌르기 위해 싸운다.
이러하여 <무한성>의 본격적인 시작은 무한성이란 아공간(서브컬처에서 현실과 다른 공간을 뜻하는 용어)에 빠져 추락하는 귀살대원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여기서부터 애니메이션 <귀칼>의 장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원작 만화에서는 5~6컷으로 간략히 끝나는 추락의 과정이 애니메이션에선 거의 5분에 달하는 시퀀스로 변환된다. 추락의 후경에서 무한성은 압도적인 규모의 3D 렌더링을 통해 말 그대로의 무한한 공간으로 시각화된다. 이 무한의 공간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동시에 O.S.T의 삽입까지 허락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은 애니메이션이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지속하면서 관객이 느낄 시청각적 자극의 증대를 이끈다. 즉 애니메이션 <귀칼>은 원작 만화에 있는 연출상의 공백을 애니메이팅이란 시간적 매체를 통해 메꾼다. 만화에선 한컷으로 표현된 한 합의 결투가 10컷이 넘는 장면으로 바뀌는 등 속칭 ‘원작을 초월한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분명한 시대의 변화다. <드래곤볼>이나 <원피스>와 같은 이전 세대의 주류 애니메이션은 원작 만화가 펼친 컷 연출의 박진감이나 작화의 높은 수준을 다운그레이드한 애니메이팅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구도가 역전되었다. 적극적인 애니메이팅으로 원작 만화의 부족한 틈을 메우는 방식이 현대 애니메이션의 존재 가치가 된 것이다.
이어서 <무한성>의 주요 서사는 크게 3가지로 축약된다. 주인공 탄지로와 물의 호흡을 사용하는 ‘수주’ 기유가 한팀으로 상현3(상현들은 강함의 순서대로 숫자를 붙인다) 아카자와 싸운다. 벌레의 호흡을 활용하는 ‘충주’ 시노부는 상현2 도우마와 맞붙는다. 탄지로의 동기인 번개의 호흡 사용자 젠이츠는 과거 사형이었으나 혈귀가 되어 인간을 배신한 상현6 카이가쿠와 대적한다. 이들이 결투 중에 보여주는 시각적 화려함을 글로 모두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 호흡에 부여된 형형색색의 색채와 이미지(물과 용, 번개, 벌레 등)는 눈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화면을 뒤덮고, 재빠른 검격의 파장과 소리가 관객의 시청각을 끝없이 자극한다. 사실 ‘무한성’이란 공간 설정은 서사적으로 게으른 선택이라 할 수도 있다. 세계관에 있는 모든 주요 귀살대원과 혈귀를 한곳에 몰아넣고 펼쳐지는 이야기는 대단한 교차편집의 묘를 살리기 쉽지 않고, 특별한 서사적 반전을 주기도 어렵다. 그러나 <귀칼>의 세계에서 이러한 선택은 무척이나 효과적이다.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의 특성이나 시간대, 플롯의 교차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로지 귀살대와 혈귀의 결투만이 스크린에 필요할 뿐이다. 그외 부차적인 요소의 과감한 생략은 애니메이션의 성립에 큰 결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무한성은 귀살대와 혈귀가 무한히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몰살의 무대, 최적의 애니메이션적 공간이 된다. 민간인의 존재, 시대적 배경, 외부의 개입 등 결투 바깥의 맥락이 모두 제거된 탈맥락적 공간이라 볼 수도 있겠다.
액션은 이미 확보, 드라마까지
앞서 3개로 축약한 <무한성>의 에피소드 중 메인 스토리는 단연 탄지로+기유 vs 아카자의 대결이다. 일본에서는 <무한성>에 ‘아카자 재림’이라는 부제가 붙을 정도였다. 아카자가 <무한성>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그의 강함과 매력뿐만이 아니다. 아카자가 인간이었던 시절에 겪었던 비극의 플래시백이 백미다. 아카자가 왜 최고의 무력을 목표로 하는지에 대한 전사가 드라마틱하게 서술된다. 혈귀가 지닌 아픈 사연을 전투 중의 플래시백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귀칼>의 전형적인 드라마 연출이었다. 그러나 아카자의 드라마가 주는 감정은 조금 다르다. 다른 혈귀들의 사연보다 훨씬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준다. 이는 ‘우정, 노력, 승리’라는 소년 만화의 원칙과 아카자의 이야기가 묘하게 엮이기 때문이다. 아카자는 혈귀여서 악당이 아니다. 아카자는 무자비하게 인간을 속이고 먹는 일에 몰두하는 다른 혈귀들과 다르다. 혈귀임에도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복합적인 성정을 지닌 매력적 빌런이다. 이러한 그가 <귀칼>의 세계관에서 악당인 이유, 무너져야 하는 당위는 ‘우정, 노력, 승리’의 법칙을 어떻게든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귀칼>의 태도 탓이다. <무한성>에서 밝혀지는 아카자의 최후란 ‘우정, 노력, 승리’를 어쩔 수 없이 배반하게 된 혈귀, 혹은 또 다른 ‘소년’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이 방식이 무엇인지는 두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무한성>이 역사상 가장 재밌다거나 가장 훌륭한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가장 현대적인 애니메이션이라고 주장할 순 있겠다. 지금의 상업 애니메이션은 커다란 맥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자본을 투입해 구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팅의 화려함을 살릴 수만 있다면 실제 사회의 메타포가 될 만한 시공간적 맥락도, 깊고 복잡한 서사도 필요하지 않다. 무한성이라는 외딴 공간, ‘우정, 노력, 승리’라는 소년 만화의 고전적 원칙이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 원작 만화라는 재료가 딱히 좋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외의 부수들은 방해물로 작동할 여지가 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속 ‘염주’ 렌고쿠 코쥬로와 아카자의 메인 전투 영상이 몇초짜리 클립으로 편집되어 SNS와 인터넷을 지배하고 <귀칼>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듯이, 짧지만 강렬하게 애니메이션의 시청각적 핵심을 전달하는 ‘입덕’의 매개가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무한성>은 <귀칼>의 시대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최적의 매개로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