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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 노동현실 똑바로 봐!
2001-09-07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노동운동을 무력화시켜버린 90년대 후반부터 노동문제를 다루는 장편 극영화는 세계적으로도 찾기가 힘들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독야청청 노동자들의 깃발을 휘두르고 있던 99년,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적 고용형태 앞에 좌절해 가는 노동자들을 다룬 <인력자원부>라는 영화가 나오자 프랑스 평단은 열띤 지지를 보냈다. 이 영화의 감독 로랑 캉테(40)가 올해 베니스영화제 `현재의 영화' 부문에 신작 <시간의 고용자>를 출품하고 지난 4일(현지시각) 베니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편 데뷔작인 <인력자원부>에서 캉테는 노동자의 편에 서면서도, 켄 로치와 달리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는 격언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대안적 계급으로서의 자부심은 커녕 직업에 대한 자존심마저 지키기 힘들어진 이 시대의 노동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고서 칼로 무 썰듯 차갑게 끝내 버렸다. <시간의 고용자들>에서도 그 냉정함이 그대로 나타났다. 경영컨설팅을 하는 주인공이 해고된 뒤에,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저개발국에 투자하는 유엔기구로 직장을 옮겼다고 주변에 거짓말 하고는, 친구들로부터 별도의 사설펀드를 만들겠다며 돈을 모은다. 영화는 주인공의 대책없는 거짓말 행각의 이면에,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만 또 한편에서 이전의 관성을 따르려 하는 중간 브루주아지의 심리를 밀도와 무게감을 실어 전달한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주인공에게 연민과 냉소를 섞어보내는 듯한 영화의 결말은 역시 차갑다.

“한 중년이 해고당한 사실을 숨겨오다가 가족을 살해한, 9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각색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을 중상류층으로 옮겨 다른 계급으로 시점을 이동시켰다. <인력자원부>처럼 자기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이 경우는 사회적 공간에서 물질화돼버린 안정적인 브루주아지이다. 그는 거짓세계를 만들어 체제로부터 비상하고 싶은 욕구를 채운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결말은 비극일 수 있지만, 어쩌면 바보같은 존재의 기쁨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필름TV 데일리>가 이탈리아 평론가들로부터 받아 집계한 평점을 보면 이 영화는 `현재의 영화'부문 경쟁작 21편중 4일까지 상영한 14편 가운데 2등을 달리고 있다.

베니스/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