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화제는 한국영화 가운데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과 송일곤 감독의 <꽃섬> 등 장편 두편이 경쟁부문에 올라, 한국에서도 관심이 각별하다. 이날 행사에서 독특한 건 초청작 가운데 할리우드 영화가 적은 탓인지, 개막식장에 할리우드 스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대신 이탈리아 감독으로 올해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난니 모레티가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다. 개막식에서는 프랑스 여배우 잔 발리바가 프랑스 노장 감독인 에릭 로메르에 대한 헌사를 낭독했고, 로메르 영화들의 장면을 모은 짧은 필름도 상영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새영화 <영국여인과 공작>을 상영하면서, 그의 영화에 대한 심포지엄 등 특별행사를 마련해 놓았다.
이어 94년 <비포 더 레인>으로 이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던 마케도니아 출신 감독 밀로 만체프스키의 <먼지>가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한 여자를 사랑한 두 형제의 이야기가 19세기말 미국 서부와 마케도니아를 오가며 전개되는데, 현재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화자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의 상대성과 허망함을 부각시키고 아울러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화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 듯했다. 이 영화뿐 아니라 `세계화'는 이번 영화제의 열쇠말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영국의 <해럴드 트리뷴>은 “경쟁작의 절반 가량이 여러 나라가 함께 제작한 합작영화이고, 이 영화들은 뿌리없는 세계화의 정체성을 되묻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장편 경쟁부문을 둘로 늘리는 일대 실험을 단행했다. 영화제의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놓고 겨루는 기존의 경쟁부문(베네치아 58)외에, 신인이나 비주류 감독들의 실험성 짙은 영화들을 가져와 세계 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짚어본다는 취지에서 지난해까지 비경쟁으로 운영하던 `현재의 영화들' 부문을 경쟁으로 승격시켰다. `현재의 영화' 부문 최우수작에는 `올해의 사자상'을 부여하며, 상금은 황금사자상과 똑같이 10만달러다. 이 부문을 신설한 취지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늘림으로써 칸이나 베를린영화제와 차별을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올해 경쟁작을 보면 이미 알려진 거장의 영화나,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이 진출한 `베네치아 58'의 경쟁작 20편 중 할리우드 메이저영화를 꼽는다면 <오픈 유어 아이즈>의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톰 크루즈가 차린 제작사와 손잡고 톰 크루즈의 전 부인 니콜 키드먼을 출연시켜 만든 미국·스페인 합작영화 <타인들> 한편 정도다. 미국 인디 영화로 래리 클락 감독의 <불리>,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웨이킹 라이프>가 이 부문에 올랐다.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영국의 노장 켄 로치가 남부요크셔 지방의 철도노동자들을 다룬 <내비게이터>를, <중앙역>을 만들었던 브라질의 월터 살레스는 <태양의 뒤편>을 출품했다. 이스라엘 아모스 기타이의 <에덴>과 홍콩 프루트 챈의 <할리우드 홍콩>도 눈길을 끈다.
송일곤 감독의 <꽃섬>이 올라있는 `현재의 영화' 부문는 99년 <인력자원부>로 프랑스 평단을 놀라게 했던 로랑 캉테 감독의 <시간의 고용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동생 주세페 베르톨루치의 <그럴듯한 사랑> 등 21편이 올라있다. 비경쟁부문에서는 우디 앨런의 <옥전갈의 저주>, <풀 몬티>의 피터 카테네오 감독의 신작 <럭키 브레이크>, 존 카펜터의 <화성의 유령> 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베니스/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