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관객들은 그동안 다큐멘터리라면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연상해왔다. 그러나 올해의 PIFF가 선택한 다큐멘터리들은 집단보다 개인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교육적 내레이션은 사라졌다. 그것은 치열했던 정치적 싸움이 표면적으로 사라진 뒤, 관심의 영역이 개인적 공간으로 넘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반영인지도 모른다.
음악과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 암울하던 군사정권 시절을 노래하던 가수 한대수에 관한 장지욱·이천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한대수>, 서태지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조명해보는 전명산 감독의 <이것은 서태지가 아니다>, 베르레바크라는 작은 어촌마을의 합창단의 이야기를 다룬 크눗 에릭 옌센 감독의 <쿨 앤 크레이지>, 발칸 펑크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에밀 쿠스트리차와 노 스모킹 밴드> 등이 그것. 음악을 매개로 굴절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파괴와 극한 환경에서의 인간 삶을 투영해내고 있다. <에밀 쿠스트리차와 노 스모킹 밴드>는 집시 음악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접목시킨 발칸 펑크의 원조인 노 스모킹 밴드에 대한 뮤직 다큐멘터리다. 쿠바 음악을 재현해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를 감동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라면, 포화 속의 발칸을 가로 질러 음악적 영감을 찾아 떠도는 노 스모킹 밴드의 열정과 발칸의 현실에 교감할 수 있으리라. 이 밴드에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는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합류한다. 거친 흑백화면이 집시의 거칠음이 배어나는 콘서트 현장과 발칸현실을 드러내는 데 더 없이 적절하다.
어두웠던 시절, 그는 자유에 대한 갈증을 노래했으나, 시대는 결코 그의 노래 부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대수는 한국을 떠났고, 그의 노래는 전설처럼 이 땅을 떠돌았다. 그가 이제 미국에서 보낸 기나긴 방황의 시절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못다부른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있다. 영원한 보헤미안으로 다가서는 한대수의 ‘현재’는 결코 꺾을 수 없었던 그의 신념과 노래를 투영해내고 있다. <다큐멘터리 한대수>는 그 기록이다.
한편 소외의 그늘에서 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민을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말하는 작품들도 있다. 한 뇌성마비 장애인의 세상만나기를 4년동안 지켜본 오영필 감독의 <풍경>,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로버트가 성전환한 관능적 여인을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케이트 데이비스 감독의 <서던 컴포트>, 유태인 동성연애자들의 현실과 교리를 넘나드는 딜레마를 다룬 샌디 듀보브스키 감독의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등이 그것이다. <풍경>의 주인공은 뇌성마비 장애인 정재완. 팽이와 잡동사니를 팔던 그는 어느날, 모든 걸 팽개치고 여행을 떠난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광주, 송광사를 지나 한반도의 땅 끝에서 바다와 만난다. 그 바닷가 모래 위에 ‘자유다’라고 쓴다. <풍경>은 이 장애자가 단절과 소외의 벽을 맑고 적극적인 의지로 넘어서는 모습을 한폭의 풍경화처럼 펼쳐보이며, 감동을 전해준다. 미국의 남부는 어쩌면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와 이상이 왜곡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곳에서 난소암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 로버트는 성전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의사들에게 치료를 거부당한다. 그 이야기를 전형적인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 형식으로 찍은 <서던 컴포트>는 성전환자의 감동적 사랑이야기와 현실로 드러나는 참혹한 차별을 담담하게 드러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피로 점철된 분쟁의 현실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그려낸 골드버그, 저스틴 샤피로, 카를로스 볼라도 감독의 <약속>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 아이들 7명의 시각을 통해 갈등과 증오를 넘어 화해로 넘어갈 수 있다는 단초를 발견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도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기아와 분쟁의 대륙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통해 미래를 발견한다. 처절한 죽음의 현장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희망을 담은 시선으로 조명한다. 부산영화제에서 다양한 시선과 감정을 담은 친근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의 한켠에 우리 사회의 모순된 구조와 의식을 치열하게 드러낸 한국의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해룡/ 비디오저널리스트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