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미국, 1971, 85분 Yugoslavia, USA, 1971, 85 min
감독 두산 마케베예프 오후8시 대영3관
두산 마카베예프 감독의 진술에 따르면 <정사, 또는 전화 교환원 실종 사건> (1967)을 만들 당시만 해도 그는 빌헬름 라이히보다는 에리히 프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고,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프롬의 개념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는 라이히를‘발견’하게 되었고 프롬은 기껏해야 라이히의 단순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카베예프는 이제 라이히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예언가요 또 위대한 과학자라고 단언하게 된다. 마카베예프의 대표작인 는, 영화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라이히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감독 자신의 응답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는 우선 라이히의 이론과 미국에서의 삶, 주위 사람들로부터 듣는 그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라이히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부터 소개한다. 그리고 라이히 사후의 미국, 70년대 초 당시 미국의 대담한 성 문화의 다양한 단면들을 덧붙인다.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기록 필름들(과 그 콜라주)만을 본다면 은 그저 ‘사실(fact)’에 굶주린 박물지, 혹은 과학적 고찰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마카베예프는 이 위에 멜로드라마적 픽션 하나를 얹음으로써 영화를 보다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프리 섹스 없는 공산주의는 무덤”이라고 부르짖는 유고 여성 밀레나와 성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인 소련 남성 블라디미르 사이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는 보는 이들에게 해석을 강요한다.
밀레나는 성적 해방의 화신이고 블라디미르는 아직 성적으로는 미숙한 공산주의 사회의 대표이며 따라서 밀레나가 블라디미르에 의해 살해되는 이야기는 인민의 성적 해방을 방해하는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식으로. 성적인 해방 없이 진정한 해방이 없다는 목소리는 분명히 들을 수 있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문제는 보다 미묘해진다.
예컨대 만인을 위한 프리 섹스를 부르짖는 밀레나는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인민을 열광케 하는 선동가, 혹은 파시스트를 닮은 면이 있고 또 블라디미르는 스탈린의 부정적인 유산과 더불어 레닌의 긍정적인 측면을 공유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굳이 정리하자면 라이히의 이론과 기록 필름과 픽션 사이에서 은 다소 혼란스런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보아도 여전히 유희적이고 도발적이고 급진적이며 지적인 이 영화는 그런 혼란스러움마저 매력으로 끌어안는 영화사의 걸작이다.
홍성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