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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생명체가 파멸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한 비애의 드라마, <사스콰치 선셋>

아리 애스터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스콰치 선셋>은 이목을 끄는 영화가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뎀젤>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등을 연출하며 장르영화의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쌓아온 데이비드 젤너, 네이선 젤너 형제 감독이 재현해낸 영화의 주인공, 북미 지역의 전설적 존재인 빅풋(사스콰치)은 등장만으로 새로운 크리처 무비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대신 수북한 털을 온몸에 뒤집어쓴 이들은 문명 이전의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상상적인 생명체다. <사스콰치 선셋>은 사스콰치 가족이 봄에서 겨울까지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 코미디이자 로드무비다.

이 영화에는 대사가 없다. 그러나 언어는 분명 존재한다. 영화는 언어 이전의 언어, 다시 말해 신체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스콰치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생존과 욕망에 충실한 생명체들이 부끄러움 없이 주고받는 날것의 신체언어는 웃음을 유발한다. 사스콰치는 몸 안의 액체를 쏟아냄으로써, 다시 말해 배설의 행위를 통해 의사를 표현한다. 수컷 사스콰치가 시도 때도 없이 분출하고 싶어 했던 정액을 비롯해 눈물, 젖, 소변과 대변, 토사물, 그리고 암컷 사스콰치가 출산 직전 배출한 양수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액체들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행위와 자칫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생리현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인간과 유사한 이 상상적 포유류가 장엄한 자연에서 축적해왔을 연대기를 짐작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여기에 몸의 대화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밤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 세어보거나, 때로는 야생동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가족이 죽었을 때는 나무 표식을 만들어 애도의 표현을 하고 서로를 깊게 포옹하면서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인간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이 생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감정들을 신체에 각인한 채로 야생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겪어낸다.

원초적이고 분산적인 상황들만 존재하는 것 같은 이 영화의 서사를 추동하는 것은 낮과 밤의 순환, 그리고 봄으로 시작해 겨울로 끝맺음하는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여기에 문명의 흔적이 덧대어질 때, 잘 작동되던 야생의 생태계에 인간의 이질적인 손길이 침투하면서 사스콰치 가족의 보금자리는 오염되고, 이 연약한 공동체의 여정은 변곡점을 맞이한다.

영화는 두 수컷 사스콰치가 죽음을 맞이하는 상반되는 경로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드러낸다. 야생식물과 버섯에 취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풀려진 욕망을 퓨마에게 표출하려다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 퓨마의 먹잇감이 되고 마는 첫 번째 사건은, 웃음을 유발함과 동시에 거스를 수 없는 약육강식의 알고리즘을 떠오르게 한다. 문제는 두 번째 죽음이다. 사스콰치 가족은 어느 여름, 나무에 새겨진 붉은 엑스 표시를 발견한다. 영화는 머뭇거리는 사스콰치 무리의 얼굴 위로, 불안한 분위기의 사운드를 덧씌우면서 이것이 불길한 징후임을 드러낸다. 어떤 면에선 무성영화의 방식을 차용했다는 두 감독의 인터뷰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후,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은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다. 인공적인 이 길은 전에 없던 매끄러운 경로를 만들면서 동식물의 서식지인 울창한 숲을 절단한다. 흥분한 채 배설물을 쏟아내며 영역표시를 한 후, 사스콰치는 어느 강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표식이 새겨진, 뿌리와 가지가 잘려나간 기다란 나무토막이다. 또 다른 수컷 사스콰치는 이 나무에 깔리면서 물에 잠겨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인간이 남긴 붉은 표식은 오랜 숲의 주인이었던 존재들을 추방한다.

<사스콰치 선셋>이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이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봐온 크리처 무비의 도식, 인간과 유사한 외양이나 특질을 가진 비인간 생명체를 등장시킨 후 결국 인간 혹은 문명과의 불일치나 대비로 종결하는 전개 방식을 비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베르너 헤어초크는 다큐멘터리 <그리즐리 맨>(2005)에서 야생 곰과의 공존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다 결국 곰에게 죽임을 당하는 티모시 트레드웰이 남긴 푸티지 영상에 내레이션을 더해 자연을 포섭하려 했던 인간의 무지를 일깨웠다. 그런가 하면 미셸 공드리는 <휴먼 네이쳐>(2001)에서 호르몬 이상으로 몸에 털이 덮인 여성과 자신이 유인원이라 믿는 남성을 통해 인간 본성의 모순을 조롱하기도 했다. 감독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직접 밝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인류의 여명’(The Dawn of Man) 에피소드에서는 유인원이 공중으로 던진 뼈다귀가 인류 문명의 첨단인 우주선과 연결되는 기념비적 몽타주에 기여하기도 했다. 눈밭을 헤매던 사스콰치가 발견한 덫에 낀 뼈다귀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이 장면을 상기시키면서, 덫을 놓고 프레임에서 빠져나간 인간의 행방을 묻고 있다. 인간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더 이상 배설할 힘도 없는, 바짝 마른 사스콰치가 도착한 곳은 ‘윌로 크리크 차이나 플랫 박물관’이다. 그러나 이들이 응시하는 것은 박물관이라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자신들과 비슷한 형상을 한, 나무로 만들어진 대형 사스콰치다. 이들은 소리내어 말을 걸어보지만 결코 응답받지 못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험볼트 카운티에 실존하는 이 박물관은 전설적 생명체 ‘빅풋’을 박제된 신화로 수집하여 보관한다. 박물관은 전시의 대상이 산 채로는 들어갈 수 없는, 죽음을 현시하는 공간이다. 결국 인간의 형상을 모방해야 했던 사스콰치가 불쾌함의 골짜기를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자신들의 존재를 화석화함으로써 전시하는, 문명의 산물이자 거대한 묘지인 박물관이다. 가공된 신화로 신비스러운 존재를 조립하여 만든 후, 그들을 지나간 역사로 전락시키는 문명의 최상위 포식자. 인간은 포착되지 않는 조물주의 위치를 점유한 채로, 사스콰치의 탄생과 소멸을 안전한 바깥에서 구경하고 기록한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사스콰치는 포름알데히드에 적셔진 채로 박물관에 매장되거나, 메마른 숲을 떠돌다 생을 마감할 것이다. 정정해야겠다. <사스콰치 선셋>은 코미디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생명체가 파멸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한 비애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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