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설치된 CCTV가 나를 찍고 있는 시대. 모든 게 투명하게 기록되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정작 옆집에 누가 사는지, 윗집엔 몇명이 사는지 알지 못한다. 김수진 감독의 데뷔작 <노이즈>는 현대인의 이런 아이러니를 공략하는 공포영화다. 층간소음으로 예민해진 여동생 주희(한수아)가 사라지자 언니 주영(이선빈)은 동생을 찾지만 CCTV엔 동생이 아파트를 빠져나간 흔적도 없다. 주민들은 실종 사건엔 시큰둥하고 아파트 지하실엔 누가 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이제 아파트는 안온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쓰레기 더미 위에 놓인, 이기적인 사람들로 둘러싸인 지옥으로 변한다. 그 지옥도를 만든 김수진 감독을 만났다.
- 2013년 28살 때 단편 <선>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되고, 미쟝센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노이즈>를 개봉시킨다. 칸과 <노이즈>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계속 입봉을 준비했다. 엇갈린 건지 마가 낀 건지 칸과 미쟝센 뒤에 감독 계약을 했지만 영화가 미뤄졌다. 그러다 갑자기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시나리오를 계속 쓰면서 영화 현장에서 연출팀 일이나 동시녹음 일을 하면서 지냈다.
- 동시녹음 경험이 공포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사운드에 대해서 많이 이해하게 됐고, 동시녹음 경험을 <노이즈>에 많이 활용했다. 2017년쯤 공원에서 녹음 일을 하던 중 갑자기 다른 소리가 들어온 적이 있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외국어가 속삭이듯 가깝게 들렸다. 눈앞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나만 다른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게 정말 무서웠다. 동시녹음을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주파수 소리일 수 있다고 하더라. 그때 느낀 이상한 감각을 영화로 풀어내려 했다. 주영의 보청기에 다른 소리가 들어오는 장면도 거기서 왔다.
- <노이즈>는 좁은 공간에 모여 사는 한국인들이 느끼는 부대낌, 알지 못하는 존재와 마주치는 공포를 현실감 있게 그린다.
요즘은 익명성이 커서 주변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른다. 나와 붙어 사는 누군가를 나는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알 수도 있다. 주영의 대문에 붙은 쪽지는 이런 공포를 자극한다.
- <노이즈>를 보며 CCTV에 아파트로 들어가는 모습은 찍혔지만 빠져나가는 장면 없이 사라진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 층간소음으로 이웃집을 찾아가 문이 열리자마자 칼부림한 사건 등이 떠올랐다. 실제 사건에 영향을 받았나.
콕 집어서 모티브로 삼은 사건은 없지만, 영화 기저에 실제 사건의 본질을 깔아두려 했다. 참고로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에 사적인 복수를 한 사람이 판사인 경우도 있었다. 법이든 무엇이든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게 층간소음이다.
-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 몇고까지 걸 렸나.
2021년 처음 계약하고 촬영 들어갈 때까지 3년 내내 시나리오를 쓰고 고쳤다. 몇고를 썼는지 수치화하기 힘들다. (웃음)
- 주영과 주희 자매를 괴롭히는 아랫집 이웃 중심(류경수)은 소음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언뜻 고시생인가 싶지만, 정장을 잘 차려입고 나타난다. 그의 배경에 대해 많이 설명하지 않고 관객이 유추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았지만 감독을 만나면 그의 정체를 묻고 싶었다.
시나리오 작업할 때부터 예민한 누군가가 주인공 자매의 집 아래에 살았으면 했다. 몇고의 작업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다만 류경수 배우와 나는 칼을 들고 윗집을 찾아와 협박하는 사람이 후줄근해 보이는 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셔츠에 재킷을 갖춰 입고 올라오는데 슬리퍼를 신고 있을 때 기묘한 느낌을 원했다. 정중하지만 어딘가 삐끗 나간 듯 보여 공포감을 주는 캐릭터였으면 했다.
- 청각장애인 주영이 쓰는 음성인식 앱에 알 수 없는 소리가 텍스트로 입력될 때 공포스럽다. 사운드를 넓은 스펙트럼으로 표현했다.
이 영화는 층간소음이 일어나는 아파트에서 여동생이 사라진 얘기다. 그만큼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초자연적인 공포도 그릴 목적으로 기획됐다. 집 안에서 쿵쿵 소리가 들리면 윗집에서 나는 소리일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잖나. 그 미지의 소리를 영적인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표현하고 싶었다. 참고로 주영의 음성인식 앱은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셨을 때 청각장애가 있는 기사님이 운전하는 택시를 탄 적 있다. 기사님 패드에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 내용이 텍스트로 입력되는 걸 봤다. 마침 <노이즈>를 준비하던 때라 인상적이었고 이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
- 아파트 내 계급 차이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임대, 전세, 자가 등 소유 조건에 따라 인물들의 생각이 다 다르다. 공포영화에 계급 문제를 녹여내려 한 이유는 무엇인가.
붕 뜬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했다. 영화란 많은 사람들이 보는 매체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교집합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관객이 생각할 만한 지점을 영화에 남기고 싶다.
- 주영이 동생을 찾아 들어간 지하실 풍경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아파트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세대수가 많지만 외따로 떨어진 아파트, 걷다보면 갑자기 층고가 높아지거나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 독특한 지하실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 스태프들이 로케이션 헌팅을 가면 지하실을 꼭 둘러보았고 시나리오와 비슷한 아파트와 지하실을 천안과 전라 지역에서 찾았다. 부분적으로만 세트를 활용했다. 그 지하실에 쓰레기가 차 있는 풍경은 스태프들이 20t 가까운 쓰레기와 소품을 채움으로써 탄생했는데, 미술팀과 소품팀이 엄청나게 고생했다.
- 평소 어떤 결의 공포영화를 좋아했나.
한국영화 <장화, 홍련> <불신지옥>을 어린 시절에 보았는데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최근작 중에는 <유전>이 정말 좋았다. 심리에서 기인한 공포를 좋아한다.
- 극장이 어려운 시기에 영화를 개봉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만들었고, 일상처럼 영화를 해왔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더욱 극장 영화에 대해 고민했다. 기백명이 하나같이 숨죽일 때 느끼는 동질감도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사운드와 화면에 대해 깊이 고민한 만큼 많은 관객이 이 작품을 극장에서 즐기면 좋겠다.